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니라고 느낄 때
홀로 자취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끼니를 걱정한다. 그동안 집에서 편하게 엄마가 해준 밥만 먹다가 혼자 힘으로 끼니를 해결하려고 하니, 처음에는 그저 막막할 수밖에 없다.
“역시 자취의 꽃은 요리지!”
예능 「삼시세끼」나 「나 혼자 산다」를 보며, 슬슬 요리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직접 해본 요리라고는 라면이 전부이기에 유튜브와 블로그를 보면서 다양한 요리에 도전해본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퇴근 후 피곤한 평일 저녁보다는 시간이 충분한 주말에만 요리를 하게 된다. 큰맘 먹고 요리 한번하고 나면 온갖 주방도구들로 부엌이 난리가 난다. 그럼 이제는 슬슬 요리를 기피하게 되고, 요리하려고 미리 사둔 파, 양파, 마늘마저 슬슬 썩기 시작한다.
요리를 포기하면 미리 얼려둔 쌀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5분 돌리고, 지난 주말에 엄마 집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대충 때우면 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러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진짜 이상한 날이다. 요리는 귀찮고, 그렇다고 쌀밥은 먹기 싫고. 그렇다고 시켜먹자니 특별히 끌리는 것도 없고, 돈도 아깝고.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인간의 마음이다. 이런 나를 보면 인간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역시 만만한 게 김치볶음밥이지!”
이럴 때는 만만한 게 김치볶음밥이다. 조금 귀찮더라도 프라이팬에 카놀라유 살짝 두르고, 집에서 가져온 신김치를 살짝 볶고, 전자레인지에 돌린 쌀밥과 고추장과 참기름을 살짝 넣고, 살짝만 볶으면 끝이다.
이렇게 몇 번의 살짝 살짝만 반복하면 그날 한 끼는 가볍게 해결할 수 있다. 따로 반찬을 꺼낼 필요도 없다. 김치볶음밥을 예쁜 그릇에 옮겨 담을 필요도 없다. 프라이팬에 담긴 김치볶음밥 그대로 먹고 나서 설거지하면 끝.
그런데 문제는 그런 김치볶음밥 마저도 슬슬 질릴 때가 온다. 이제는 김치볶음밥에 다른 재료를 추가로 넣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참치김치볶음밥, 햄김치볶음밥, 스팸김치볶음밥, 대패삼겹살침치볶음밥, 목살김치볶음밥, 닭가슴살김치볶음밥이 탄생한다.
심화단계도 있다. 집에서 가져온 반찬이 어중간하게 남았을 때, 김치볶음밥에 때려 넣는다.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속칭 짬처리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 오뎅김치볶음밥, 멸치김치볶음밥, 진미채김치볶음밥, 콩자반김치볶음밥 같은 독특한 메뉴가 탄생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김치볶음밥이 그 김치볶음밥 같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엄연히 다른 김치볶음밥이다. 김치볶음밥에 이런 저런 재료를 넣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늘 먹던 김치볶음밥에 부여하는 자그마한 재미요소다. 그 덕분에 오늘도 나는 새로운 스타일의 김치볶음밥으로 가볍게 한 끼 해결할 수 있었다.
“혼자 살아봤자 별거 없어. 괜히 힘들 게 뭐 하러 해?”
독립하여 혼자 사는 일상도 이와 비슷하다. 독립을 적극 권장하는 사람도 많지만, 혼자 살아 봤자 별거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작도 전에 별거 아니라고 느낄 때, 우리는 그 무엇에도 새롭게 도전할 수 없고 시작할 수 없다. 김치볶음밥에 별의별 재료를 넣어보는 것도 애초에 자취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 평생 경험해보지 못했을 일이다.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면, 흥미를 잃고 무기력에 빠지고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가 별게 아니라고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늘 김치볶음밥에 어떤 재료를 넣을 것인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작은 변화만 주어도 어제와 다른 오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