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미래》

2020년의 기술이 보여주는 공감의 사회·정치

by 이원규
32473435646.20241214071255.jpg 《감정의 미래》, 케이틀린 유골릭 필립스, 2020, 라이스메이커

제목은 《감정의 미래》이지만, 부제인 “언택트 시대와 Z세대, 기술보다 소중한 공감에 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책의 내용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2020년 무렵의 미국을 배경으로, 공감을 다루는 IT와 이를 둘러싼 사회운동가와 기업가들의 활동을 다룹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편집자로, 공감 기술을 주제로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자유기고가입니다. 책이 언론 보도의 연장선처럼 읽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것입니다. 책을 이루는 여러 장들은 하나의 주제로 묶여 있지만, 글쓴이 개인의 확고한 의견을 표현하기보다는 각 주제와 연관된 여러 기술들과 이를 활용하는 방식들을 취재하는 형태에 가깝습니다. 공감을 다루는 IT 기술로는 언어 분석 인공지능(정서·담론 분석 등), 교육·게임 앱, 체험·보도 VR, 챗봇과 로봇 등이 제시됩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최신 기술과 업계 동향을 보여주는 뉴스에 가까운 책이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고 나서 읽기에는 이 책에서 나오는 새로운 기술들이 이미 구식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 설계된 챗봇들은 챗지피티 이후 빅테크 기업들에서 연이어 내놓은 대형 언어 모델(LLM)의 범용 대화와 정교한 정서적 모사 앞에서 그 가치가 많이 바랜 듯이 보입니다. 책에서는 VR을 여러 장에 걸쳐 비중 있게 다루는데, 2026년 시점에서 VR이 언론 보도나 일반인의 경험에 얼마나 퍼져 있는지 생각해 보면 괴리감이 듭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기술 그 자체보다는 기술이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다양한 관점으로 비춰 줍니다. 책은 더 나아가 순기능은 촉진하고 역기능은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다루는 논의도 싣습니다. 결국은 기술만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계가 있고, 공감으로도 사회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책은 주로 비백인, 외국인, 난민, 소수성, 낙태 여성 등 미국 기준으로 진보적인 의제를 공감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 초입에서는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주제로 경찰관에게 공감할 수는 없었을까, 미국 선거 후에는 트럼프 지지자에게 공감할 수는 없었을까 하면서 진보에게 보수가 일방적으로 공감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시사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공감이 진보가 보수를 설득하는 언어로 묘사되기보다는, 진보 내에서도 흑인에게 백인 진보주의자가 공감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등 진보 내부의 난점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입니다. 공감이 정치적인 무기로 동원되기 쉽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 책은 공감이 과연 진보 내에서도 행동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 적합한지 묻습니다.


제목에서 감정이 기술을 만나 어떻게 변화할지 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의 가치는, 공감 IT 기술이 어떤 사람들을 공감받아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고, 누가 그들에게 공감해야 하는지 정의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데에 있습니다. 즉, 기술 뒤에 깔린 사회적 가치와 정치적 전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기술은 바뀌었어도, 정치적 의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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