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끝에서 너를 만났다

가장 추웠던 날, 가장 뜨거운 만남

by 서해

아이를 보고 마취로 잠든 나는

수술 처치 도중에 잠시 깨어났다.


주치의가 아닌 다른 의료진이 나를 돌보고 있었고,

그들이 “출혈이 좀 심하다.“ 는

걱정 섞인 목소리를 목소리를 주고받는 게 들렸다.

나는 그 불편한 진실만 스치듯 알아차린 채

다시 깊은 마취로 잠겨갔다.


회복실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추위’였다.

그 추위가 너무 강렬해서

내 산후의 기억은 통증이 아니라

차가운 공기로 남아있다.


몸 안의 따뜻한 것들이

모조리 다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오한이 뼛속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턱이 덜덜 떨려

이를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

입술을 말아 이를 감쌌다.


간호사는 온열기를 온몸에 둘러줬지만

체온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회복실에서 나오니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달뜬 얼굴로 찰떡이를 처음 만났던 순간,

신생아실로 동행한 그 짧은 길을

무용담처럼 쏟아냈다.


나는 너무 추워 정신이 없었지만

남편이 찍어둔 휴대폰 속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보며

그 와중에도 누구를 닮았는지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남편은 나를 입원실까지 데려다주고

곧 나가야 했다.

제왕절개 수술은

마취가 풀린 후부터가 진짜 고통이 시작된다는데,

그 몫은 오로지 내 몫으로 남겨졌다.


수술 첫날,

마취가 풀려오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통 주사와 페인버스터로 온몸을 무장했지만

통증이 지워지진 않았다.

까무러칠 듯한 고통에 몸을 비틀면

움직이는 만큼 또 다른 고통이 파고들었다.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걸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침대 난간을 잡고 일어섰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옆 병실의 제왕절개 산모들도

좀비처럼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오직 아이 면회를 가고 싶다는

같은 마음 하나로.


찰떡이가 태어난 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신생아실 면회 시간에 맞춰

아이를 보러 갔다.


코로나 시기였기에,

하루 한 번, 창밖에서 1분만

아기를 볼 수 있었다.


그 1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유리창 너머로

작은 얼굴을 처음 제대로 본 순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꼬물꼬물, 뿌엥, 피식—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표정들로

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실감했다.


기다림의 끝에서

나는 드디어 너를 만났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