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뉴델리에서 반나절의 시간
델리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6시 30분이었다. 마날리에서 델리까지, 버스는 밤을 새워 13시간을 꼬박 달려온 셈이다. 하룻밤을 꼬박 새워 버스를 타는 경험도 대한민국에서 온 어린 여행자들에겐 처음이다. 항상 처음이라는 이름에는 설렘이 살고 있기 마련이다. 처음 부모님 없이 떠나온 여행, 히말라야를 처음 걸어본 트래킹, 처음 경험해본 고산병, 내 힘으로 처음 구해본 이국의 숙소….
하지만 첫 야간 버스의 설렘은 이미 아이들 얼굴에서 사라지고 없다. 몸을 제대로 펼 수도 없는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하룻밤의 시간을 건너는 일은 그리 달콤한 일이 아니다. 버스가 피곤함에 점령당한 우리들을 내려준 곳은 버스터미널이 아닌 어느 도로변이었고, 낯설었다. 지도에는 지명조차 나오지 않았고 도착하기로 되어있던 터미널은 아무런 맥락도 없이, (주변 인도인들의 말에 따르자면) 사라졌다.
그리하여 버스 운전사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을 아무 곳에나 내려버린 것일 지도. 황당 그 자체다. 하지만 인도라는 세상이 시작된 이상, 따지고 싸우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그리 현명한 일이 못 된다. 우리들은 강물의 물살에 몸을 맡기 듯 다시 세 대의 택시에 나누어 타고 뉴델리 기차역에 도착했다. 아침 7시. 입석표라도 끊어 곧장 아그라행 기차를 탈 계획이었지만 기차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여행자들을 위한 국제여행안내소가 문을 여는 8시까지 기다렸다가 9시가 넘어서야 오후 2시 기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기차역 대합실 바닥에 배낭을 쌓아놓고 앉거나 누워서 놀고 있다. 인도 기차역 대합실은 기차를 기다리는 여행객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순례자와 집 없는 부랑자와 거리의 아이들이 각자의 이유에 따라 삶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여느 때와 같이 바닥에 앉거나 누워 시간을 보내던 그들의 시공간에 낯선 침입자들이 나타났다. 어린 이방인들의 노는 꼴이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행학교 아이들은 그다지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주변의 시선보다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온 지 20여 일,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그 시간들이 아이들에게 남겨놓은 흔적들인 셈이다.
빠하르간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빠하르간지는 기차역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나오는 거리 이름이다. 골목골목마다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과 여행사와 기념품점들이 가득 차 있어 배낭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하지만 델리가 처음인 이들에게는 그 길 하나 건너기가 쉽지 않다. 제법 폭이 넓은 도로에는 대형버스와 택시와 고급 승용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릭샤와, 때론 소와 달구지와 개들이 온통 뒤섞여서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혼돈의 흐름을 눈앞에 두고 차마 발을 도로 속으로 담그지 못하고 망설이게 된다.
“꺅~! 삼촌 같이 가요! 엄마야~! 이걸 어떻게 건너요?”
내 옷자락을 붙잡는 아이들. 이 길을 건너는 순간부터 어린 여행자들은 혼돈의 세상 속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델리에서 지내는 며칠 사이에 그들은 지금껏 그래 왔듯이 자연스레 이 혼돈의 강물을 건너는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
델리에 돌아와서 묵을 숙소를 찾아다니는데 정말 온 정신을 집중시켜야 했다. 삼촌 말씀대로 모든 교통수단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동물들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수경)
인도는 길이 막히면 빵빵거리는 죽음이다. 그것이 짜증 난달까? 밥 먹고 있는데 빵, 자고 있는데 빵, 잘 걷고 있는데 빵, 스트레스가 아주 짱이다. 하지만 내일 타지마할에 가니까 기대가 아주 된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남수)
아이들은 한국식당에 가방을 맡겨두고 계획에 없었던 한 나절의 시간 동안 빠하르간지의 이국적 풍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마도 여행 초기였다면 이런 곳에서 어린 여행자들끼리 보내는 일이 다소 망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히말라야를 걷고, 라다크의 시골마을에서 밤을 보내고, 세상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를 건너오는 동안, 낯선 세상을 상대하고 낯선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낯선 길 위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익혀왔다. 무엇보다도 길 위에서 자유와 함께 그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를 이제 그들도 몸으로 알고 있다. 내가 어린 여행자들의 날개에 어떤 끈도 매달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로부터 자유를 얻은 나는 또 다른 한국식당인 인도 쉼터로 향했다. 나의 첫 인도 여행에서 닷새를 묵었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 배낭여행 1세대였을 그곳 주인장의 김치 담그는 솜씨가 인상적이었다. ‘인도에서 살아남는 법’ 정도로 이름 붙여도 될 그의 강의 혹은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주인장은 바뀌었고 지금은 식당만 운영되고 있다. 라면을 시켜 먹는 동안 비가 내렸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는 식탁까지 튀어 올랐다.
나는 늘 새로운 나라,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다녔었다. 몇 번이고 동일한 곳을 여행하는 사람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세상은 넓고 가보지 못한 곳은 넘치는데, 동일한 곳을 여행한다니.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여행했던 곳을 또 여행하고 있더라.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떠오르는 여행지도 언젠가 내가 여행했던 공간들, 그래서 그리운 곳이다. 걸었던 거리, 마셨던 맥주, 그곳 숙소와 카페, 그리고 사람들. 여행은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것이지만, 때론 그곳을 여행하며 자유롭고 행복했던 나를, 일상에서 잃어버린 그래서 낯설어진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기도 하니까.
짧은 비가 그치고 익숙하고도 낯선 시장 거리를 잠시 걷다, 아이들을 만나러 돌아갔다. 열차 시간에 맞추어 하나둘 모여들었다.
“삼촌, 여기 완전 좋아요! 재밌는 거 진짜 많아요!”
“소가 혼자서 막 걸어 다녀요. 신기해요!”
“아프리카 북 있잖아요, 대박 귀여워요. 돌아갈 때 꼭 살 거예요!”
“아그라 갔다 오면 ‘헤나 타투’ 할 거예요!”
“우리 모둠은 돌아올 때 숙소 미리 구해뒀어요!”
나는 길 위에서 아이들이 와글거리는 소리가 좋다. 얼굴이 상기되어 자기가 즐거웠던 시간들에 대해 늘어놓는 것이 좋다. 그러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기차는 아이들의 폭풍 같은 수다를 뚫고 3시간 만에 아그라에 도착했다. 어린 여행자들은 그날 그렇게 인도라는 혼돈의 세상 속으로 발을 성큼 들여놓고 있었다.
숨 쉬기 어렵게 만드는 냄새와 빵빵 차들이 울려대는 도시의 소음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하늘은 또 어찌나 까맣던지. 레와 페이에서 봤던 별빛 가득 맑은 하늘을 보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지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인도에 와서 제주가 정말 좋은 섬이란 것을 제대로 느낀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진실)
삼촌과 이모를 기차역에 앉아 기다렸다. 짐을 지키며 놀고,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고, 잼배(?)도 치고, 제로게임도 하고. 인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놀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우리를 다 보고 가는데, 그들 눈에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TV를 통해 봤던 델리와 똑같았다, 너무. 보는 건 똑같았지만, 그 속에서 경험하며 다니는 건 생각보다 훨씬 괴로웠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