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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PD Jul 20. 2021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시대

공급 과잉의 덫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산업 혁명은 경제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산업 혁명 이전, 인류에게 생필품 부족은 일상이었다. 18세기 아담 스미스 앞에 펼쳐진 유럽은 산업 혁명의 초입이었으며, 분업을 통해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뤄내고 있었다. 이에 아담 스미스는 공급이 점진적으로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고,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그리게 된다.  유럽 대륙은 처음 경험해 보는 물질적 풍요로 나아가고 있었다. 당시 이러한 현실은 세이로 하여금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법칙을 제안하도록 한다. 다시 말하면, 수요가 부족해서 공급 과잉이 발생하는 일은 없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맬서스는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로 인한 공급 부족을 걱정하게 되는데, 곧 기우임이 드러난다. 


대량 생산은 대량의 원자재를 필요로 하게 되고, 대규모의 소비 시장 또한 필요로 한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에 대한 탐욕을 촉발한다. 정치적으로야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평화로운 농촌과 목가적 풍경이 이어지던 동양과 아프리카 등은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 혁명으로 인해 깊은 어둠의 역사로 빠져들게 된다. 지금은 초강대국인 미국조차도 당시에는 영국의 농산물과 원자재 공급 기지였으며, 유럽의 공산품과 중개 무역품의 소비 시장일 뿐이었다. 이를 거부하면서 보스턴 티 파티가 발생하게 되고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부지불식간에 독립을 향한 뜀박질에 동참하게 된다.


미국 제조업의 성장은 세계적인 공급 폭발을 가져온다. (남북 전쟁 당시, 유럽은 이를 예견하고 목화 공급원인 남부를 지원하고, 산업화하려는 북부를 압박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끝없는 철도 노선의 연장과,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기 혁명, 포드가 선보인 컨베이어 벨트 방식의 공정은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한다. 농업 분야에서도 대 농장화, 기계화는 수확량 증대로 이어진다. 더 이상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게 되어간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생산성 향상이 더 빨랐다.


공급이 수요를 넘치는 미증유 상황에 기존의 경제 해석 방법들은 삐걱거리며 소음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여기에 더하여 금본위제 화폐제도는 빠르게 증가하는 통화량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부족한 수요를 메워줄 시장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1920년대에는 자동차를 비롯한 고가의 내구제가 등장하던 시절이다. 오랫동안 착취당했던 식민지인들에게는 구매력이 없음은 당연했다. 수요-공급 간 불균형을 해결할 묘안이 필요했다.


전쟁이 발발한다. 1차 대전은 인명을 쏟아 넣었다고 한다면, 2차 대전은 인명뿐 아니라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던 양의 물자를 불가사리처럼 먹어치운다. 날로 발전하는 무기들은 유럽과 일본의 생산 시설을 초토화한다. 드디어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맞춰진다. 아니, 공급이 수요를 부지런히 따라가야만 했다. (이때부터 여성 노동 참여가 본격화된다. 여권 신장도) 참전국이지만 진주만을 제외한 영토 어디도 전쟁터가 되지 않았던 미국은 천운을 맞이한다. 만들기만 하면 얼마든지 팔 수 있는 초 호황 국면이다. 그리고 미국은 모든 생산에 필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였다.


세계의 부는 미국으로 급격히 쏠린다. 전쟁은 미국을 승전국으로 만들고, 경제적인 최부국으로 밀어 올린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상황이 낯설다. 오랜 세월,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패권 국가였던 영국은 노하우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힘이 고갈된 상태였다. 영국의 케인즈는 미국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역할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고 전해지지만, 모든 것이 생소하던 시절이다. 


미. 소 냉전은 미국으로 하여금 추축국 독일과 일본의 재건을 도울 수밖에 없도록 한다.  미국은 서서히 소비 시장으로서 세계 경제를 받쳐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자본주의 진영을 지켜야 하는 미국은 중동의 석유와 그 이동의 안전을 지켜내야 하는 의무 또한 자의 반 타의 반 짊어진다. 군사적 지출까지 더해지면서 미국은 초대형 소비 시장으로 진행해 간다. 소비가 힘인 시대에 미국은 다시 한번 패권을 강화한다. (이로 인한 쌍둥이 적자는 금본위제를 포기한 기축 통화의 힘으로 아직도 우려가 현실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독일과 일본의 지나친 성장을 경계한 미국은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를 통해 독일, 특히 일본의 도발을 저지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저렴한 공산품 제공 기지를 찾게 된다. 미국은 이미 제조업 국가에서 멀어지고 있는 터였다. 다음으로 간택된 국가는 한국, 대만이고, 그다음은 중국이다. 이는 미국 소비자에게 천국을 선물한다. 공산품은 넘쳐나고 가격 상승률도 낮다. 날로 성장하는 자본 투자와 서비스 산업을 통한 수입은 미국인의 집과 차와 냉장고가 날로 커지게 한다.


다시 수요 공급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중국 15억 인력 투입은 미국의 수요 증가를 추월하기에는 충분한 공급을 만들어낸다. 다시 한번 공급이 수요를 큰 폭으로 추월하게 된다. 소련 붕괴와 동구권 국가의 자본주의로의 유입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게 된다. 2019년 말, 코로나는 잠시 수요와 공급을 맞춰주는 듯했지만, 이내 공급은 정상화되고 있고, 재난 소득을 통해 일시적으로 증가했던 공산품 소비도 주춤하려 한다. 


그래서일까? 트라우마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생산 시설을 파괴하여 공급을 줄이고, 수요를 늘리는 방안으로 가장 확실한 해결책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가 전쟁터가 될까. 미국 등 선진국은 투자가 많이 된 지역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세계는 투자라는 고리로 복잡하고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앙은행과 정치인들 입장에서 투자 손실은 금융 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에 부담스럽다. 가장 큰 문제는 미봉책이라는 점이다. 이라크 전쟁 등을 통해 확인된 바, 시간은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해법은 아니다.


ESG를 향한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환경 보호는 지구와 후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사회적 안정망과 경영의 투명성 등은 기본권에 해당한다. 국가와 기업의 신규 투자를 통한 수요 확대가 기대된다. 하지만, 이 또한 어느 순간 수요를 더 이상 스스로 창출하지 못할게 분명하다. 신기술의 운명이 그러하듯. 그래도 전쟁보다는 건설적인 해법인 듯하다.


분업을 역행하는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글로벌 벨류 체인을 적당히 해체하는 방식이다. 지나치게 효율화된 생산 시스템이 가져온 공급 증대 지향 노선을 버리고, 공급량을 조절하고, 인건비와 제품 마진을 확보하는 방향이 그것이다. 자국 내 고용이 확보되어야만 소비를 촉진할 수 있고, 공급 과잉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벨류체인의 해체는 미. 중 패권 전쟁을 통해 진행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것도 궁극적 해결방안이 되기에는 기술 발전 기울기가 가파르다. 로봇은 인간을 대체할 수밖에 없다. 인간적인 삶에 대한 욕구는 열악한 노동 환경을 더 이상 감수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공산품에 초점을 맞춘 공급과 수요에서 벗아나 보자. 서비스로 눈을 돌리면 감정 노동이 보인다. 그리고 최저 임금도. 다시 눈을 돌려보자. 인간은 창작 활동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한다. 물질적 풍요를 이루고 나면 정서적 풍요로움을 추구한다. 원자재는 창작에 대한 열정이 대부분이며, 인건비 비중이 높다. 다시금 수요 창출로 이어지기 쉽다. 콘텐츠의 저렴한 가격은 수요 확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시장이다. 오랜 세월 인류가 쌓아온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농업 혁명은 인류세의 기반을 제공하면서 신분제와 전쟁을 안겨 주었다. 산업 혁명은 물질적 풍요의 가능성을 열면서 식민 역사와 온난화의 아픔을 남겼다. 이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려 한다. 인간 본성과 기본적 욕구에 부합하는 변화로 여겨진다. 인류는 지금까지 수 없는 난제들을 풀어냈다.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이러한 해결 본능은 이어질 거라 믿는다면 너무 낙천적인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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