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바치는 이야기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의 관극 리뷰

by 윤슬조
2024년 8월 17일 관극의 기록



베어 소개


그 무엇보다 비극 그 자체인 이야기. 사회의 억압이 아이들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받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규율과 교리라는 이름의 구속을 일삼는 가톨릭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각자의 어려움으로 방황하고 고민하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그중에서도 동성 연인 피터와 제이슨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피터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아 하며, 제이슨은 사회적 시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를 회피하고 들키지 않으려 한다. 피터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지만 번번이 좌절하며, 제이슨은 얘기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연기하며 살아간다. 이에 누구보다 진실한 사랑을 했던 두 청년이 외부의 압력과 위기에 의해 어긋나고 되돌아갈 수 없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 안에서 역시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로서의 나를, 다른 한 편에서 그 고통을 주고 있는 가해자로서의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극이다. 이야기는 결국 너를 통해 나를 보는 일이기 때문에.






베어의 매력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게 정이 간다는 점



로미오와 줄리엣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학교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베어는 여러 배우가 한꺼번에 무대에 올라와 연기하는 장면이 많다. 이때 특장점은 정말 학교 교실, 복도 등의 장소에서 생활하는 듯한 아이들을 보는 듯한 생생한 장면에 있다.


<위키드>의 한 장면


예를 들어 같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위키드는 중심인물 글린다와 엘파바에게만 스포트 라이트를 비춘다. 나머지는 그저 주인공을 뒤받치는 앙상블이다. 당연하다 그들은 이름도 없다...



<베어 더 뮤지컬>의 한 장면


베어에서는 한 명의 배우가 목소리를 내면, 모두가 그를 보조해 주기보다도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며 전체를 이룬다. 이 편에서 피터가 노래를 해도 어느샌가 나는 저 편 구석에서 자기끼리 사랑 싸움 하는 다른 아이들. 또 다른 곳에서 열심히 선생님한테 자신을 어필하려고 노력하는 모범생 친구를 살피며 미소 짓게 된다.


베어는 단순히 주인공 피터와 제이슨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방황하는 아이들 전체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이를 통해 베어가 하고 싶은 건 단순히 연인 서사를 전시하는 로맨스극을 넘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사회극임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너도 나도 각자의 아픔이 있잖아


베어의 입체성은 극의 중심이 되는 피터와 제이슨을 제외하고도 다른 아이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개인 넘버로 인물의 서사를 깊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 나디야의 아픔


누구보다 공감이 간 친구는 나디야였다. 그의 넘버를 듣기 전까지 관객은 친구 사이에서의 나디야만을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나디야는 무례하고 날카롭게 친구를 상처 입히는 아이일 뿐이다. 나디야가 벼르는 말의 끝은 항상 아이비를 향해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너무 집요하다 이 정도면 학교폭력이다 싶다.


곧 관객은 사랑하는 오빠 제이슨과 있을 때의 편안한 모습의 나디야(Plain Jane Fat Ass), 늦은 밤 홀로 나지막이 노래 부르는 나디야(Quiet Night at Home)의 모습을 목격하며 그의 속내를 알게 된다.

(왼) 넘버 Plain Jane Fat Ass / (오) Quiet Night at Home


나디야는 사실 외모 콤플렉스로 속이 곪아버린 아이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자신도 세상을 미워하기로 택한 아이다. 한가운데에 외모 콤플렉스를 넣고 농담으로 단단히 묶어 던져버려 왔다. 나디야는 자신을 아무도 사가지도 만지지도 원하지 않을 못난 인형에 비유한다. 어른들은 좀 더 크면 예뻐질 거라 위로했지만 이젠 자신은 다 커버렸다고, 나에게 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외로움을 속삭이듯 고백한다.


그는 가장 가까운 사람인 오빠 제이슨, 소꿉친구 아이비는 멋진 외모로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과 이성 관계에서 항상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을 발치에서 바라보며 컸고 결국 비뚤어져 버린 아이다. 외모 평가, 그에 따른 태도 변화 등 외모지상주의적 폭력을 온전히 감당하며 자란 아이는 이를 내재화해 버린 청년으로 자라났다. 결국 세상에 같은 폭력을 또 다른 방식으로 내놓는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폭력은 대물림되고 말았다.


나디야의 폭력적 언행은 결코 옹호될 수 없으나, 우리는 그것이 나디야 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이젠 알 수 있다. 우리는 나디야의 모습을 통해 저 아이를 몰아간 세상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잘못되었는지 이해하고 짐작할 수 있게 된다.




- 아이비의 아픔


누구보다 마음이 가는 친구는 아이비다. 아비는 예쁜 외모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화려한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 같아 보인다.


(왼) Touch My Soul / (오) All Grown Up


하지만 관객은 Touch My Soul과 All Grown Up의 넘버를 통해 아이비 또한 그저 외롭고 애정을 바라는 소녀임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단 짝이었던 나디야는 왜인지 모르게 자신을 미워하며, 진심으로 대했던 연인들의 관계에서 모두 배신을 당해 이는 모두 그의 추문이 되었다. 누구보다 성숙해 보였던 아이비조차 세상의 압박에 괴로워하는 아이였다. 이 성 세실리아 기숙학교에 아프지 않은 아이는 없다. 당연하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모두 각자의 아픔을 가졌다는 건, 단순히 상대를 재단하고 미워해선 안된다는 것


에세이 <일기시대>를 통해 문보영 작가는 말한다.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삶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 해진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사실 참 쉬운 일이다. 세상에는 나디야처럼 말을 함부로 하는 이도, 아이비처럼 추문이 끊이지 않는 이도 흔하다. 나라고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과 폄하에 동참하지 않고 결백했을 리 없다.


하지만 일기처럼 솔직한 어투로 말하는 베어 더 뮤지컬을 볼 때마다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선 안된다는 걸. 좀 더 자세히 관심을 기울여 보면, 단순히 개인의 잘못이 아닌 우리의 잘못이 낳은 결과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며 : 세상의 모든 제이슨, 피터, 나디야, 아이비, 아이들을 위해



베어 더 뮤지컬은 끝도 없이 무너지는 비극의 이야기다. 폭주기관차 마냥 배드 엔딩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내가 왜 이런 불행을 지켜보아야 하나 같은 생각마저 든다. 베어 더 뮤지컬은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치를 사용하는 극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어가 좋은 뮤지컬로 내게 남은 이유는 이 배드 엔딩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어떻게 해야 세상에 또 다른 제이슨, 피터, 나디야, 아이비와 정말 모든 아이들이 다른 해피 엔딩을 맞을 수 있게 고민하게 만드는 극이기 때문이다.


극 내내 커밍아웃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던 피터는 수녀님의 조언으로 자신의 중심을 잡게 된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제이슨은 반대로 수녀와 같은 어른의 부재로 오히려 그를 억압하는 어른의 존재와 좌절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피터에게 손을 내민 수녀님의 넘버 God don't Make No Trash는 이극 전체를 관통하는 넘버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겐 수녀님과 같은 어른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몰아세운 건 각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사회 통념이었다. 남자와 남자의 사랑은 말도 안 돼, 예쁘지 않은 여성은 매력 없어, 남자를 많이 만나는 여성은 문란해. 이 유치하게 느껴지는 문구들이 칼날이 되어 아이들을 찔렀다. 이젠 더 이상 아이들을 다치지 않길 바란다. 상처 입고 졸업하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에게 위로와 관심을 잃지 말길. 이제 또 다른 미 졸업생이 생기지 않기를.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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