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메의 섬들, 장 그르니에 《섬》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테고 나는 끝내 둘시아네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 장 그르니에, 《보로메의 섬들》
우린 늘 어딘가로 향한다.
더 나은 곳,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그러나 그르니에는 묻는다.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그의 물음은 체념이 아닌 깨달음이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이 있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의
단단한 고백.
삶은 끝없는 여정이다.
완성은 없으며
우리는 그 미완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이 짧은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 두자.
— 장 그르니에, 《보로메의 섬들》
그르니에는 희망을 ‘가두자’고 했다.
펼치는 게 아니라, 안에 담아두는 일.
그건 절망이 아니라, 내면화된 희망이다.
바깥으로 흩날리지 않게,
자신 안의 조용한 공간에 단단히 묶어둔다.
태양과 바다와 꽃이 있는 이 자리 —
여기가 좋겠다.
더 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 보로메의 섬들이 될 것 같다.
— 장 그르니에, 《보로메의 섬들》
삶의 목적지를 바꿀 필요는 없다.
그르니에가 말했듯,
어디든 빛과 바람, 바다가 있다면
그곳이 나의 ‘섬’이 된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다.
움직이지 않아도,
바라보기만 해도 괜찮다.
나는 오늘도 나의 보로메 섬에 머문다.
작은 바람, 한 줄기 파도,
그리고 살아 있음을 느끼는
이 순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