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처리하는 방식
고통스러운 기억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문득 휴지가 떠올랐다.
우리는 눈물을 흘릴 때 휴지로 눈물을 닦는다. 그리고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갑자기 휴지 이야기가 쌩뚱 맞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 기억은 반쯤 남은 휴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지의 존재 이유는 무언가를 닦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 기억은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고통의 기억은 그러라고 있는 거 같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의 쓸모란, 그럴 때 효력이 발생하는 것 같았다. 휴지로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면 그제야 휴지 조각이 쓰레기통으로 가듯이, 고통스러운 기억도 그렇게 처리하는 것 같았다.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고통을 직접 겪은 사람이며,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 방식은 타인의 고통을 진심으로 위로해 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위로하는 작업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사랑’으로 바꿔놓는 유일한 통로이니까.
어쩌면 책을 쓰는 이유도 비슷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내 고통을 해소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니까.
물론 나도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힐 땐 우울한 글만 잔뜩 써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우울하고, 어둡고, 자극적인 글. 감정 날 것의 글. 배설이 목적인 글. 속이 울렁거려서 당장이라고 뭔가를 토해내고 싶은 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욕심은 개인 일기장에 해소한다. 책에는 위로, 희망, 사랑, 낭만 따위와 같은 조금은 밝은 세상 속 이야기를 쓴다. 어설프고, 때로는 그게 내 것이 아닌 것 같더라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타인을 위로한다. 위로해 주었던 수많은 타인을 기억하며.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 위로를 받고,
위로를 받은 사람은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위로를 해줘서 멋진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다.
수면 위로 올라온 고통은, 그런 방식으로 증발시키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