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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학용 Dec 10. 2020

#14 인도 마날리가 천국인 저마다의 이유

인도 마날리에서 행복했던 시간들

“마날리는 천국이에요!” 


아이들 반응이다. 대한민국 서로 다른 도시에서 떠나왔듯이 그 이유도 각기 달랐으나, 천국이라는 사실에는 아이들 모두 동의하는 편이었다.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뛰어다녀도 숨이 안 차니까 살 것 같아요. 숨 쉴 수 있는 자유가 이렇게 소중한 지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어요!” 


해발고도가 낮아진 탓이다. 아마도 대부분 아이들 생각이겠지만, 특히 고산병 때문에 고생했던 친구들일수록 더 절실할 것 같다. 레에서는 많이 돌아다닌 다음날에는 꼭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울렁거리곤 했었다. 다음날 걱정 없이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이토록 고마운 것이다.


해발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나의 움직임도 도시 구석구석까지 넓어진다. 올드 마날리인 바사슈트의 뒷길로 접어들면 오래된 인도 마을이 나타난다. 지붕 위에 넓적 돌을 얹은 전통 집들과 마당 한 편에 평화롭게 누운 누런 일소와 그 뒤편에 탈수도 하지 않고 널어둔 빨래들. 내 생각에, 따스한 온기를 품은 마을이 가져야 할 풍경이 그곳에 다 있다. 

올드 마날리의 바사슈트의 골목에서
인도 마날리 바사슈트의 작은 카페

또 작은 골목들 사이를 몇 번 접어들다 보면 작은 카페들을 만나게 된다. 카페에는 인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코끼리 형상의 신 가네샤(Ganesa)나 천연색 꽃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그곳엔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여행자들이 낡은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 하나씩에 기대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세상 속으로 시간을 흘려보낸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여행자가 모여드는 도시, 그리고 골목들을 만나게 된다. 마날리 바사슈트 지역도 그렇다.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데에는 저마다의 까닭과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배낭을 둘러메고 길을 떠나야 했던 이들이, 스스로 배낭을 내려놓고 한 곳에 머물게끔 하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뜻이겠다. 


길을 떠날 때 마음 다잡으며 조여 묶었던 신발 끈을 풀고 싶어 지는,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이제 걷거나 뛰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공기가 나를 둘러쌀 때, 나는 나의 일상과 대척점에 서서 잠시 길을 멈추고 또 다른 삶의 모퉁이를 두리번거린다. 


여행학교 아이들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3박 4일 동안 모둠별로 각자의 취향대로 올드 마날리와 뉴 마날리를 돌아다니다 이곳 어느 골목길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저마다 하나씩의 이야기들을 지어내고 있으리라 상상하니 미소 짓게 된다.


또 하루는 흙길을 걸어서 뉴 마날리 지역으로 향했다. 계곡물이 무섭게 불어났다. 흙탕물이 바윗덩이와 싸우는 기세가 맹렬하다. 


“지난밤에 비가 많이 왔어요. 다리가 떠내려가고 트럭이 강물에 휩쓸리고 집도 몇 채 쓸려갔어요.”


길에서 만난 마날리 청년이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이재민이 많이 생길 것 같아 걱정이란다. 그 청년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 본다. 


“인도인은 이곳 사람들을 히마찰 촌놈이라고 불러요. 그만큼 순한 사람들이지요. 델리에 가면 직장 얻기가 쉬워 친구들은 델리로 많이들 갔어요. 그래도 전 이곳이 좋아 남아있지만 언제까지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인도 뉴 마날리 지역의 힌두교 사원

그러고 보니 릭샤왈라(자전거 인력거꾼)나 환전해주는 친구들로 좀 더 순해 보였던 것 같다. 세상 어디나 시골 인심은 마찬가지인 걸까. 그 청년에게 길을 물어 버스터미널까지 걸어 델리행 야간 버스표를 예매했다. 그리곤 역시 그가 추천해준 사원으로 향한다.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사찰이 두 채 있고 주변엔 키 큰 나무들이 짙은 숲을 이루었고 원숭이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적당했다. 머리에 터번을 한 남자와 그의 가족과 눈빛이 마주쳤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인도 아이들은 눈이 너무 예쁘다.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단다. 


나에게 낯선 세상인 이곳 사람들에게 나는 역으로 낯선 외국인이다. 돌아오는 길에 이탈리아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다가 문득,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자각할 때 내 감각이 새로워짐을 느낀다.    

 

뚝뚝이는 참 재밌다. 덜컹덜컹.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레에서 만났던 한국인 스님과 아저씨를 만났다. 와! 여행자들이 진짜 이렇게 돌고 돌아 만나는구나. 그분들 덕분에 여러 곳을 갈 수 있었다. 올드 마날리도 가고 내추럴 파크도 가고. 오늘 밤 12시에는 한국 축구가 있다. 오늘은 정말 불. 금. -(어린 여행자의 일기, 아라)      
인도 올드 마날리 바사슈트 여행자 거리
인도 뉴 마날리의 시장

마날리가 천국이라는 아이들의 두 번째 까닭도 들어보자. 


“삼촌, 레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입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어요!”


이탈리아나 인도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바사슈트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작은 한국음식점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식당을 찾았을 때 문중이네 모둠 아이들은 이미 라볶이와 모둠 김밥과 김치찌개와 라면을 한꺼번에 해치우고 포만감에 젖은 얼굴로 늘어져 있었다. 


“삼촌~ 있잖아요. 세상에 멸치볶음이 밑반찬으로 나와요! 밥에 흑미가 들어 있고요.” 


식당 개업 한 지가 2년 되었단다. 녀석들은 겨우 한 끼 식사를 마치고 식당 홍보대사라도 된 것 같다. 전깃불이 잠깐씩 그리고 자주 나갔다 들어온다. 덕분에 촛불이 어룽거리는 저녁밥상을 앞에 두고 귀한 이야기를 듣는다. 식당은 젊은 한국인 여주인과 그녀의 남자인 카슈미르 출신 인도 청년이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2년 전 이곳에서 결혼했지만 한국으로 단 한 번도 인사를 갈 수 없었다고 한다. 여자분의 부모님이 격렬히 반대하신 탓이다.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났으나, 그뿐일까. 세상의 벌거벗은 편견들…. 그래서일까. 두 사람 눈매가 지독하게 닮아있고, 또한 슬퍼 보였다. 순한 소처럼. 문중이가 그들의 순한 사랑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담아 남겨주었다. 이곳이 천국이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그들의 순한 사랑 이야기가 이곳에서 자라고 있으므로.      


스시 윤. 일본 음식점인 줄 알았건만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한국음식점이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어떻게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있었는지 언어가 달라도 사랑이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한국에 친구들이 있을 텐데 외롭지 않을까? 남편만 보고 타국에서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두 사람이 싸우는 횟수는 적을 것 같다. 영어로 싸워야 하니까. ㅎㅎ. -(어린 여행자의 일기, 진실)     
인도 마날리 바사슈트의 온천

마지막 까닭은 온천에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까닭은 나의 것임을 먼저 고백해두어야겠다. 바사슈트 광장에는 오래된 온천탕이 하나 있다. 처음 보았을 때 온천탕이라기보다는 힌두교 사원처럼 보였었다. 온천탕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면서 마을 사람 모두의 소유물이었다. 무료로 공유하는 삶의 일부다. 마을 사람들은 온천에서 하루 동안 수고한 몸을 씻고, 탕을 지나 흘러나오는 온천수에 빨래를 했다. 


새벽녘에 아이들과 함께 남탕과 여탕으로 나누어 온천에 갔다. 온천수는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뜨거웠다. 열탕의 열기 속에서 하늘을 본다. 온천탕은 지붕이 없다. 그 대신 새벽하늘이 푸르게 별을 품고 떠 있었다. 


아이들이 마날리가 천국이라고 말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까닭이 굳이 마날리에만 존재하는 것들은 아니라는 점이다. 숨 쉬는 산소든, 한국음식이든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나는 것들이다. 결국 아이들에게, 또는 우리들에게 천국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내 안의 결핍이거나 그리움인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우리들이 여행자가 되어 길 위에 서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인도 올드 마날리 바사슈트에서 오랜만에 모두가 함께 단체사진 

3일 만에 마날리를 떠나는 날, 온천 앞에서 오랜만에 단체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렌즈 속에서 문득 아이들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음을 알게 된다. 1년에 한 번이라도 이렇게 활짝 마음까지 웃을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우리 여행은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이 실감 나기 시작한다. 지금껏 쌓아온 추억만큼이나 더 많은 일을 함께 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많은 일들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정이 들어 또 어찌 헤어질까? -(어린 여행자의 일기,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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