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줄 땐 쿨했지만, 돌아오니 계산이 시작됐다
육아휴직은 꿈속의 육아였다는 것을
복직하는 순간 알게 되었다.
현실육아의 시작은 조리원에서 퇴소해 집에 돌아온
날도, 아이의 열경련으로 구급차를 탔던 밤도 아니었다.
회사는 ‘엄마’ 이전의 나를 강제로 소환했다.
꿈꾸는 나를 흔들어 깨우며,
“이게 현실이야”라고 말하는 듯.
회복된 줄 알았던 체력은
출근길 등원 전쟁에서 시들어버렸고,
엑셀은 오랜만에 만난 나를 낯설어했고,
새 팀에서 ‘일 없는 사람’으로 앉아 있는 순간들은
내 자존심의 밑바닥을 슬며시 건드렸다.
복직전 있던 팀은 휴직전에 폭파되었다.
하던 ‘일’도 사실 돌아올 ‘자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복직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운명처럼 덜컥 당첨된 아파트.
직주근접이라는 완벽한 조건.
그리고 휴직 기간 동안 “언제 복직해요?”라며
꾸준히 연락을 주던 A팀장님.
이 각박한 세상에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렸다.
그 팀장님은 예전부터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계속 제안해주던 사람이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한 번은 같이 일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복직 3개월 만에 팀장님이 교체됐다.
그리고 회사는
“떨어져 나갈 사람은 떨어져 나가라”는 듯
조직을 흔들었다.
가뜩이나 업무는 붕 떠 있었고
나는 이 팀, 저 팀을 둥둥 떠다니는
‘실체 없는 사람’이 되었다.
혹시 떨어져 나가라는 그 사람이… 나인가?
둥둥, 둥둥.
하루가 흘러가는 소리만 들렸다.
6월 복직자인 나는 한해 근무일수가 적다는 이유로
KPI 대상자도 아니었다.
평가도, 성과금도 없었다.
휴직 전에는 승진 심사 대상자였는데
복직 후에는 리스트에 이름조차 없었다.
육아휴직이 그렇게 큰 죄였나?
나… 뭐 잘못했나요?
조직은 육아휴직을 쿨하게 보내준 척했지만
돌아온 나에게 후불제 청구서를 내밀었다.
본부장이 말한 내 승진 누락 사유는
“조금 더 지켜 볼게요.” 였다.
그 본부장은 회식만 하면 나를 붙잡고 말했다.
“육아와 커리어를 동시에 잡을 순 없어요.
둘 중 하나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경영부문 150명 중 단 3명뿐인 여성 직책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들처럼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세 명은
변호사, 회계사, 싱글.
나와는 비교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공감이라곤 1도 가지 않는 조언을 들으며
이 조직에 속해 있다는 느낌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방황은 그렇게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