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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늬바람 Jun 08. 2021

벌써 1년

스테로이드를 중단했습니다

지난해 이맘쯤, 담당의사는 복용하던 스테로이드를 끊어보자고 제안했다. 아직 폐의 염증은 그대로였지만 더 이상 커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직 젊기 때문에 스테로이드 장기 복용은 좋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나는 불안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정기검진은 진행될 예정이었기에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원래 네 알 복용하던 것을 두 알씩 일주일, 한 알씩 일주일 복용하고 완전히 끊기로 했다. 그렇게 스테로이드 복용을 줄여갔고 7월이 시작되는 날 이제 약 없이도 몸을 잘 챙겨보겠다는 의욕이 넘쳤다. 높은 컨디션으로 오전 일찍 자전거를 타고 난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내려 무릎을 짚고 일어나려는데 찌릿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양쪽 무릎을 스쳤다.      


처음에는 단순히 운동을 무리하게 해서 염증이 생겼다고 믿고 정형외과에서 약을 타고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약을 먹다가 통증이 없어지면 더 이상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내 통증은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약기운으로 잠시 줄어들긴 했어도 효력이 떨어지면 통증은 다시 심해졌다. 동네 여러 군데 정형외과를 가고,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아도 무릎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큰 맘먹고 장기로 끊었던 헬스를 멈추었다.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온 것은 무릎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친구와 ‘모닝 챌린지’를 했는데 둘 다 일어나는 시간을 앞당겨보자는 거였다. 나는 오전 6시에서 6시 30분 정도에 일어났었는데 약을 끊고 난 후부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여덟 시나 아홉 시에 겨우 일어나거나 조금 더 일찍 눈을 떴다고 해도 아침을 시작할 기운이 없어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있는 경우도 잦았다. 그리고 식욕이 감퇴했다. 스테로이드를 장기 복용하게 되면 부작용 중 하나가 식욕이 증진되는 거였는데, 그동안 체중이 감소했던 나에게는 반가운 부작용이었다. 그런데 약을 끊으니 그 증상마저 사라지는 거였다. 식욕은 감퇴하다 못해 구토 증세로 섭취가 어려웠다. 체중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우울감과 무기력, 탈모, 식욕감퇴, 체중감소, 무릎 통증 등은 내가 스테로이드를 중단하고 난 뒤 한동안 지속되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한참이 지나서 살림의원을 찾아 일련의 증상을 말했는데, 스테로이드로 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너무 힘들면 다시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그리고 무릎 통증에 ‘통증마취’를 다루는 병원을 추천했다. 그곳 의사는 조심스럽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권유했고 스테로이드를 장기 복용했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으니 소량만 맞았다. 그날 밤, 몸과 정신이 각성된 상태가 되어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다행히 통증은 점점 가라앉게 되었다.      


한 달 반 정도 이 모든 증상이 지속되었다. 스테로이드를 중단하자고 제안했던 의사가 너무 원망스러웠고 책임을 묻고 싶었다. 돌이켜 추측해 보면, 의사는 상대적으로 고용량이 아니었기에 중단 기간을 다소 짧게 잡았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은 견디지 못했다(다음 정기검진에서 의사에게 이 증상을 이야기했었는데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후 다시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으러 갈까 고민했지만 갑상선 수술을 앞두고 있어 그냥 견뎌보기로 했다, 몸이 적응해주기를 바라면서. 아프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우리 몸에서 스테로이드(호르몬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역할을 한답니다)가 나온다는 것이다. 부신에서 주로 생산하는데 이 기능이 충분히 잘 작동해야 몸의 염증도 낮춰주는데 내 몸은 그러지 못했던 거였다.      


갑상선 수술을 위해 여러 가지 검사를 받으면서, 스테로이드 장기 복용으로 부신 기능이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술처럼 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우, 부신 역할이 무척 중요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환자들보다 조금 더 길게 병원에 머물며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고 알약으로 바꿔도 될 즈음 퇴원하게 되었다. 스테로이드를 중단한 지 약 세 달 만에 다시 복용하는 게 속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이걸로 무릎 통증이 조금이라도 가라앉기를 바랐다.      


수술하고 약 8개월 동안 스테로이드를 복용했고 정말 천천히 줄여나갔다. 이번에는 ‘내분비내과’에서 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한 달에 한번 피검사를 했고 이후 두 달에 한번 피검사를 하며 나아지는 정도를 관찰했다. 의사가 용량을 줄인다고 했을 때 지난여름의 고통을 설명하며 그 증상들이 다시 나타날까 봐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천천히 약 두세 달에 걸쳐 용량을 아주 조금씩 줄이고 마지막에는 약 종류를 바꾸기도 했다.

  

약 한 달 전에 나는 완전히 스테로이드를 중단했다. 의사는 중단하면서 발열이나 극심한 피로감 등 몸이 견디기 어려우면 다시 복용하라고 여분의 약을 처방해주었다. 약을 끊고 나서 첫 이주일 정도는 식은땀이 나고 갑자기 체온이 오르는 증상이 있었으나 예전처럼 무기력감이 심하고 우울감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경미해서 감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무릎 통증과 수술로 인해 장기간 멈췄던 헬스를 올해 3월이 돼서야 시작했다. 무릎 통증은 여전하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고 통증을 덜어주기 위해 근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염증이 더 커질까 늘 염려하며 무릎 눈치를 보며 천천히, 하지만 때로는 의욕적으로, 운동을 한다. 왜, 무릎이 아픈 걸까. 신뢰하는 의사에게 상담을 받기도 하고, 관련 지식이 있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했을 때 공통의 의견은 갑자기 생긴 통증은 아니었을 거라는 거다. 아마 어떤 이유로 생겼을 텐데 그동안은 약이 염증을 잘 잡아주다가 갑자기 중단하면서 통증이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또, 스테로이드는 내 몸의 기운을 상당히 높여주었다. 모닝챌린지를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서 약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약을 복용하던 시기와 비교해 요즘 나의 모닝챌린지는 실패가 더 많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를 통해 약을 시작하고, 복용하고, 중단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할 수 있는지, 몸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마음을 움직이는지, 때로는 장악하는지, 알게 되었다. 폐의 염증이 존재하기에 언제나 다시 약을 복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지금의 경험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덜 당황하고 덜 속상해했으면 좋겠다. 또한 약을 나보다 더 오랫동안 복용하는 분들은 또 어떤 증상을 마주하며 살아갈까 궁금하면서도 염려되기도 하다. 비단 스테로이드뿐만 아닐 테지.   

 

7월에 다시 피검사를 하러 간다. 그때는 부신 기능이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해 한 시간 동안 검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어떤 과정인지 잘 모르지만 괜찮다. 나도 무척 궁금하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올해 3월 내분비내과 의사가 완전히 중단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전했을 때, 순간 울컥했었다. 약을 중단하는 과정이 이렇게 오래 걸리고 조심스러운 과정인데, 지난여름은 너무 짧았던 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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