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라마유르 트래킹 둘째 날
당나귀 웃음소리가 히말라야의 아침을 깨운다. 여행학교 아이들은 아직 전날의 피로와 잠으로부터 풀려나지 않았고, 마을길 어귀에서 먼 길 떠날 준비를 하던 당나귀들의 부산스러움만이 희뿌연 밤 그림자를 밀어내고 있었다. 홀로 히말라야의 아침을 서성이던 내게 밀크 티 한 잔을 가져다준 것은 요리사 ‘제왕’이었다.
“Mountains, beautiful, ya?”
아름답고말고. 어디 산들뿐이랴. 강물도, 마을도, 구름도, 바람도,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모두 다, 경이로울 만큼 아름답고 평화롭다.
“난 말이지, 라다크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은 히말라야의 심장이 위치한 네팔 사람이야.”
그는 중요한 비밀 하나를 들려주는 것처럼 목소리까지 낮췄다. 그리고 검고 투박한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툭툭 쳤다. 나는 어쩐지 선하고 장난기 많은 그의 눈이 언젠가 네팔 안나푸르나를 걸을 때 보았던 어린 야크의 눈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난 있잖아, 나의 직업을 사랑해. 내 고향 히말라야를 걷으면서 히말라야가 좋아서 찾아온 여행자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줄 수 있거든. 물론 그들로부터 먼 나라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
그는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놓는다. 수다스러웠던 프랑스 여행자들, 뭐든 잘 먹어주어 고마웠던 미국 여행자들, 예의 바르고 친절한 일본 여행자들에 대한 이야기들. 한국 여행자들은 처음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런데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먼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어 온 먼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말하자면 요리사인 그도 실은 나처럼 여행자 인지도.
“나도 당신의 직업이 좋아. 걷고, 요리하고, 이야기 듣고.”
정말이다. 그날 아침 나는 그의 직업이 부러웠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가파른 길이 없어 쉬울 거라는 설명을 남기고 그는 주방 텐트로 돌아갔다. 그러자 여행학교 아이들이 하나둘 텐트를 열어젖히고 히말라야의 아침 속으로 기어 나왔다. 트래킹 둘째 날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들은 눈곱을 떼어내고 세수를 하고, 또 아침으로 밀크 티와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를 먹고 난 후에도 전날의 피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얼굴이다. 점심 도시락을 각자의 가방에 챙겨 넣으면서도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길들이 현실의 무게로 다가서지 않는 듯하다.
드디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당나귀들이 앞서 간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길은 마을을 벗어나며 우윳빛 강물을 따라서 고산 병풍들 사이로 나아갔다.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카메라를 빼어들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풍경이 내내 이어진다. 아이들은 짝을 지어 걸으며 도란거리는 꼴이 전날에 비해 걷기가 쉬운 모양이다. 내 옆에는 해남에서 온 남수가 함께 걷고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인 녀석의 남도 억양이 히말라야 산길과 운율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삼촌, 백두산 천지를 보면 조상 3대가 착한 일을 했다 하잖아요. 지금 저는 히말라야를 걷고 있으니까 아마 10대 정도는 착한 일을 한 거지요?”
그러더니 녀석은 폴짝 길 아래로 뛰어내린다. 그러곤 강물을 물통에 담더니 내가 어떻게 말릴 틈도 없이 벌컥벌컥 마셔버린다. 이곳 계곡물에는 석회수가 섞여있어 정수 알약을 타서 먹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했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해남 시골에서 살던 그 버릇 그대로 제멋대로다. 그놈의 성질머리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야, 이 촌놈아, 네 뱃속은 강철로 만들었냐?”
“에이~ 괜찮아요.”
괜찮기는 무슨. 결국 그날 저녁 그는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래도 녀석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길들여지지 않은 날 것의 싱싱함 때문이겠지.
히말라야는 너무 광활하고 멋지다. 그리고 우윳빛 강물이 흐른다. 오늘은 선두주자였다. 오다가 강물을 마시며 당나귀 똥을 따라 잠자는 곳까지 왔다. 트래킹보다, 똥 싸는 것보다, 차가운 물에 들어가는 것보다, 잠자는 곳 찾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쿠키를 먹고 밀크티를 마시고, 아 힘이 든다. 오다가 배에 가스가 꼈는지 방귀를 뀌면서 왔다. 냄새는 상상에 맡긴다. 힘들게 밥을 먹는데 신호가… 아 뀌어야 하는데 계속 참으니까 배가 너무 아팠다. 설사가 나올 것 같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남수)
3시간 정도를 걸어 계곡물이 흐르는 물가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아이들은 빙하에서 흘러왔을 그 차가운 물에서 물장구치고 머리 감고 가위바위보에 지는 사람은 거꾸로 머리를 입수하는 놀이에 몰입했다. 아이들답다. 힘들어도 일단 놀아야 하는 것이 아이들이니까.
하지만 오르막이 시작되면서부터 뒤쳐지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그들은 또다시 말이 없어진다. 가이드 지미가 선두그룹과 함께 앞서가고 내가 뒤편에 남아 아이들과 함께 걷는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시계를 보는데 한두 걸음 뒤쳐져 걷던 유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엉엉. 삼촌~! 저, 엄살 부리는 거 아니에요. 엉엉. 유진이는 지금 진짜로, 대빵, 열심히 걷고 있는 거라고요. 엉엉.”
힘이 들어서인지. 다른 친구들보다 더 힘들어하는 자신이 못마땅한 것인지. 그런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 서러운 것인지. 나로선 그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울음 옆에 서있어 주는 것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유진의 울음이 잦아들 때쯤이었다. 막내 우현이가 지팡이를 벗 삼아 멀리서 혼자 걸어오고 있다. 그의 걸음이 내 시야에서 흔들린다. 나도 꽤 힘든 모양이구나, 생각하는 순간. 우현의 발걸음이 비틀. 갈지(之) 자를 그린다. 다가서서 보니 눈빛에 초점도 흐려지고 있다. 다급히 우현을 불러 세워 바위벽 아래 조그만 그늘에 눕혔다. 허리띠와 윗옷 단추들을 풀어헤치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게 하며 안정을 취하도록 했다.
그는 잠시 후 화색이 돌아오고 나서도 힘드냐고 물어보는 내 말에 “네…”라는 짧고 힘없는 대답 외에는 더 이상 말이 없다. 그만큼 힘들다는 뜻 이리라.
길을 걸어가는데 풀은 저 절벽 아래에 있고 물은 바닥난 지 오래고 태양은 이글거리는데 사막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유진)
형 누나들이 평지라서 그나마 어제보다 쉬울 거라고 했다. 그러나 어제보다 더 힘들었다. 가도 가도 비슷비슷한 길만 계속 나왔다. 아, 진짜 너무 숨이 턱턱 막혀서 눈물이 나왔다. 힘들어서 울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제쯤 이 길고 긴 길이 끝날까.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우현)
그 사이 진실, 아라, 수경이 지나갔다. 그들 역시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얼굴들이다. 두 명의 거북이. 우현과 유진을 데리고 가는 나도 힘이 부칠 즈음 오늘 밤 캠핑 예정 마을이었던 힌주(Hinju)에 도착했다. 꼬마 넷이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입을 모으고 달려왔다. 세계 어느 마을이든 제일 먼저 낯선 냄새를 감지하고 이방인을 맞아주는 이들은 언제나 아이들이다.
“하우아유? 왓쥬어네임?”
소남, 돌마, 앙모, 남겔. 알고 있는 두 마디 영어를 한꺼번에 쏟아내곤 머루 같은 눈만 깜박이고 섰던 그 꼬마들의 이름이다. 얼마 전 페이 마을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고 웃고 놀다 이틀 전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던 이름들이기도 하다. 라다크 사람들의 이름은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생각하며, 동네 꼬마들을 앞세우고 마을 끝자락에 있던 캠핑장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의 트래킹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캠핑장에는 텐트가 없다. 조금 전 앞질러갔던 진실, 아라, 수경, 정호만이 힘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 말로는 마을 끝까지 가보았지만 다른 캠핑장은 없다고 했다. 나는 지친 몸으로 마을 초입까지 다시 내려갔다 올라왔다. 캠핑장을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어디에도 다른 캠핑장은 없었다. 할 수 없이 마을을 지나 계속 걷기로 한다.
하필 이럴 때에 갈림길이 나오는 것은 꼭 영화나 소설에서 본 장면 같았다. 한쪽 길을 선택하여 걷다가 길을 찾지 못해 두 길 사이를 왔다 갔다 헤매는 동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우리들의 체력은 방전되어 갔고, 해마저 설산 너머로 귀가하려는 중이다. 그때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스님 한 분이 산에서 내려오시며 당나귀 10여 마리와 한국 사람들이 저 산 너머에서 캠핑을 하더라고 일러주신다. 스님이 아니었더라면, 그날 밤 우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가 마지막 힘을 짜내며 10시간 만에 도착한 캠핑장은 정말이지 화가 날만큼 아름다웠다. 내가 상상했던 히말라야 캠핑 풍경이 거기 다 있었다. 빙하를 머리에 인 설산과 그 아래 초원과 강물, 그리고 강물을 건너는 야크 떼와 당나귀들. 그 풍경 속에 놓인 원색 텐트들…. 먼저 도착한 아이들이 멱을 감고 빨래를 하며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첫날 트래킹은 산의 악착같은 맛을 느꼈는데 둘째 날 트래킹은 사막 같은 맛을 느낀 것 같다. 다른 힘든 고생도 느껴봤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힘들었다. 생 자갈 땅에 강렬한 햇빛이 계속적으로 비추어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길이 끝도 없는 공포라고 할까? 생각조차 하기 싫은 오늘이었지만 꿋꿋이 참고 견뎌낸 내가 대견스럽다.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철민)
아직 트래킹 2일째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 이상하다. 무릎이 욱신거리고 힘들다. 그래도 재밌다. 히말라야는 어디든지 진짜 멋있는 것 같다. 모래산 사이사이에 나있는 풀들. 졸졸졸 때로는 콸콸콸 흐르는 강. 카메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경치. ㅠㅠ. 이뻐이뻐. 그리고 정말 좋다. 지금처럼 이렇게 보랏빛 텐트 아래에서 이모랑 삼촌이랑 예인 오빠랑 다혜랑 아라 언니랑 노래를 같이 들으면서 일기 쓰고 있는 거.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민아)
트래킹 중에 인상 깊은 아저씨를 만났다. 오스트리아 사람인데 혼자서 무려 8개월 동안 히말라야 트래킹 중이라고 하셨다. 세상에…. 혼자서 그 짐을 다 들고, 와, 진짜 대단하다 싶었다. 별똥별아, 떨어져라. 언니 소원 좀 빌게. -(어린 여행자들의 일기, 아라)
그날 저녁 우리들은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지미’가 여기 힌주Hinju가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2시간을 내려가면 지프 택시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이 나온다 했다. 내일이면 4900미터 ‘꼰제 라(Konze-La) 고개’를 넘을 것이고, 따라서 고산증세는 더 심해질 테지만 이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뜻이다. 고산증으로 힘들어하던 아이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설명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물었다.
유진과 우현은 돌아가겠다고 했다. 발목을 다친 수경은 판단의 여지가 없었다. 아라는 끝까지 걷겠다고 했다. 진실과 솔지도 계속 가겠다고 했지만, 두 사람은 고산 증세가 다소 심각한 상황이어서 다음날 아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날 저녁, 쏜살같이 달려온 어둠 속으로 세 사람이 차례대로 찾아왔다. 먼저 솔지였다.
“너무 가고 싶어요. 그런데… 걸을 때 여기 심장이 너무 아파요. 저, 어떡하죠? 삼촌… 저 어떡해요?”
솔지의 마지막 말들은 거의 울음이다. 솔지가 돌아가고 다음으로 찾아온 이는 뜻밖에도 잘 걷는 예인이었다. 진실과는 제주교대 같은 과에 다니면서도 2살이 더 많아 진실을 많이 걱정하는 친구다.
“삼촌… 진실이, 돌려보내야 해요. 더 이상은 위험해요.”
예인이는 진실이가 틀림없이 고집을 피울 거라고 걱정했다. 혹시나 진실이로 인해 트래킹이 영향을 받을 것도 염려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온 이는 진실이었다.
“저 여기서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삼촌, 저 할 수 있겠죠? 네? 삼촌. 저,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면, 이 모든 고통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질 것인데, 왜 이 아이는, 그리고 나는, 또 우리들은,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그냥 포기하면 될 것을. 안녕, 손 한번 흔들어주고 그냥 돌아서면 될 것을. 그리하여 이번 여행은 여기까지라고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어도 좋았을 것을. 그까짓 게 무엇이라고….
그날 저녁 지미는 레로 전화를 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잠이 들지 못했다. 내일이면 여행사 대표인 겟쵸가 지프 택시 한 대를 보내올 것이고, 우리들의 일부는 그 택시와 함께 이틀 동안 걸어온 길을 되짚어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우리들은 여전히 길 위에 남을 것이다.
우리들의 트래킹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별똥별도 찾아와 주지 않는 무심한 밤은 깊어만 갔다. 돌아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시간들이 그렇게 깊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잠들지 못하는 우리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