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탐 10
19.
다음날도 동현은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하며 일어났다. 이젠 아침의 알람소리가 울릴 쯤에 자동으로 먼저 일어난다. ‘일어날 시간이지’ 하며 가볍게 일어난다. 어제 자기 전에도 여자탈의실의 민정님 팬티와 다리를 되새기며 잠들었다. 오늘도 도전해 보자.
동현은 어제 편의점에서 산 빵과 우유를 대충 먹고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원룸 앞 대충 세워놓은 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건다. 시계가 7:00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좋다. 항상 이 시간이다. 동현은 늘 정해놓은 패턴에 맞춰 차에 타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도 신호에 걸리는 일이 없이 잘 왔다. 노랑불일 때에는 항상 액셀을 밟아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넌다. 그럴 때마다 동현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출근하니 오늘은 승현 님이 계시다. 또렷하고 동그란 눈으로 동현을 쳐다보며 인사해 주신다. 혜정 님도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인사해 주신다. 동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탈의실로 향한다.
옷을 갈아입으며 또 선호님의 캐비닛에 눈길이 가서 슬쩍 열어본다.
근무복, 담배, 라이터. 근무복은 어제 급하게 벗고 갔는지, 정리가 안된 모양이다. 벨트와 근무복이 마치 뱀이 꽈리를 틀고 있는 모양으로 구석에 불쌍하게 처박혀있다.
옷을 갈아입고 내부 쪽문을 통해 실험실로 들어간다. 냉장고에서 캔콜라 하나를 꺼내고는 여자탈의실 안쪽 창문 앞에 쪼그려 앉는다. 마침 밖에서 인사소리가 들린다. 누가 들어오는 건지는 잘 못 들었다. 민정님이겠지 생각한다.
동현은 긴장하며 창문의 시트지 틈새를 바라보고 있는다. 아직 여자탈의실은 캄캄하다.
근데 다른 데서 소리가 들린다. 남자탈의실이다. 남자탈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다. 남자 직원이 온 것이다. 누가 이렇게 빨리 왔지. 괜히 여기 있다가 들키면 안 되겠다 싶어서 동현은 실험실 문으로 나갔다. 사무실 자리로 돌아온 동현은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는 남자탈의실 쪽으로 바라보고 있는다. 누굴까. 누가 이렇게 빨리 온 거지. 그때 사무실 입고서 민정님의 높고 큰 인사 소리가 들리고 환한 민정님의 얼굴이 보인다. 오늘은 스트라이프 긴 티에 아이보리 면바지를 입고 왔다. 동현은 안경너머 작은 눈을 최대한 눈웃음 지으며 반갑게 인사한다.
곧이어 탈의실 불을 끄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탈의실 문이 열린다. 그러면서 기다란 다리가 나오고 멋진 몸매의 모델 같은 남자가 나왔다. 선호님이다. 선호님이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일찍 출근했다. 매번 일찍 오지 않다가 어제부터 일찍 온다. 동현은 또 경계를 한다. 이젠 출근 시간까지 일찍 오면서 동현을 방해하는구나 생각한다.
그때 다연님도 사무실 입구를 들어오며 병아리 같은 작은 소리로 인사한다. 동현은 무심하게 안경너머 작은 눈으로 바라보며 인사한다. 다연님은 반갑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여자탈의실 쪽으로 향한다.
20.
오늘은 금요일. 5일간의 출근은 알게 모르게 피로를 쌓이게 한다. 딱히 힘든 건 없는데, 사무실에 앉아서 윗사람들 눈치 보는 거 자체가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아침 출근 시간은 동현의 하루 중 가장 도파민이 붐비되는 시간. 아무도 모르는 동현만의 비밀. 여자탈의실 염탐하기.
오늘도 출근하며 늘 똑같은 승현 님과 늘 똑같을 줄 알았지만 오늘은 펌을 해서 다른 모습의 혜정 님과 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들어선다.
“펌 하셨네요. 잘 어울리셔요”
“오랜만에 펌 해봤어”
혜정 님께 놀라는 모습을 하며 인사를 건네자 혜정 님은 방긋 웃으시며 무척 좋아하신다. 입을 가리면서 웃으시고는 머리를 만지작 거리신다. 근데 확실히 전에 생머리보다는 낫다. 그전에는 되게 나이 들어 보였는데, 펌을 하니 그래도 그전보다는 5살 정도는 젊어 보였다.
동현은 탈의실에서 얼른 옷을 갈아입고는 내부 쪽문을 통해 실험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냉장고를 열지 않았다. 이제 날이 추워지니 차가운 음료수에 손길이 가지 않았다. 그냥 잠복해서 여자탈의실을 염탐하다 나가야겠다 생각한다.
실험실 내부 여자탈의실 창문 쪽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데 바깥에서 인사소리가 들린다. 남자다. 선호님인가. 요즘 일찍 출근하던데. ‘오늘도 틀렸군’ 하며 나가려 하는데 갑자기 여자탈의실 문이 열리고 불이 켜진다. ‘뭐지’ 하며 창문의 시트지 떨어진 작은 틈새로 들여다본다. 선호님이 근무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채 여자탈의실로 들어와서 불을 켠 것이다. 어두운 감색 셔츠에 남색 면바지를 입은 긴 장신의 선호님은 여자탈의실 안을 둘러보더니, 캐비닛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위쪽에 뭔가를 쓱 올려놓는다. 워낙 높은 곳이고 동현의 시야가 창문 끄트머리 시트지가 살짝 떨어진 좁은 공간으로 들여다봐야 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확실한 건 선호님이 여자탈의실 캐비닛 위에 무언가를 올려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곧바로 입구로 향하더니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나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30초 정도 걸렸던 거 같다. 무척 급하게 진행하고 나간 선호님이다. 뭐지. 선호님이 왜 아침 일찍 와서 여자탈의실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캐비닛 위에 올려두고 나간 건가. 동현의 머릿속엔 갑자기 전에 선호님 캐비닛에서 봤던 소형카메라가 떠오른다. 소형 카메라를 캐비닛 위에 몰래 둔 거 아냐? 몰카범? 동현의 머릿속은 그렇게 범죄의 상황을 구상하고, 심장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잠깐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고, 일단 사무실로 나가야지 하며 실험실 문을 통해 얼른 나갔다.
본인의 자리로 간 동현. 심각한 표정으로 남자탈의실을 주시하고 있다. 안경너머의 작은 눈은 더 작아지며 남자탈의실을 유심히 보고 있다. ‘지금쯤 선호님은 남자탈의실 안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걸까. 소형카메라 잘 작동하는지 보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민정님이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사무실 입구를 들어선다. 항상 밝은 미소로 인사하며 들어오는 민정님. 오늘은 하얀 미니스커트에 하얀 레깅스를 입고, 상의는 핑크색 스웨터를 입었다. ‘너무 이쁜 거 아냐?’ 생각하는 동현. ‘불금이라 오늘 약속 있는가. 그나저나 전에 못 먹었던 막걸리에 파전 먹어야는데, 언제 얘기하지.
아 그게 아니지, 여자탈의실 안에 카메라가 있는데, 민정님 들어가서 옷 갈아입으면 안 되는데.’
동현은 머릿속으로 온갖 걱정 가득한 생각들을 하며 자기도 모르게 여자탈의실로 향하는 민정님을 향해 제자리서 한쪽 팔을 앞으로 쭉 뻗는다.
“뭐 하냐”
갑자기 앞자리 혜정 님 옆에 앉아 계신 승현 님이 동현에게 묻는다.
“갑자기 팔을 왜 앞으로 뻗으면서 인상을 쓰고 그래?”
“아 갑자기 팔이 좀 저려서..”
동현은 급히 변명을 하며 팔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