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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PD Jul 12. 2021

여행을 만나기 위해 떠납니다

목적지는 같아도 목적은 달라요

코로나가 지구를 뒤덮기 전 초 겨울, 두 번째 두바이 여행의 코스에는 아부다비의 루브르 박물관 분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박물관을 들어가면 전시품들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사연들을 읽는 재미에 흠뻑 빠져든다. 르브루에서 아주 적은 양의 전시품을 빌려왔다지만, 주어진 한 시간 반에 모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충 훑으며 지나갈 수는 없다. 


옆에는 아부다비 박물관 건물의 아름다움과 페르시아만의 푸른 바다 그리고 중동의 높고 파란 하늘을 담고 싶어 하는 와이프가 있다. 둘 모두는 여행 출발 전 어느 투어를 선택할지에 대한 설문지에서 고민 없이 아부다비 루브르를 점찍었다. 하지만 온 이유는 다르다. 


두바이 여행 바로 전, 딸아이의 졸업 여행에 운전수로 유럽을 달리고 있었다.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딸아이의 여행은 유럽의 도시라는 점들을 이어가는 코스였다. 지난 영광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성과 궁전 그리고 성당들은 주요 방문지다. 여기에 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잘츠부르크, 빈, 프라하, 뮌헨으로 이어지는 유럽 도시 여행은 박물관보다 자연 속을 달리는 여행에 대한 선호가 더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사랑스러운 딸아이는 이런 아빠의 마음을 담아 라인 가도 드라이브 코스를 안내해 주었다. 여행의 피로가 사라지고, 여행의 충전 기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점에서 충적되지 않은 욕구가 선에서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여행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참 많은 곳들을 다녔던 기억들이 쌓여있다. 그 기억들을 더듬다 보면, 자연 속을 달리는 길 위의 차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1970년대의 경부 고속도로는 한가했다. 남해 상주 해수욕장을 향하는 길은 한국의 산과 논 그리고 강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즈음 소양호를 따라 인제로 향하는 44번 국도는 비포장이었다. 강과 산을 끼고 겨우 만들어지고 있던 도로는 한 시간을 달려야 겨우 한대의 차를 만날 수 있었다. 휴가철이면 주차장이 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그때의 도로는 나에게는 진정한 여행이었다.


힐링이었던 길이 자연과 멀어지고 차와 사람으로 붐비면서, 새롭게 찾은 도로는 양구에서 춘천까지 파로호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도로를 이리저리 휘청이며 달리는 그 시간이 여행의 선물이 되어준다.  


미국 서부를 사랑한다. 최고의 멍 때리기 드라이브 코스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함, 어디를 둘러보아도 공원으로 지정해도 될 자연의 작품들, 드문 드문 나타나는 작은 미국 서부의 주유소 마을, 길마저 직진을 거듭하면서 정신은 차원을 달리해서 달린다. 목적지로 정해진 국립공원은 그저 거들뿐. 여행의 맛은 광활한 자연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취하도록 즐기게 된다. 


사람을 4가지 혈액형으로 구분해서 성격을 파악하기 쉽지 안 듯,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을 동일 부류로 묶으면 안 된다.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함이 다르고, 즐기고 싶은 대상이 같이 않다. 같은 장소를 목적지로 정했다고 해서 여행의 목적이 같지 않을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질문이 많아진다. 너무나도 다른 여행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해 (기존에 알고 있었던 사람들과 함께 떠났음에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때론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여행의 디테일을 발견하기도 한다. 


코로나가 지나고 나면, 목적지를 정하게 될 것이다. 목적은 다를 수밖에 없는 이들과 함께할 예정이다. 저녁때마다 맥주와 와인을 앞에 두고 만나게 될 새로운 여행들이 기대된다. 물론 자연 속을 멍 때림으로 달리는 여행도 메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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