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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희 Aug 06. 2020

지금 반항하니?

- 전 최선을 최선을 다했어요

"나의 살던 고향은~"

이 노래는 초등학교 4학년 음악시간에 부른 노래다.


음악시간 이후 친구들은 내가 부른 노래를 흉내 내면서 불렀다.

정확히 말하면 노래를 흉내 낸 것이 아니다.

친구들이 흉내 낸 노래는 노래가 아니었다.

국어 교과서 읽듯이 부르는 노래였다.

나는 충격이었다.

내가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아니, 국어 교과서를 읽었나?라는 생각에 슬펐다.

이건 음치가 아니다.

노래에 구제불능의 수준이다.


초등학교 4학년 음악시간은 좌절의 시간이었다.

그 후 친구들의 놀림은 계속되었다.

어린아이들의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심했다.

나를 볼 때마다 앞에서 대놓고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친구들이 놀리듯 부르는 노래에 반항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노래 시험을 보는 음악 시간만 되면 아팠다.

그러면서 핑계 아닌 핑계를 댔다.


"목이 아파요."

"감기 걸렸어요."


선생님은 거짓말인 줄 알면서 하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넘어가 주셨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까지 하얀 거짓말로 순조로운 음악시간을 보냈다.

음악시간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친구들의 놀림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의 거짓말을 눈감고 넘어가 주신 선생님을 은인이라 생각할 정도로 고마웠다.

그렇게 음악시간을 넘긴 날을 너무 신났다.

더 이상 노래를 안 불렀도 된다는 생각 때문에.

더 이상 친구들 앞에서 창피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에.

나의 이런 달콤한 생활도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끝났다.





고등학교에 입학 후 첫 음악시험 보기 전날 한숨도 못 잤다.

노래 연습을 아무리 해봐도 나아지지 않았다.

동생들까지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동생들은 노래를 잘 부른다.

부러웠다.

연습하고 연습하던 끝에 동생들이 하는 말

"누나, 이 이상 안 되겠다."

동생들도 포기한 나의 노래실력.

울고 싶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짓말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하면 그럴듯한 거짓말이 될까?

어떤 말을 하면 선생님이 그냥 넘어가 주실까?

어떤 말을 하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을까?

거짓말 리스트를 만들면서 나를 음치로 낳은 부모님까지 원망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도망치고 싶었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나에게 음악시험 점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음 날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음악시간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노래 시험이라 친구들은 옆에서 노래 연습하느라 시끄러운 데 나는 멍하니 칠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쿵광쿵광

떨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노래 시험이 시작되었다.

친구들은 순조롭게 노래를 불렀고 선생님은 노래 점수를 적었다.


내 차례가 왔다.

선생님이 이름을 불렀다.

"고경희"

"네?"

"노래 불러"

"저 목이 아파서요."

"목이 아파도 불러봐. 넘어가는 건 없어 무조건 한 소절이라도 불러야 돼."

선생님의 단호한 말씀에 나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음을 알았다.

쭈뼛쭈뼛 일어섰다.

순간 주위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 없이 너무 조용했다.

모두가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느낌이다.

울고 싶었다.

주저앉고 싶었다.

선생님이 미웠다.

노래 빨리 하라는 선생님의 재촉에 친구들의 시선은 호기심에 찬 눈빛이었다.

얼떨결에 노래를 불렀다.


그때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

"그게 노래니? 왜 노래를 그런 식으로 불러? 반항하니?"

"그게 아니고..."

"점수 없다"

40명이 넘는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


'그러게 왜 노래를 부르라고 그러셨어요?'

나는 오히려 노래를 부르게 한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반항하냐고요? 저 이제까지 반항이라는 걸 해본 적도 없어요. 반항이 어떤 건데요'

라는 말만 마음속에 맴돌았다.


음악시험 이후 다행히 친구들은 놀리지 않았다.

고등학생이라 그런지 대놓고 놀리지는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달라졌을 뿐이다.

난 친구들의 눈초리를 느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강한 척 행동했다.

친구한테 말하는 말투가 강해졌다.

친구들의 말에 반응을 잘하지 않으면서 무뚝뚝해졌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에 독을 품고 살았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지역에서 합창으로 유명한 학교이다.

합창제에 나가면 언제나 상을 받았던 학교이다.

그만큼 선생님의 명예도 좋았다.


음악 선생님은 음악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멋진 선생님이다.

그런 음악 선생님이 국어책 읽듯이 노래 부르는 나의 모습이 당신에게 저항하는 모습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의 명예를 더럽힌 학생이었던 것이다.

음악시간만 되면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길이 싫었다.

그때부터 나는 소심한 반항을 했다.

음악시간에는 결석을 한 것처럼 음악실에 가지 않았다.

어떤 날을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나는 음악을 피하고 싫어하다가 나의 생활에서 음악을 없앴다.

평소에 노래를 못하지만 흥얼거리던 음악조차 듣지 않았다.

나는 점점 흥이 없는 삶을 살았다.

음악을 삶에서 없앴다.

음악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해다.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음악을 들을 때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직 내면의 어린 자아가 힘들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내면의 '나'에게

'이젠 괜찮아, 넌 최선을 다했어. 선생님이 나빴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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