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더 있지 않을까

앞서서 걸어가시던 엄마의 뒷모습

by 바쁜남자

엄마의 무릎 수술 후, 몇 년이 지났다. 수술이 잘못된 것인지 회복이 더딘 것인지, 걷는 게 아직 불편하시다. 평지에서는 곧잘 걸으시는데, 경사진 곳이나 비탈진 곳은 좀 버거워하신다. 그래도 건강을 위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걷기운동을 하고 계신다.



오랜만에 걷기 운동을 따라갔다. 평소 같았으면 집 근처 유등천변을 걸었을 텐데, 그날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대전 근교로 벗어나 보자고 하셨다. 전에 아빠와 한번 다녀왔던 곳인데 같이 가보면 좋을 것 같다며 부소담악에 가보자고 하셨다. 나는 순순히 엄마의 뜻을 따랐다.



충북 옥천에 있는 부소담악은 물 위에 떠 있는 산이라 하여, 대청댐이 준공되면서 산 일부가 물에 잠겨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곳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산길을 쭉 걷다 보면 왼쪽에도 호수가 있고, 오른쪽에도 호수가 있어 멀리서 보면 그야말로 절경이다.



부소담악에 도착하여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데 처음은 나쁘지 않았다. 길이 잘 가꿔진 평지를 따라 걸으며 주변을 구경하였다. 그런데 어느 지점을 넘어가니 경사도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돌을 밟으며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이 물에 잠겨 만들어진 곳이니 아래쪽은 길을 다져놓은 곳일지라도 위쪽은 산길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엄마가 걷기에는 좀 힘드실 것 같은데, 전에도 한 번 와봤던 곳이라며 계속 걸어가셨다. 길이 하나뿐이라 내 뒤에는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었고, 내 앞에서는 주변에 있는 돌과 나무를 잡아가며 조심스럽게 걸어가시는 엄마가 보였다.



“아니 뭐 이런 데를 왔어. 걷기도 불편하신데 괜히 위험하게.”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생각해서 말한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툭 튀어나왔다. 내 뒤에 있던 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언뜻 봐도 다리가 불편해 보이시는 분이 그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계시니, 뒤에서 지켜보는 분들도 불안하고 답답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걷는 게 그렇게 불편해 보여?”


“당연히 불편해 보이지. 그냥 평지만 걸으면 될 것을 굳이 왜 산길까지 와. 이런 곳 걸어봤자 엄마한테는 운동 안 돼요.”



어머니는 별말 없이 가던 길을 가셨고, 끝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도 돌과 나무, 때로는 내 손에 의지하여 천천히 걸어가셨다.



산길을 지나고 보니 다시 평지에 도달했다. 걸으면서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엄마가 앞서서 걸어가셨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저만치 앞에 가 계신다.



“엄마, 천천히 가요. 화장실 가시게?”



뒤도 안 돌아보고 걷던 엄마는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 평지에서는 잘 걸어. 이렇게 걸어야 운동 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과 함께 걷기 운동을 마치고, 같이 점심을 먹은 뒤, 부모님은 부모님 댁으로, 나는 내 자취방으로 갔다.



그날 밤, 잠들려고 자리에 누웠는데 아까 엄마가 하셨던 말씀이 영 마음에 걸렸다. 만약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면, 불편한 마음을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냈을 것이다. 아까는 죄송했다는 말 한마디면 끝나는 일인데, 내게 그럴 용기는 없었다.



그나마 서로 떨어져 지내고 있으니, 글 뒤에 숨어 죄송한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 엄마께 문자를 보냈다.



“아까 걸을 때, 걷는 게 불편해 보인다고 했던 거 죄송해요.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참고 무리해서 걷지는 마세요. 쉬세요.”



조금 있다가 엄마한테서 답장이 왔다.



“괜찮아~~ 저녁은 먹었어? 늦은 시간이니 편히 쉬거라 ^^”



생각했다. 그런 게 더 있지 않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 참고 계신 게 더 있지 않을까. 말씀해주지 않으셔서 내가 모르고 있는 게 더 있지 않을까. 그동안 나도 모르게 엄마께 상처를 드린 말들이 더 있지 않을까. 먼저 앞서서 걸어가시던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간신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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