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게 정답은 아니더라

떠다니던 나에게는 닻이 필요했다.

by 서해

떠 있는 마음과 이 상황이

복직 후 갑자기 시작된 것일까.

아니었다.


이 회사 면접에서 들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어떨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땐 웃으며 얼버무렸다.

“일단 자리 잡고 나서 그려보고 싶습니다…”


입사 후 나는 편안한 온실에 안주했다.

익숙한 일, 더 좋은 조건.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조직은 빠르게 변했고

보고서 쓰는 역할에서

직접 '해내는' 역할로 바뀌었다.

나를 지켜주던 선배들이 그 사이 하나둘 떠났다.


복직 전 기획했던 사업도 어긋나고,

내가 속한 팀도 결국 사라졌다.

돌아갈 자리도, 맡을 일도 없었다.


그리고 오래전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10년 뒤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나는 그 질문의 답을 미루고 있었다.

그 미루어진 시간이 결국

나를 떠 있게 했다.


바람에 쓸려 다니듯,

물길에 휩쓸리듯.

마음의 고됨을 회사 탓으로 돌리고 있었지만,

실은 내 닻이 내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자는 남편의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은 이유도 같았다.

내 일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부탁도, 기대도 어려웠다.


등하원 도우미도 고려했지만

역시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이 게임에서...

그냥 내려갈까?



월급루팡의 길도

잠깐 떠올렸다.

하지만 오래가지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눈치도 받지 않고 월급을 주는 회사?

요즘도 존재하나?


회사는 냉정했다.

누가 일하고, 누가 무임승차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렇다고 입으로 떠들며 분위기를 선동하는

성격도 못되었고

그럴만한 깜냥도 없었다.


나는 '일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걸 인정해야 했다.



복직 후 1년 반,

다섯 번째 팀 이동이 결정된 날

나는 드디어 회사에서 입을 열었다.


“왜 계속 떠 있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이렇게 의미 없이 움직이느니... 그만두겠습니다.”


이 회사에서

퇴사를 언급한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동안 삼킨 말들을

조목조목 꺼내놓았다.

육휴자 대우, 승진 누락, 운영 방식...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말하신 거 전부 반영할게요. 그만두지 마세요.”

그리고 이런 조언도 있었다.

“나가더라도, 방향은 잡고 나가요.”


형식적인 것도 있었겠지만

내 커리어를 같이 들여다보며

적합한 역할을 고민해 주는 과정은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말을 꺼냄으로써

한 겹의 껍질이 벗겨진 듯했다.


내게 꼭 맞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내 태도가 변했다.

그것만으로도

'떠 있는 나'는 조금 내려앉았다.

그래서 남기로 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그 질문의 답만큼은

찾아서 나가고 싶었다.


“1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부터 주변이 보였다.


워킹맘 친구는 말했다.

“승진 누락 사유가, 애엄마라 굴리기 어렵대.

웃기지?”

그 씁쓸함을 나는 너무 잘 안다.


외벌이 워킹대디들은

생존이 걸린 자리에서

더 쉽게 ‘굴려져야’ 했다.


능력 좋던 후배들은

마음에 안 맞으면

주저 없이 나갔다.

그들에겐 경력이 자산이었으니까.


오래 존경하던 상사들의 말년도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그제야 보였다.

회사생활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았고

누구의 방식도 정답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억지가 아닌 나의 방식으로

자연스레 동료들과 어울렸고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의미 있는 일이라면 맡았다.

그 역할만으로도

내 시간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



돌이켜 보니

떠있는 날 붙잡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였다.


"돌아오세요."

"같이 다시 해봐요."

이제는 더 이상

회사가 내 닻이 되어주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나에게

닻을 내려야 할 차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진심을 다해 찾아보자.”


그 마음의 끝에서

또 다른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