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던 세상, 자라던 생명

세상이 멈춘 사이, 나의 시간은 자라났다

by 서해

나의 임신기는 코로나와 함께였다.

온 나라가 멈춰 있던 시간,

내 안에서 작은 생명이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코로나 초기,

이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감염자 한 명만 나와도 건물 전체가 봉쇄되던

시기였다.


임산부들은 더욱 불안했다.

‘혹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태아의 기형이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불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출렁였다.


회사에서는 임산부 전원에게 재택근무를 권했다.

그 덕분에 내 임신기는 오히려 안정적이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감염 걱정은 덜했고,

집은 나만의 둥지가 되었다.

난임병원의 뒤죽박죽한 스케줄도

재택근무 덕에 차분히 소화할 수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 시간이 가끔 외로웠지만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멈춰있던 시기,

나 또한 ‘멈춤’ 속에서

나와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그 결심 이후 마음은 한결 고요해졌다.

회사 생각은 잠시 접었다.


백신을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임산부의 접종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고,

나 역시 망설였다.


주치의는 말했다.

“맞는 편이 낫습니다. 아이에게 항체가 생기고,

함께 면역을 얻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임산부는 감염돼도 약을 먹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결국 백신을 맞았다.

내 안의 두 생명을 위해서였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재난 속에서도

모든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회사 일이 느슨해진 것도,

세상이 멈춰버린 것도.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오롯이 내 몸과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고립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온전한 ‘내 시간’이었다.


12주가 지나자 입덧이 사라지고

몸은 다시 가벼워졌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 남편은

예전처럼 내가 차려둔 밥상을 맞으며 웃었다.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온라인 어학원 강의를 듣고,

책도 꾸준히 읽었다.

돌이켜보면 내 임신기는

유년 시절 이후 처음으로

미래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던 시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세상과 더 가까웠고

누구도 만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생명 가까이에 있었다.


참 복받은 임산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