나와 너의 첫날에 대하여
코로나 시국에 임산부들은 모두 혼란스러웠다.
자연분만을 계획한 사람도
코로나에 감염되면 제왕절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모유 수유도 할 수 없어,
아직 준비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어설프게 탄 분유를 아기 입에 물렸다.
더 서러운 건,
핏덩이를 안은 지 사흘 만에
조리원이 아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었다.
도움 받을 환경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산모들은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었고,
당시엔 흔한 풍경이었다.
입원 전까지 알 수 없는 이 여정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끝까지 마음을 붙잡아 두는 것뿐이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아기가 잘 버텨주기를.
그 바람의 바탕에는 언제나
“내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단단한 결심이 필요했다.
병원 앞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마치고
하루 뒤, 결과는 ‘음성’.
그제야 겨우 숨이 놓였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들어갔고,
입원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오랫동안 내 몸과 마음을 지켜봐 준
주치의를 다시 만난 것도 큰 위안이었다.
남편은 짐을 풀어주고 곧 병원을 나갔다.
출산 시간에 맞춰 다시 오기로 했다.
다른 가족들은 올 수 없었다.
결국 모든 과정은
나와 아기, 둘만의 일이었다.
⸻
3월 16일, 수술 당일.
수술실로 향하는 복도는
유난히 길고 차가웠다.
드디어 아기를 만나는 날.
난임 시술부터 코로나 검사까지—
그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하반신 마취가 시작됐다.
나는 “아기를 본 후 전신마취를 하겠다”라고 정했다.
주치의가 들어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절개 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쑥’ 빠져나갔다.
곧 아기의 처치가 시작되었고,
잠시 뒤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모든 긴장이 풀렸다.
생명이 현실이 되었다.
우렁찬 울음 속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간호사가 아기를 수건에 감싸
내게 보여주었다.
너무 작고, 너무 귀여웠다.
신생아가 이렇게 뽀얗다니.
3.3kg,
잘 자란 찰떡이는 그렇게 세상에 왔다.
나는 그 얼굴을 끝으로
천천히 마취 속으로 잠들었다.
[아이에게]
너의 첫울음이
세상을 깨웠단다.
그 순간, 모든 소리와 빛이 멈추고
오직 너의 울음만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어.
엄마는 그 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꼈단다.
그건 두려움을 밀어내는 소리였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어.
그날 이후로
엄마는 어떤 어둠 속에서도
그 울음을 기억하며 살아가.
그건 엄마에게 주어진
가장 단단한 용기의 목소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