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만난건, 행운이야

행운의 섬들, 장 그르니에 《섬》

by 서해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것은 불가능한 일 —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 장 그르니에, 《행운의 섬들》


“그냥 떠나고 싶다.”

그 말은 종종 일상의 틈에서 흘러나온다.

점심을 마치고, 커피를 손에 든 채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햇살이 좋을수록 마음은 멀리까지 간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발길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두고 싶다.

온전히 낯선 곳에 나를 놓고

다시 나를 찾아오고 싶다.


주말, 바다 앞에 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마음이 따라온다.

그르니에는 말했다.

여행은 도피가 아니라 되찾음이라고.

그 문장은 여행 속의 나를 다시 세운다.


새벽의 물결, 바람의 냄새,

예상치 못한 길 위의 풍경들.

계획에 없던 순간들이 여행을 완성한다.

길가의 들꽃 하나에도 걸음을 멈춘다.

그 잠깐의 정지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자기 인식이 이루어질 때, 여행이 완성된다.
— 장 그르니에, 《행운의 섬들》


여행은 끝났을 때 완성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문득 —

“아, 내가 살아 있구나.”

깨어나는 찰나에 비로소 완성된다.


그 순간 나는 어떤 역할도 없다.

오로지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


바다 위에 떠가는 꽃들아, 해초들아, 잠든
갈매기들아,
아, 내 행운의 섬들아!
오직 그대들 속에서만
나는 나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
— 장 그르니에, 《행운의 섬들》


그가 말한 ‘행운의 섬’은

지도 위의 목적지가 아니다.

찰나의 반짝임이다.


바다 위의 빛,

낯선 도시의 바람,

계획 없는 하루의 우연.


나는 그런 섬들을 찾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언제나 뜻밖의 곳에서 만난다.

길 위에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 속에서,

혹은 내 어깨에 잠든 아이의 숨결 속에서.


그 순간들이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한다.


오늘의 여행에게,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오늘 널 만난 건, 행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