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돌아오지 않는 자리
복직 첫날, 회사는 아무렇지 않았다.
문도, 사람도, 커피머신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나만... 그대로가 아니었다.
회사는 내게 휴직 전의 모습을 기대했다.
그때의 패기와 기세를 다시 보여주길.
나는 같은 사람인데,
내 마음과 상황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등원 전쟁은 회사보다 먼저 나를 탈진시켰다.
집과 회사가 가까우니 일단 둘이 버텨보기로 했다.
나는 등원, 남편은 하원.
듣기만 하면 꽤 이상적인 분업이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아이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준비물 챙기고…
어린이집 문 앞에서 "엄마 가지 마" 우는 아이 떼어놓기.
이걸 해낸 것 만으로
나는 이미 오늘 쓸 에너지의 절반을 잃었다.
그런데 남편이 이직을 했다.
칼퇴 회사에서, 더 멀고 더 고된 회사로.
결과적으로 하원까지 내 몫이 됐다.
이제 나는
“등원한다고 늦게 출근하고, 하원한다고 일찍 퇴근하는 사람“ 이 되었다.
동료들은 최대한 배려했지만
주요 의사결정은 내가 오기 전에 끝났고,
업무 순번도 자연스레 밀렸다.
휴직 전처럼 빠릿빠릿하고
팍팍 나서고,
'언제든 일할 준비된' 나는 없었다.
새벽 회의, 출장, 경영진 보고 같은 ‘빠른 움직임’은 엄두도 안 났고
그렇다고 야근을 시원하게 할 수도 없었다.
팔다리가 묶인 채 일을 하는 기분.
퇴근 직전 회의라도 잡히면
급한 업무 떨어지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이 떨어지면,
회의 중 몰래 남편과 엄마에게 문자를 돌렸다.
"오늘 야근. 하원 좀 부탁해..."
아이 픽업 걱정에
내 마음은 늘 종종 거렸다.
업무도 전과 같지 않았지만,
내가 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이
더 낯설었다.
흡연실에서 결정되는 회사의 언어
새로 발령받은 남초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또 다른 장벽이었다.
그들은 모든 중요한 이야기를
흡연실에서 했기 때문이다.
비흡연자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 공간을
이용하지 못하는 꼴이었다.
여자 직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은
정해져 있었다.
같이 점심 먹기, 슬쩍 농담 건네기,
회식 2차를 넘어 3차까지 끝까지 버티기.
진짜 이야기는
늘 밤 12시쯤, 사람들이 빠지고 난 뒤에야 나왔다.
근데 흡연실을 따라다니는
남자 동료는 이미 그걸
흡연실에서 들었다는 거다.
나는 묻고 싶었다.
담배 한 개비에 끝낼 얘기를
왜 나는 밤 12시에 듣고 있는 걸까?
집에서 “엄마 언제 와” 하며 울고 있는 아이를 두고
그 자리를 버티는 내 모습이
어쩐지 조금… 비참했다.
그제야 인정이 됐다.
나는 돌아오긴 했지만
회사는 더 이상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회사에 돌아와 지지 않았다.
이 시절의 나는
매일 지고 있었지만
사실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회사가 나를 시험한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걸.
이대로 계속 가는 게 맞아?
정말 이게 네가 하고 싶은 방식이야?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다음 길이 아주 미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