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라 쓰고 '여름'이라 읽는다
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어요. 물론 이 매거진은 ‘몸’과 관련된 글을 올리는 곳이지만 오늘은 소개하고 싶은 존재가 있어 대신하려고 합니다. 음, 그렇다고 제 몸과 완전히 분리되는 글은 아닐 거예요. 몸과 마음이 그리워했던 대상이기도 하니까요.
오늘 오전 운동을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늘 그랬듯 운동을 마치고 간단히 장을 보려고 슈퍼를 갔는데, 어머나 세상에, 가판대 위에 산딸기가 놓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예상치 못한 발견에 흥분이 되고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근처 빵가게에서 얼른 빵을 사고 다시 슈퍼로 돌아가면서 그새 산딸기가 다 팔리면 어쩌나 싶어 초조해졌습니다. 다행히 산딸기는 그대로 있었지요.
판매하시는 분이 산딸기는 오늘 아침에 도착했다고 해요. 아침에 필요한 물량만큼만 주문하고 그날 저녁이면 대부분 소진된다고 합니다. 운이 좋았던 거지요. 산딸기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날씨마저 화창했습니다. 그런 순간 있으신가요? 세상이 유독 따뜻하게 나를 대하고 있다고 느낄 때 말이에요. 바로 오늘이 그 순간이었어요, 산딸기를 마주한 순간 말입니다.
저에게 산딸기란, 설렘과 아쉬움을 주는 유일한 과일입니다. 과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산딸기처럼 흥분과 설렘, 아쉬움의 감정을 주지는 않아요. 사실 얼마 전부터 동네 슈퍼를 돌면서 산딸기를 찾았습니다. 한 군데 발견했는데 오랫동안 진열되었던 것인지 이미 곰팡이가 생겨버렸더라고요. 오늘 만나게 된 산딸기는 감사하게도 싱그러워 보였고 본연의 색을 잃지 않은 듯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산딸기는 저의 최애 과일입니다.
5월 말에서 6월 초면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산딸기는 오랫동안 머물지 않습니다. 어느새 등장했다가 눈 깜짝할 사이면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인지 5월 초부터 산딸기 생각에 설레기 시작해요, 올해는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면서요. 산딸기는 단단한 껍질도 없고 무르기 쉽고 먼 곳으로 운반하기가 까다로운 편이지요. 섬세한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에 만남이 소중합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산딸기 가격은 다른 과일에 비해 조금 높은 편입니다. 특히 첫 출하되었을 때는 비싸서 쉽게 손이 가질 못했어요. 산딸기가 나오는 철에 부산 집에 가게 되면 어머니에게 늘 부탁했습니다. 산딸기가 먹고 싶다고, 그러면 어머니는 엄청난 양의 산딸기를 냉장실과 냉동실에 가득 넣어 준비해주셨어요. 부산에 머무는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매일 산딸기가 담긴 그릇을 내 몸처럼 여기며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는 말처럼 저에게는 산딸기 배가 따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딸기를 종일 먹는 저를 보고 ‘또 산딸기 먹냐’고 웃으시던 아버지 모습도 떠오르네요. 몇 년 전부터는 산딸기가 나오는 시기에 맞춰 직접 판매농가에 주문해서 먹습니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언제 또 먹을 수 있을까 싶어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산딸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실 거예요. 산딸기의 싱싱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구매 즉시 먹는 것이 가장 좋고 아니면 냉장 보관을 해야 하는데요. 조금 더 오래 보관하려면 설탕을 뿌려 둡니다. 저는 산딸기를 주문해서 구매할 경우 깨끗하게 씻어서 어느 정도 소분해서 바로 냉동실에 얼려 둡니다. 그리고 하나씩 그리울 때마다 잠시 녹였다가 먹어요. 그러면 싱싱함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맛있게 산딸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매번 감탄하게 됩니다. 만약 조금 오래된 산딸기가 있다면 그것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산딸기 잼을 하면 되니까요. 물을 아주 조금 넣고 설탕을 충분히 넣어주고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끓인 다음 그릇에 옮겨 식혀주면 끝입니다. 제가 산딸기를 좋아해서일지 모르겠지만 딸기잼보다 더 깊은 맛을 냅니다. 빵에 발라먹거나 요거트에 넣어 먹거나 크림치즈와 함께 곁들여서 먹어도 훌륭합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멋진 존재 아닌가요!
산딸기는 6월이 가까워질 때 만나는 과일입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산딸기는 저에게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과일이기도 해요. 점점 짧아지는 봄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른 산딸기를 만나고 싶어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싶어요. 요즘 기술이 다양해져서 제철 과일이라는 말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자연의 상태로 만날 수 있는 산딸기는 아직도 계절에 맞춰 등장합니다.
오늘 새벽 비가 많이 와서 종일 흐릴 것 같더니 오전에는 날이 맑아졌어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다시 흐려졌고요. 요즘은 하루에도 사계절을 모두 만난다고 느낄 정도로 날씨의 변화가 큽니다. 계절과 계절 간의 구분이 점점 더 흐려지는 것 같고요. 또, 아주 길고 혹독했던 지난 장마를 경험하고 나니 올해 여름은 또 어떤 모습일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해부터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이야기가 내 삶과 너무 가까워져 버렸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을 누군가는 ‘뉴노멀 시대’라고 합니다.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 관계 등이 참 많이 변화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요즘 부쩍 ‘예측할 수 있는’ 사람, 일상, 습관, 관계에 대해 소중함을 느낍니다. 변화가 없는 상황이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었는데,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든 존재들이 경이롭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몸이야말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떨 때는 부단한 노력을 요한다는 것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오늘 아침, 그래서 산딸기의 존재가 더욱 반가웠던 것 같아요. 어찌 됐던 봄은 지나가고 여름이 다가온다는 시간의 약속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안겨 주었어요. 지금부터 나의 첫여름, 산딸기를 소중하게 만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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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tasia "Mort Ga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