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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늬바람 Apr 18. 2020

책이 나를 위로할 줄이야

글을 쓸 수 있었던 용기 

책에게 위로를 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장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때, 가장 손쉽게 손 내밀 수 있었던 것은 책이었다. 책은 내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언제든 있었고, 언제든 곁을 내어주었다. 이렇게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빠른 배송도 한몫했고, 웬만한 책은 전자책으로 볼 수 있으니 그 덕도 있겠다. 휴직을 하고 시간이 많이 생기면 영화를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볼 줄 알았다. 1년에도 수천 편 쏟아지는 영화들 중 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고, 영화관에서 한창 상영하던 영화들을 놓친 것이 한 두 편이 아니었고, 고전영화를 섭렵하기에는 이런 시간이 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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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도 싫었고, 갑자기 뭉텅이로 주어진 시간도 흘러넘쳐 감당이 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나마 오전의 따사로운 햇살이 있었기에 버티던 날들이었다. 마침 미하엘 엔데의『모모』를 읽고 난 직후라,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얘기하는 책, 내가 사는 곳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시간과 시대마저 달라 그 어디쯤을 상상해도 상관없을 시간의 이야기, 다양한 존재들이 자신의 앞에 놓인 난제를 지혜롭게 풀어가는 모험이 가득한 이야기. 그래, 모험을 한바탕 하고 나면 나아질 거야. 끝없는 이야기는 그래서 선택했다.    


『끝없는 이야기』는 바스티안이라는 한 소년이 사람의 아이에게 새 이름을 받지 못하면 멸망할 위험에 처한 ‘어린 여왕’의 나라인 환상의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새 이름을 지어내어야 할 뿐만 아니라 환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연결하지 못하면 환상의 세계도 사람의 세계도 멸망하리라는 것을, 환상에 빠진 소년 바스티안이 배우는 이야기입니다. - 『끝없는 이야기』 발췌      



겉표지를 들추면 두툼한 붉은색 진짜 표지가 있다! 


700쪽 가까운 책의 두께에 이 모험이 상당하겠구나 직감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 두께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두꺼운 책을 읽을 동안은 잠시 나의 현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두툼한 표지를 넘겨 책을 펼치면, 신기하게도 붉은색의 글자가 빽빽하다. 글자색이 검정이 아니라(이 책에는 검정 글자는 찾아볼 수 없다)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되어 있는 책은 처음이다. 주인공 바스티안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나 역시 바스티안이 되고 바스티안의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 한 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상상, 책 속의 주인공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그 이야기에 들어가는 상상. 바스티안이 때로 자신의 욕심과 욕망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아트레유(또 다른 주인공)가 생각했을 때) 어긋난 길로 갈 때, 안타까움과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한바탕 타고난 다음 바스티안과의 모험을 다 끝내고 붉은색의 두툼한 표지를 덮었을 때 알 수 없는 개운함을 느꼈다. 마치 놀이기구를 못 타는 내가 롤러코스터의 무서운 구간을 넘어 무사히 도착해 머리를 정돈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을 때의 안도감과 같았다. 나는 바스티유와 함께 조금 더 성장한 듯했고, 조금 더 위로를 받았다. 따뜻한 햇살 아래 책을 읽다 보면 자주 잠들기도 했지만 그건 햇살이 너무 좋아서라고 둘러대도 괜찮았다. 


지금을 떠나고 싶을 때, 나는 나와는 만날 수 없는 주인공들을 만나 위로를 받았고 그들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바라볼 기운이 생겼다.  

     

아찔하게 두꺼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책들도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다른 모험도 가능했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글도 괜찮았다. 한 번쯤(두껍거나 어렵거나) 읽어보고 싶은 책을 호기롭게 도전했다.     

 

일을 할 때는 필요에 의해 책을 읽었다. 평화나 평화교육 관련해서 글을 써야 할 때, 혹은 활동에 도움이 되겠다 싶을 때 책을 들었다. 그리고 왠지 사회과학 도서 위주로 읽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있었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지만,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면서 지식을 채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책은 자료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책을 더 이상 읽지 않게 되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전혀 없는데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지식의 도구로 책을 대하게 되면서 책은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대신 책 읽기는 시작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어 버렸고,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으니 주말이나 쉬는 시간에 책을 꺼낼 일 만무했다. 부끄럽게도 한 달에 한 권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졌고 책장에 꽂힌 책들이 그 자리에 화석처럼 박혀 있었다. 책을 읽지 않는 ‘게으름’은 내 도덕적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그 무언가였다. 문득, 유육종증을 진단해 준 호흡기내과 의사가 나에게 일정치 이상으로 느꼈을 피곤함을 그냥 넘겨버린 것에 대해 ‘일만 열심히 하는 한국인’이란 얘기를 꺼냈을 때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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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부터 3월까지 선물 받거나 구매한/대여한 종이책. 아쉽게도 전자책 목록은 사진으로 못 찍었네요!


쉬기 시작할 즈음부터 책을 선물로 많이 받았다. 지인들이 이제 막 출판한 책을 보내 주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을 선물해 주는 친구들도 있고, 책을 더 많이 읽으라며 도서상품권을 선물로 보내주는 선배도 있었다. 지인들의 책은 애정을 듬뿍 넣어 읽느라 책 읽는 속도가 더 느려졌다. 그들의 생각과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상상하며 읽다 보니 조금 더 그들에게 다가간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읽고 싶고 또 읽어야 하는 책들이 늘어나고, 읽을 시간이 충분하다 보니 멀티태스킹이 잘 되지 않는 나도 책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오전과 오후, 저녁, 자기 전에 읽는 책으로 분류해 읽는다. 특히 자기 전에 읽는 책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특별한 의식과도 같아 무척 설렌다. 물론, 저렇게 분류해 놓아도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뭐 하루 종일 읽는 거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마음과 머리에서 언어들이 넘쳐났다. 무심코 들었던 책이 나를 위로해 주었고, 텅텅 비어있는 마음에 생각을 던져 주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고 다시 시작할 힘을 주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싶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SNS에 무언가를 남기는 게 괜히 조심스러워 잘하지도 않는 내가 어쩌면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를 브런치에 담을 수 있는 용기는 여기서 나온 것 같다.      


이제 보니 책(글)은 나를 위로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책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내 글은 어떤 말들을 건네고 있을까.   



글과 함께 소개하는 음악 

Brian Dee Trio  "Pete Kelly's Blues"

잔잔한 재즈곡으로, 책을 읽거나 혹은 집중해야 할 때 가끔 듣는 곡이에요. 저는 책을 읽을 때 가사가 없는 곡을 옅게 틀어 두는 편인데, 사람마다 책 읽는 습관이 다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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