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탐 8
15.
최근 감기에 걸린 동현은 오늘 회식에 술을 안 먹기로 했다. 사무실에 누가 자꾸 에어컨을 강하게 트는 건지, 기관지가 약한 동현은 매년 여름이면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를 걸린다.
약을 2주째 먹고 있는데도 안 낫는다. 저번 회식 때도 콜라만 마시다 일찍 집에 갔다. 2차로는 민정님과 선호님 다연님 등 젊은 직원들이 모두 참석했다던데. 동현은 아쉬웠다. 민정님과 더 가까워질 기회였는데, 몸상태가 영 안 좋았다. 민정님이 남자 직원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을까 봐 걱정되었다.
오늘도 지들끼리 2차를 가는 걸 또 눈으로만 봐야 할 거 같다. 꼭 다음 회식 때는 몸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 놓으리라.
듣자 하니 저번 2차 호프집 후 3차로 노래방을 갔다고 했다. 선호님이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른다고 다음날 사무실에 소문이 났었다. 민정님이 반하면 안 되는데.
그나저나 선호님이 여자친구가 있던가. 내일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혼자 콜라를 마시며 잡생각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민준 팀장이 부른다.
“동현아 네가 관리팀장 집에 좀 데려다줘야겠다. 뻗었다.”
저 멀리서 관리팀장은 식탁에 엎드려있고, 양옆으로 설비팀장 생산팀장이 당황해하고 있다.
“너 술 안 먹었지? 감기 걸렸다며. 오늘 좀 부탁한다.”
“네 알겠습니다.”
동현은 대답을 하고는 얼른 일어난다. 식당에 오자마자 배가 고파서 얼른 회를 여러 점 주워 먹고, 다 같이 짠 할 때도 회로 짠 하며 회를 우걱우걱 쌈 싸 먹었다. 그래서 지금 자리를 떠도 손해 볼 건 없었다.
민준팀장과 함께 관리팀장을 부축하여 관리팀장의 차로 이동한다.
관리팀장을 뒷좌석에 눕히고는 운전석에 앉았다.
“잘 부탁한다”
민준팀장은 조심히 운전해서 가라고 한다.
동현은 알겠다고 답하고는 뒷좌석에 뻗어있는 관리팀장한테 몇 동 몇 호인지를 물었지만 답 없이 잠만 자고 있다.
어느 아파트인지는 몇 번 들어서 아는데 동호수를 모른다.
“팀장님 잠깐 일어나 보세요, 집 동호수 좀 알려주세요.”
동현은 뒷좌석 문을 열고 관리팀장 얼굴을 바라보며 흔든다.
얼굴이 벌겋다가도 부분적으로 허연 창백한 모습의 관리팀장이 눈을 감고 있다가도 실눈을 뜨기도 하고 이 세상 저세상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아 곤란하네’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은별님이 갑자기 오더니 전에 비상연락망 파일이 핸드폰에 있다며 찾아본다. 동현은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안경너머의 작은 눈으로 은별님을 바라본다.
“어 찾았다. 102동 901호예요”
은별님은 열심히 찾아보더니 알려준다.
동현은 감사하다고 하고는 얼른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한다.
준혁이 사는 아파트 정문을 들어서고,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저녁 7시 반의 이른 시간임에도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했다. 주차할 곳이 없나 하며 한 바퀴 도는데 끝에 한자리가 보였다. 102동 입구랑 한참 거리가 먼 곳이다. 준혁을 부축해서 가야 하는데 큰일이다. 하지만 별수 없어 주차를 한다.
“팀장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일어나십시오.”
뒷좌석 문을 열고 흔들어 깨운다. 관리팀장은 그래도 이동하는 차에서 잠깐 눈을 붙여서 회복이 좀 되었는지, 으음 하며 실눈을 뜨고는 몸을 일으킨다. 그래도 몸을 비틀비틀 거리며 중심을 못 잡아서 동현이 부축을 해주고는 102동 입구로 갔다.
인사불성인 이 양반을 데리고 102동 입구는 또 어떻게 통과하나, 이양반이 비밀번호 잘 알려줄 수 있으려나 근심걱정을 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다행히 저 앞에 배달기사가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치킨인지 뭔지를 콜라와 함께 들어간 봉지를 들고 부리나케 102동 입구로 간다. 이때다 싶어 동현도 있는 힘을 다해서 준혁팀장을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는 102동 입구 문이 열렸을 때 배달기사 뒤를 따라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배달기사가 위로 가는 버튼을 누르자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여 문이 열렸다. 배달기 사는 익숙하다는 듯이 4층을 누르고는 닫기 버튼을 빠르게 눌렀고, 동현은 9층을 힘들게 눌렀다.
힘을 썼더니 엘리베이터 안에서 무척 더웠다. 게다가 관리팀장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니 더 땀이 났다.
4층에 배달기사가 빠르게 내리고, 동현은 닫기 버튼을 누르고 9층으로 올라갔다.
9층에 도착하자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형수님이 보시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한다. 양쪽으로 901호와 902호가 보인다. 동현은 왼쪽 901호로 준혁팀장을 질질 끌고 가서 벨을 누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린다.
“헉”
동현은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하고 큰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준혁팀장도 졸다가 놀랬는지 몸을 움찔한다.
집에서 나온 인물은 와인색 모자를 쓰고 진한 눈썹에 코가 오뚝한 잘생긴 사람이었는데 회색 셔츠에 검은 면바지를 입었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가 9층에 있는 걸 보고는 헐레벌떡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문을 닫는다.
“어머나 이 사람 왜 이래요?”
동현은 순간 뭐가 지나갔나 생각하는 찰나, 901호 현관 입구에서 형수님이 난리법석이시다. 동현은 준혁팀장에게 ‘집에 다 왔다’고 흔들며 현관 입구에 앉혀주었다. 준혁팀장은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고개를 떨군다. 동현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제가 데리고 들어갈게요. 감사해요.”
“네. 안녕히 계세요”
형수님은 동현에게 인사했다. 동현은 괜히 팀장 집에 오니 불편해서 하고 얼른 나와 현관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는 16층에 있었다.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머리에서 이마와 얼굴로 땀이 계속 흐르고, 등과 겨드랑이도 땀으로 흠뻑 젖어 축축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1층을 누른 뒤 택시를 부르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근데 아까 팀장님 집에서 나온 남자는 누구지 생각하며 택시를 호출한다.
16.
최근 동현은 감기로 몸이 좋지 않아, 여자 탈의실 염탐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욕구도 몸이 좋아야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건강이 안 좋으니 오로지 건강밖에 생각이 없다. 그래도 이제 1주일 정도 지나니 좀 괜찮아진 느낌이다. 역시 아플 땐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 먹는 게 최고다.
이젠 아주 가을 날씨다. 아침부터 선선하고 시원하다. 어젯밤에도 창문을 열고 잤더니 아주 시원했다. 이런 시원한 날씨에는 민정님과 어떤 데이트를 하면 좋을까. 외부 변화는 항상 민정님과의 즐거운 상상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오늘도 일찍 출근했고, 여전히 승현 님과 혜정 님이 인사로 반겨준다. 남자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문득 옆자리 선호님의 캐비닛이 눈에 띈다. 이 사람 캐비닛에는 뭐가 들었으려나, 무의식적으로 열어봤다. 근무복, 담배, 라이터, 이건 또 뭐지 이상한 물체가 있다. 작은 소형 카메라처럼 생겼는데 무척이나 작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 두 개로 들면 딱 충분한 크기이다. ‘이런 게 선호님 캐비닛에 왜 있지’ 생각하는데 갑자기 탈의실 문이 크게 열린다. 크게 열릴 때의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얇은 패널의 벽면이 잠깐 흔들렸다. 준혁팀장이다. 동현은 갑자기 들이닥친 준혁팀장을 보고는 들고 있던 카메라를 깜짝 놀라서 떨어뜨렸다. 너무 집중했었나, 밖에서 인사하며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안녕. 왜 놀래냐. 그건 뭐냐. 아 어제 집에 데려다줘서 고마워.”
“네 좀 괜찮으신가요? 이건 선호님 캐비닛에 있길래 뭔가 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엄청 작네. 소형 카메라 같은데. 나중에 오면 물어보자.”
“예 선호님 오면 물어보겠습니다.”
준혁은 동현이 놀래며 떨어뜨렸던 소형 카메라를 궁금해하며 들여다본다. 계속해서 요리조리 돌려보면서 관심을 가진다. 동현은 카메라를 받아서 선호님 캐비닛에 도로 넣어두고는 탈의실을 나온다.
마침 탈의실을 나오는데 선호님이 출근하여 탈의실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긴 길이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선호님은 하얀 셔츠에 파란색 면바지를 검은 벨트와 함께 입고서 왔는데, 모델 같았다. 선호님은 뚜렷한 눈매로 동현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선호님 근데 캐비닛 안에 소형 카메라 같은 게 있던데 그거 뭔가요?”
동현도 인사를 하며 선호에게 물어본다. 캐비닛을 열어본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답할 알리바이가 없음을 후회한다. 물어보면 캐비닛을 잘못 열었다고 해야겠다 생각한다.
선호님은 당황해한다. 바로 대답을 못하고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동현은 안경너머의 작은 눈으로 선호님을 더욱 유심히 관찰한다. 형사가 범죄자를 심문하듯이 더욱더 뚜렷이 관찰한다.
“어제 회사에서 주웠어요. 납품을 오는 기사님들 중에 흘리신 거 같아요. 블랙박스 비슷한 거 같아요. 주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캐비닛에 넣어놨어요.”
“그래요? 왜 그런 게 회사에 있지. 이상하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납품 기사님들이 소형카메라를 왜 흘려, 블랙박스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 거고. 동현은 안경 너머 작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며 맞장구를 쳐준다.
그리고 선호님은 급히 탈의실로 들어간다.
아마 탈의실 안에서도 관리팀장에게 추궁을 당할 것이다.
아차 관리팀장에게 ‘어제 집에 갔을 때 낯선 남자가 집에서 나왔다는 걸 말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동현. 근데 그거 말하면 괜히 ‘형수님 바람 피시는 거 아니에요’하고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잠깐 보류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