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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서윤 Jan 04. 2022

일상과 비일상

무의식적 두려움 


나는 사람들과 있는 꿈을 자주 꾼다. 사람들과 수업을 듣고, 길을 걷고, 여행을 가고, 놀러 다니고, 갈등을 겪고, 사건을 해결한다. 이상하게 혼자 있는 꿈은 잘 꾸지 않는다. 그러나 꿈속에서 혼자 있을 땐 어두운 길거리가 자주 나온다. 마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말이다. 그 영화의 분위기는 내 악몽과 99% 유사하다. 누군가가 내 무의식을 해킹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특히 어떤 장면은 꿈과 정말 비슷한데, 그 장면은 다음과 같다.


영화의 초반부, 치히로의 아버지는 “무슨 냄새 안 나?”라며 맛있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걸어간다. 치히로의 어머니도 남편을 따라 걸어간다. 치히로는 부모를 따라 테마파크 거리로 들어선다. 낡고 알록달록한 건물과 홍등이 매달려있다. 건물은 전부 음식점이다. 그런데 그때, 한 음식점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주인도 없고 손님도 없는, 아무도 없는 음식점이다. 치히로의 부모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는다. 돈은 주인이 올 때 나중에 내도 된다며. 그러자 치히로는 부모에게 돌아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는 정신없이 음식을 먹는다. 치히로는 부모를 뒤로하고 건물을 빠져나온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치히로는 계단으로 올라간다. 아치형의 빨간 다리 너머로 온천탕이 보인다. 다리 밑에는 기차도 지나간다. 그런데 그때, 한 남자(하쿠)가 치히로에게 다가온다. 하쿠는 치히로에게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라며 소리친다. 그러자 먹구름이 몰려오고 노을이 지고 그림자가 길어진다. 치히로는 하쿠의 말에 따라 도망간다. 거리는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빨간색 홍등이 켜지며 건물에 불이 켜진다. 치히로는 부모가 있는 식당으로 달려간다. 부모는 음식을 먹고 있다. 치히로는 부모에게 돌아가자고 말한다. 부모가 뒤돌아본다. 돼지가 되어있다. 치히로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거리 한가운데서 “엄마! 아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친다. 거리에는 검은 유령들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치히로는 두리번거리다 겁에 질려 도망간다. 그녀의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치히로는 어느 한 계단으로 내려간다. 마지막 계단에서 첨벙 물소리가 난다. 치히로는 고개를 들고 앞을 본다. 강이다.


나는 꿈을 꿀 때, 어두운 광장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무서워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반드시 무언가 튀어나온다. 나는 사력을 다해 건물 안으로 도망친다. 주변엔 아무도 없다. 건물 안에도 누군가가 숨어있을 것 같다. 무서워서 건물 밖으로 나온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하지만 또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다. 불안한 밤거리이다.


꿈을 통해 나를 해석해 봤을 때, 나는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다.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하지만, 꿈이라는 비일상을 통해 무의식을 점검 당한다. 나는 무의식중에 자신을 ‘약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타가키 파루 원작 만화 <비스타즈>에서는,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이 공존하며 살아간다. 원래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나, 이 세계에서는 육식 동물은 초식 동물을 잡아먹지 않는다. 

어느 날, 먹이사슬 하위인 토끼 ‘하루’는, 늑대 ‘레고시’에게 충고를 듣는다. 그러자 하루는 이렇게 대답한다.

“늑대인 너에게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은걸. 항상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동물의 기분 따위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중략) 너에겐 그런 불안감이 없으니까 나를 이해하는 건 평생 불가능해.”

떠올려보면 밤늦게 집에 갈 때 ‘오늘은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까?‘를 자주 생각했다. 빌라가 줄지어있는 밤거리, 연두색 옷을 입은 남자가 나를 힐끗 보더니, 한 건물에 들어가 위층에서 내려다봤던 사건을 접한 이후로는 더욱더. 나는 비스타즈의 여주인공 ’하루‘처럼, 먹이사슬 최하위층의 마음이 어떤지 안다. 우리는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동물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이라는 평범한 상황에서 비일상적인 공포를 느끼는 건, 연약한 동물에겐 매우 일상적인 상황이나까. 일상을 사랑하고 살아가려면, 공포를 극복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평생 극복 불가능한 공포인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 땐 거의 ‘자각몽’을 꿨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운 꿈은 비현실적인 상황임에도 꿈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두려움은 실체가 없어서 상상한 대로 커지거나 작아지고, 상상을 현실이라고 믿게 한다.

나는 여전히 두려운 게 많다. 밤거리가 두렵고, 벌레가 두렵고, 미래가 겁난다. 전철 안에선 터널이 무너져내릴까 봐 두렵고, 버스 안에선 교통사고가 날까 봐 두렵고, 불이 날까 봐 두렵다. 큰 병에 걸릴까 봐 두렵고, 나쁜 남자를 사귈까 봐 두렵고, 가족이 죽을까 봐 두렵다. 내 기준에선 살아있는 건 ‘기적’이다. 세상은 내 기준엔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겁쟁이의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는 건 진심으로 피곤하다. 그래서 내 안의 겁쟁이에게, 일상을 잘 보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생각보단 덜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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