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기다리던 날, 확진 문자 한 통

멈춘 세상, 계속 뛰던 심장

by 서해

36주.

출산 준비는 이미 다 끝나 있었다.

수술 날짜도 예약했고,

출산가방도 현관 앞에 두었다.

이제는 그저 아기를 만날 날만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기침이 자꾸 났다.

혹시 몰라 자가키트를 뜯었다.

희미하게 두줄이 나왔다.


무거운 배를 잡고

구청으로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날 밤,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확진자입니다.”


이해가 안됐다.

출근도 안하고,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아기가 뱃속에 있는데, 내가 코로나라니.


도대체 어디서 걸린 걸까.

병원에 막달 검사를 받으러 다녀온 것 말고는

아무 외출도 없었다.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있었지만

병원 로비에서 우유 하나 마신 그 짧은 순간—

그때였나. 억울했다.



임산부는 약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열이 나도, 목이 아파도 참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아기에게 이상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주치의에게 연락하니,

“백신을 맞아서 이 정도이신 거예요.”

그 말에 잠시 안도했지만,

무서웠던 건 증상보다 그 이후였다.


출산 계획이 모두 흔들릴 수 있다는 것.


코로나 증상이 사라져도 체내 바이러스가 남으면

음성 판정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럴 경우 내가 다니던 병원에서는

출산이 불가능했다.

국가 지정 병원으로 가야 했고

산후조리원도 마찬가지였다.


“음성 판정서 가져오셔야 해요.”

그 말이 칼처럼 꽂혔다.


아기가 태어나도,

나와 아이가 음성 판정을 받아야만

병원도, 조리원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더 무서웠다.


코로나 감염자가 하루에만 이십만명이 속출하던

시기라 출산후 가족 면회도 불가였다.

출산 후 남편도 엄마도 못 만나는데

산후 조리마저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감당해야 한다니 막막했다.



격리 기간의 매일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괜찮을까.

목이 찢어질 듯한 통증도 일주일이 지나자

사라졌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계속 자가키트로 코를 쑤셨다.


제왕절개 입원을 앞두고 받는 마지막 코로나 검사.

그 음성 판정이 나오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했다.



지금 돌아보면

증상은 결국 지나갔다.

하지만 그 3주는

내 임신 기간 중 가장 길고,

가장 두려웠다.


그때 알았다.

아기를 낳는다는 건

몸만의 일이 아니라,

마음을 붙잡는 싸움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