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오다

염탐 7

by 도파민경제

13.
속초로 향하는 준혁의 하얀색 그랜져 차량이 고속도로 위를 명쾌하게 달리고 있다.
준혁의 그랜져 차량은 3년 정도 되었는데, 부유한 부모님이 사주신 차량이다. 준혁은 1남1녀의 막내로 살아오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아왔고, 아직도 엄마 앞에서는 애처럼 구는 마마보이 타입이다.
아내 나은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다가, 핀잔을 당하여 그 후로는 아내 앞에서는 의젓한 척 행동한다.
3년 전에 차가 없던 아내가 이젠 차가 필요하다고 차를 구매해야겠다고 하자, 준혁은 아내에게 자신의 차 SM5를 주고 자신이 새 차를 사고자 마음먹었다. 운전을 잘하는 자신이 새 차를 사야지, 초보 운전자가 새 차를 사는 건 아니라고 얘기했다.
다행히 물욕이 적은 나은은 흔쾌히 수락했고, 문제는 돈이었다.
짠돌이 준혁은 직장생활 10년을 넘기며 꽤 돈을 모았었지만, 4년 전에 선배 말을 듣고 주식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많이 보면서, 여태 주식을 현금화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돈이 없는 준혁이 차는 사야겠고 해서 아내와 함께 의논하여 어머니를 공략하기로 했다.

“어머님. SM5 차가 아파요. 요즘 들어 자주 고장 나요.”
“아내가 이제 차가 필요한데 돈이 없어요.”

준혁의 부모님 집에 간 날, 아내가 먼저 말문을 트고, 준혁은 아내의 말문을 받아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그럼 당연히 차를 사야지 얼마 필요한데?”
“작은 차 타면 폼이 안 나니 큰 차를 사고 싶어요. 그랜져 정도는 사야 해요.”
“안 그래도 준혁이 너 이름으로 보험 들어놓은 게 이제 만기가 돼서 현금화해야 해. 그 돈 줄 테니 차 새로 사”
“감사합니다”

준혁의 어머니는 흔쾌히 돈을 주신다 했고, 준혁과 나은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짠돌이 준혁은 한 달 정도 대리점들을 순회하며 그랜저 시승을 해보고, 영업사원들과 상담을 하며 지금 타고 있는 흰색 그랜져를 사게 되었다.

먼저 바다가 보이는 속초 카페로 갔다. 네이버 지도에 검색하면 가장 인기가 많은 카페였다. 사진들을 보니 바다 뷰가 좋고, 카페 음료와 디저트도 맛있다고 평이 좋았다.
준혁과 아내는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란다. 카페 테이블이 만석이고, 사람들이 서울의 지하철 아침 출근 시간대만큼 붐볐다.
준혁과 나은은 낙담했다. 좋은 카페의 좋은 자리에 앉아서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 했던 계획을 본인들만 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계획을 갖고 온 것이다.
준혁은 플랜 B로 다른 카페를 찾아보았다. 여기서 1km 근방에 또 평이 좋은 카페가 있었다.
나은과 함께 다시 흰색 그랜져를 타고 이동하였다.
두 번째 카페는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첫 번째 카페처럼 멋진 파란 바다 뷰는 아니고, 약간의 검은 암석들이 함께하는 뷰였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생각했다. 날도 맑고, 카페 분위기도 밝았다.
준혁과 나은은 테이블 자리를 잡고는, 음료와 디저트를 고르기 위해 계산대로 갔다.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라는 준혁. 짠돌이 준혁은 갑자기 가슴이 아파진다. 아메리카노 한잔이 6000원. 동네 메가커피 가면 2000원이면 살 수 있는데 3배의 가격이다. 그래도 나은 앞에서 티를 낼 수 없다. 근데 나은은 1000원 더 비싼 음료인 바닐라빈 라테를 고르고 비싼 빵도 막 주워 담는다.
준혁은 속으로는 ‘뷰 좋다고 덤터기 엄청 씌우네’ 욕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며 결제를 했다.
바다 뷰 테이블에 앉아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며 준혁은 뷰가 참 좋다며 나은의 사진을 찍어줬다. 나은은 포즈를 취하지 않는 척하며 은근히 의식하며 조금씩 포즈를 취했다.
준혁은 사진을 찍다 보니 10m 우측에 바다 뷰를 배경으로 꽃 장식이 있는 포토존이 있는 걸 본다.

“저기 서서 찍자.”
“좋아”

나은은 먼저 이동하고 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허벅지를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히며 ‘아야’ 하고 잠깐 아파하는데 테이블 위 나은의 핸드폰에 전화가 온다.

“자기야, 전화와”

무의식적으로 준혁은 포토존으로 걸어가는 나은에게 말하며 핸드폰을 바라봤는데 저장되어있지 않은 전화번호였다.
010-4499-7799
준혁은 전화번호가 왠지 낯이 익다. 4가 2개 7이 2개 9가 4개. 어디서 봤더라. 나은의 친한 친구 번호인가. 근데 왜 저장이 안 되어있지. 이상하네 하며 생각하는데 나은은 급히 전화를 낚아채듯이 들고선 전화를 무음으로 바꾸며 받지 않는다.

“전화 왜 안 받아?”
“응 모르는 번호라 스팸일 거 같아”

준혁과 나은은 함께 포토존으로 향한다.
준혁은 포토존에 선 나은의 사진을 찍어주는데 자꾸 전화번호가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서 답답했다.



14.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오전, 준혁은 결재를 위해 공장장실로 들어갔다.

“지난주 회식 분위기 좋지 않았냐? 젊은 직원들이 좋아했던 거 같은데”
“네 그런 거 같더라고요. 또 회식을 잡아야겠습니다.”
“그렇지? 회식을 또 잡아야겠지?”
“네 회식 또 잡아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럼 빨리 회식 잡아봐”
“네 알겠습니다”

공장장은 결재를 하며 준혁에게 물어보고, 준혁은 속으로는 ‘직원들은 회식 싫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며 아부를 했다. 그러면서 순조롭게 결재를 마친다.
준혁은 공장장실을 나온다.
준혁은 이상하게 자기보다 윗사람만 만나면 이렇게 아부를 하게 되고, 굽신굽신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리고는 각 팀장들에게 돌아가며 얘기한다.

“공장장님이 회식 또 하자고 하십니다.”
“지난주에 회식했는데 또?”
“저번 회식 분위기 좋았던 거 같다고 또 회식하자고 합니다. 일정 잡겠습니다.”

팀장들은 놀래서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한다.
준혁은 자리에 와서 달력을 펼쳐본다.
마침 관리팀 재경이가 결재를 받으러 왔길래 물어본다.

“공장장님이 또 회식을 하자고 하는데 언제가 좋을 거 같냐?”
“또요? 전 아무 때나 상관없습니다.”

역시 재경이는 아무 때나 상관없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은 재경이.
다른 직원들도 물어봤는데, 다들 그냥 아무 때나 하자고 한다. 워낙에 조직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 명령만 하는 분위기다 보니 직원들이 의견을 잘 내지 않는다. 그냥 위에서 결정하면 밑에서는 따르는 식.
준혁은 목요일쯤으로 계획하고 각 팀장들에게 말하고, 공장장에게도 얘기한다.
공장장이 이번엔은 회를 먹자고 한다.
준혁은 ‘횟집으로 예약하겠다’고 얘기하고는 공장장실을 나온다.

“또 목요일에 회식을 해야 할 거 같아”
“또 회식한다고? 고생 많네. 잘하고 와”

집에 와서 준혁은 나은에게 얘기한다.
나은은 되물으면서 다그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기듯이 얘기한다.
평소 같으면 무슨 또 회식이냐고 가정은 생각도 안 하냐고 할 텐데, 저번부터 좀 이상하다.
준혁의 고생에 반대표를 던지는 이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예전에는 나은이가 그래도 준혁의 동반자로서 항상 같은 편에 서줬는데.
준혁은 씁쓸히 생각하며 혹시 나은이가 뭔가 바뀐 게 있는지 유심히 관찰해 보기로 한다.

날씨가 더웠다가 선선했다가 오락가락하며 3일이 그새 지나고, 회식날이 되었다. 다들 평소의 퇴근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나가서 회식장소로 향했다.
기분 좋은 공장장의 특별 지시다.
회식장소인 횟집에 다들 삼삼 오오 모여 앉았고, 마지막 주인공 공장장도 도착했다.

“오늘 준혁팀장도 술 딱 한잔만 먹는 게 어때?”
“한잔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고, 어질어질해서요.”
“한잔 정도는 괜찮을 거야”

공장장 옆에 앉은 준혁에게 공장장은 얘기한다. 거절하는 준혁에게 자꾸 달콤한 감언이설을 속삭인다. 하긴 공장장은 준혁이 한잔 먹고 헤롱헤롱해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믿지 못할 것이다.
자꾸 설득에 넘어오지 않는 준혁을 보고는 공장장은 마지막 작전을 구사한다. 바로 다른 직원들 활용하기.
준혁의 부하직원 재경에게 공장장이 얘기한다.

“재경아 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냐? 관리팀장이 자꾸 안 된다고 하는데, 한잔도 못 먹는 사람이 있냐?”

재경도 당황해한다. 재경도 준혁이 술을 먹는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궁금하기는 하고, 공장장이 저렇게 물었는데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식하게 준혁을 무시한 채 ‘맞습니다’ 할 수도 없다. 그렇게 재경이 당황해하고 있으니, 옆에서 생산팀장이 거들어준다.

“예 공장장님. 한잔 정도는 괜찮을 거 같습니다. 관리팀장 한잔만 해봐. 집 가는 게 걱정이면 여기 후배 직원들 많잖아.”

준혁은 독극물을 앞에 둔 심경으로 어쩔 수 없이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반대표가 한 명도 없다.
준혁은 알겠다고 한 잔만 해보겠다고 한다.
공장장은 신이 나서 다 같이 짠 하자고 하며 건배를 외친다.
그리고 다 같이 건배를 했고, 준혁도 눈을 감고 독극물을 마셨다.
마치 뜨거운 불을 목에 삼킨 것만 같다. 목이 타들어간다. 얼른 물을 마셨다. 그리고 갑자기 온몸이 불에 탄 것처럼 뜨겁다. 그리고 눈알이 빙빙 돈다. 웃는 공장장의 모습이 2명으로 보였다가 1명으로 보였다가 하고, 눈앞에 재경의 걱정하는 모습이 3명으로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 공장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때 한 잔은 괜찮지 관리팀장?”

그 목소리에 준혁은 웃으며 ‘아 머리가 빙빙 돕니다’ 하고는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