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탐 9
17.
준혁은 아침에 탈의실에 들어갔다가 동현이 선호 캐비닛에서 발견했다는 소형 카메라를 보고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요즘 아내가 수상한데 소형 카메라를 집에 달아보자는 아이디어.
물론 들키면 이혼각이다.
하지만 너무 수상하다. 어제도 술에 취해 집에 갔을 때 분명 집에서 누군가 나온 걸 느꼈다. 저세상을 헤매면서도 집은 알아보는 법. 동현의 부축을 받으며 집이 다 와간다는 소리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그리고 아내 나은의 얼굴을 떠올렸다. 날 걱정하는 그런 얼굴. 근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와 준혁의 앞을 휙 지나간 것이다.
“어제 누가 집에 왔었어?”
“잠깐 동생이 반찬 주고 갔어”
“그럼 내가 집에 왔을 때 나간 사람이 처남이라고?”
“아마 그쯤 됐을 거야”
“근데 인사도 안 해?”
“인사했을걸.”
오늘 아침에 아내에게 물었는데 명쾌하게 답변하는 나은이다. 나은은 포커페이스다.
요즘 나은의 수상한 점. 준혁이 회식을 한다 하면 오히려 반기는 느낌. 누군가 우리 집에 들어오는 거 같은 느낌. 그리고 동물적 감각으로 이 여자가 지금 다른 곳에 관심이 있다는 느낌.
준혁은 자리에 앉아서 온라인 쇼핑몰로 소형 카메라를 검색해 본다. 가격도 저렴하고 무척이나 작은 것이 많다. 가장 저렴하면서 작은 걸로 하나 구매한다. 내일 도착. 이걸로 한번 아내를 감시해 보자. 미안하다 나은. 하지만 지금 널 추궁할 증거도 없고, 느낌은 좋지 않고, 뭔가 증거를 찾아야겠어.
어디에 설치하지, 거실? 현관입구?
언제 설치하지, 아내가 씻을 때?
그렇게 소형카메라를 구매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데 공장장실에서 공장장이 크게 소리쳐 부른다.
“관리팀장 잠깐 와봐”
설마 또 회식하자는 거 아니겠지, 생각하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공장장실로 향하는 준혁.
공장장실에 들어가니 공장장이 PC모니터 화면을 보여주며, 공지사항 봤냐며, 4분기 체크업 세미나를 한다고 보여준다.
참석자는 각 부서의 부장과 팀장들. 1박 2일. 경기도 용인의 메가호텔.
다음 주다. 목요일, 금요일.
“갑자기 일정을 잡고 이렇게 빨리 세미나를 하네요”
준혁팀장이 얘기한다. 공장장은 요즘 회사 매출이 좋지 않아, 대표님이 이것저것 해보려 한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면서 세미나 자료를 만들라고 한다. 각 부서별 4분기 체크업 발표를 하는데, 발표는 공장장이 하지만, 자료는 관리팀장에게 시킨다.
“알겠습니다”
준혁은 대답하며 공장장실을 빠져나온다.
휴 또 재수 없으면 야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 세미나 간다고 하면 또 아내 나은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이번에도 별 얘기 없으면 정말 의심해 볼 만한 거다.
세미나에 갔을 때 몰래 설치한 소형카메라로 아내의 행동을 살펴보고 증거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준혁.
그러면서 재경이를 부른다. 재경이 다가오자, 다음 주 체크업 세미나 하는데 백데이터 자료를 만들라고 요청한다. 재경은 알겠다고 자리로 돌아가고, 준혁은 다시 한번 쇼핑몰로 주문한 소형카메라의 사양을 들여다본다.
18.
동현은 출근길 긴팔 긴바지를 입는다. 이제 선선하다 못해 춥게 느껴진다. 진짜 가을이다. 곧 겨울이 오겠지. ‘외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전에 얼른 민정님을 꼬셔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출근하는 동현. 오늘따라 차가 별로 없다. 쌩쌩 달린다. 회사 앞 교차로에서 동현이 신호등에 다 와갈 때쯤 노란 불로 바뀐다. 동현은 얼른 액셀을 밟아 신호등을 통과한다. 나이스. 오늘은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려온 거 같다.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은 느낌이다.
출근하니 혜정 님만 계시다. 인사하며 들어간다.
“승현 님은 안보이시네요”
“오늘 연차 쓰셨어”
동현도 연차를 써야 하는데, 눈치 보느라 연차를 못쓴 지 꽤 되었다. 이제 회사 문화도 예전 같지 않아서 연차를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지만, 동현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하두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일해와서 아직 여유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번 달은 꼭 써야지’ 생각한다.
탈의실로 들어가고 옷을 갈아입으며 선호님의 캐비닛을 슬쩍 또 열어본다. 근무복, 담배, 라이터. ‘이 사람은 맨날 담배를 캐비닛에 두고 다니네. 소형카메라는 집으로 가져갔나’ 생각한다.
옷을 갈아입고는 탈의실 안 쪽문을 통해 실험실로 들어간다. 냉장고에서 캔 콜라 하나를 꺼내고는 오랜만에 여자탈의실 창 시트지 뜯긴 부분 안을 슬쩍 들여다본다. 캄캄하다. 아직 아무도 안 왔다. ‘조금만 기다려볼까. 혹시나 민정님이 출근할 수도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동현은 실험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사무실 입구에서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 목소리다. 분명 민정님일 거다. 제일 먼저 오는 건 민정님이니.
여자탈의실 문이 열리고 불이 켜진다. 민정님이다. 민정님은 오늘 원피스를 입고 왔다. 무난한 검은색 티 위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왔다. 민정님이 캐비닛 앞에 서서 옷을 갈아입는다. 민정님의 캐비닛은 실험실 쪽 반대의 가장 벽 쪽에 붙어있다. 동현이 바라보면 딱 캐비닛 앞에 선 민정님의 옆모습이 보인다. 벽을 두긴 했지만 2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혹시나 옆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어떡하지. 작은 시트지 떨어진 부분으로 내 작은 눈이 보이는 건 아니겠지.’
민정님은 원피스를 어깨에서 내리며 벗고는 다리까지 빼서 완전히 벗는다. 하얀 허벅지 위로 검은색 팬티가 보인다. 그리고 아래로 하얀 살결의 긴 다리가 보인다.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의 긴 다리가 너무나도 곧게 뻗어있다. 곧바로 근무복 바지를 꺼내서 입는다. 그리고 근무복 상의를 검은 티 위에 걸쳐 입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팬티와 다리를 봤다. 동현은 너무 심장이 많이 뛰어서 참을 수가 없다. 이제 더 이상 바라보고 있다가는 심장 소리가 여자탈의실 안에서도 들릴까 봐 괜히 무서웠다.
동현은 얼른 남자탈의실 쪽문을 조용히 열고 탈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남자탈의실을 나가기 위해 문을 잡으려는데 갑자기 남자탈의실 문이 크게 열렸다. 엄청 크게 열러 깜짝 놀라서 ‘헉’ 하고 소리를 지르는 동현.
선호님이다. 선호님은 별로 놀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나가려는데 갑자기 문이 세게 열러서 깜짝 놀랐어요.”
“많이 놀라셨나 봐요 얼굴이 엄청 빨개졌어요”
“아 그래요?”
동현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설명하다 선호의 말에 자신의 얼굴을 만지다가 머리를 긁적인다. 식은땀이 느껴진다. 탈의실을 나오는 중에 출근하는 다연님을 빨개진 얼굴로 인사한다. 자리로 향하는데 동현 앞자리의 혜정 님이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갛냐고 한다.
“아 방금 탈의실에서 문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선호님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서 놀랬어요”
동현은 대충 얼버무린다. 사실 그전에 민정님의 맨다리를 보고 달아오른 얼굴이 선호님 때문에 더 놀란 건데 그건 동현만의 비밀이다.
‘근데 선호님이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지. 항상 늦게 출근하던데.’
그렇게 생각하며 동현은 다시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가슴에 손을 얹고는 심호흡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