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의 여름 — 알베르 카뮈, 《결혼•여름》
이곳이 요구하는 것은 또렷이 볼 줄 아는 영혼,
즉 위안받으려 들지 않는 영혼이다.
— 알베르 카뮈, 《알제의 여름》
알제의 태양은 잔인할 만큼 밝았다.
그 빛 아래에서는 어떤 감정도 숨을 수 없었다.
슬픔도, 외로움도, 눈부신 빛 앞에서는 모두
드러났다.
카뮈는 그런 세계를 사랑했다.
그에게 여름은 어둠이 없는 세계,
너무 밝아서 그림자조차 사라진 세계였다.
빛이 지나치면 인간은 눈을 감고 싶어진다.
그러나 카뮈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정면으로 태양을 바라봤다.
그에게 빛은 위로가 아니라,
진실을 직시하게 하는 힘이었다.
그에게 진실은 정신보다 육체에 가까웠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바다로 뛰어드는 육체 —
그 생생한 움직임 속에서 삶은 가장 솔직해졌다.
바닷물에 젖은 피부, 모래 위 반짝이던 땀방울.
젊음의 아름다움은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그 찰나의 슬픔이 함께 비쳤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빛나는 육체가 언젠가 쇠락할 것을.
그래서 더욱 뜨겁게 살았다.
젊음의 낭비는 곧 생의 찬가였다.
젊음은 살아 있음의 찰나이자,
사라짐의 시작이다.
태양이 정오를 지나 내리꽂히는 그 순간,
삶과 죽음은 한 점에서 겹친다.
카뮈는 그 뜨거운 공존 속에서
인간의 조건을 보았다.
한 인간이 되는 것은 늘 어렵다.
순수한 인간이 되는 것은 더 어렵다.
— 알베르 카뮈, 《알제의 여름》
그가 말한 ‘순수함’이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세계와 맥박을 맞추는 일이다.
피의 고동이 태양의 리듬과 일치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느낀다.
내 시계가 정오를 넘어가는 순간,
젊음의 소멸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슬픔을 덮는 건 체념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이다.
태양처럼 내 안의 피가 뜨겁게 흐르고 있다면,
내 영혼은 여전히 바다를 닮아
끝까지 빛을 향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찬란함과 남루함이 공존하는 이 계절,
카뮈의 문장을 기억한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체념하지 않음이란,
오늘도 정오의 태양 아래
눈을 감지 않고 서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