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탐 6
11.
준혁은 케이크와 꽃을 샀다. 케이크는 파리바게뜨에서 생크림 케이크로 사고, 꽃은 동네 꽃집에서 장미꽃으로 샀다.
이걸 와이프에게 주면서 내일 회식이 잡혔다고 꼰대 공장장 때문에 내가 미안하다 하면서 싹싹 빌어야겠다 생각한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을 누른다.
엘리베이터를 올라가면서도 계속해서 와이프에게 할 대사를 읊조린다. 갑자기 회식이 잡혔다. 오늘 미리 생일 파티를 하자. 주말에 우리 데이트 하자.
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문이 열린다.
준혁은 깜짝 놀란다.
옆집 아주머니가 서있다.
준혁은 웃으며 인사한다.
아주머니도 웃으며 인사하신다.
“이제 퇴근하시나 봐요. 케이크와 꽃을 사들고 오셨네. 오늘 무슨 날인가 봐요. 우리 남편은 이런 거 안 사 온 지 꽤 됐는데. 부럽네.”
아주머니는 중학생 아들 둘이 있고, 아주머니의 남편은 출근할 때 딱 한번 본 적 있는데, 딱 봐도 무뚝뚝해 보이셨다. 말도 없는 거 같고, 아주머니 말씀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듯했다.
준혁은 그냥 ‘네 와이프 생일이요.’ 대답하고는 웃으면서 인사한다.
아주머니는 ‘들어가세요’ 하고는 엘리베이터 문을 닫는다.
준혁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아내 나은은 티브이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운동복 차림으로 요가를 하고 있다.
매트를 깔아놓고 그 위에 서서 변형 스쾃 동작을 한다.
“나 왔어. 자기.”
준혁은 아내에게 인사를 하며 거실로 들어선다.
아내는 스쾃 자세로 티브이에 집중하고 있다가 준혁을 힐끔 보고는 ‘어 왔어’ 하며 손에 든 케이크와 꽃을 바라보고는 ‘오 케이크와 꽃이다’라고 하며 반가워한다.
준혁은 내일 회식이라고 언제 얘기하지 하며 타이밍을 살핀다.
요가중일 때? 요가 끝나고?
하지만 그런 고민이 필요가 없었다.
나은이 먼저 얘기했기 때문이다.
“내일 회식해?”
준혁은 당황하고는 그 자리에 그냥 말없이 멍하게 서있었다.
“그래서 미리 케이크랑 꽃 사 온 거야?”
준혁은 어떻게 대답할지, 나은의 눈치를 살핀다. 여기서 잘못 얘기하면 부부싸움이다.
나은의 눈빛이 무섭다.
“어 그게 말이야, 우리 사무실에 선호라고 새로 발령받아서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왔다고 공장장이 갑자기 회식을 하자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안된다고, 나 내일 와이프 생일이라고 그랬거든. 근데 공장장이 막 삐져가지고는”
“괜찮아. 다 얘기 안 해도 돼. 우리 남편이 그러면 다 이유가 있겠지 뭐. 오늘 케이크 먹지 뭐.”
준혁의 말을 끝까지 다 듣지 않고, 나은은 쿨하게 넘어간다.
이건 준혁이 예상했던 불행한 전개가 아닌데.
나은이 요가를 하다가 머리를 다쳤나
갑자기 왜 안 하던 행동을 하지.
원래 같으면은 아내가 중요하냐 회사가 중요하냐로 시비 걸고 또 과거에 이랬니 저랬니 얘기를 꺼내며 준혁을 괴롭혀야 하는 건데.
오늘따라 이상하다.
어쨌든 준혁은 위기를 잘 넘겼다고 생각한다.
“고마워 여보”
“어서 씻고 와.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알겠어”
아무래도 준혁은 이상하다 생각하며 샤워실로 향한다.
준혁이 샤워를 하고는 차례로 요가를 끝낸 나은이 샤워를 했고, 준혁과 나은은 같이 케이크에 초를 붙여 축하 파티를 했다. 단둘이 하는 축하파티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라 집 안이 행복 바이러스로 가득 찬 것만 같다.
“회사에 새로 발령받아온 선호라는 친구는 어때?”
“잘생기고, 목소리 좋고, 밝고 멋져”
“예전에 그런 친구 있지 않았어? 그때 자기가 얘기했던 거 같은데”
“그 친구는 동성이라는 친구였고, 퇴사한 지 꽤 됐어”
나은이 회사 신입사원에 대해 묻고 준혁이 답한다.
둘은 케이크를 다 먹고는 침대에 누웠고, 준혁은 혹시나 생일 전날인데 나은과 침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여 나은의 눈치를 살펴봤다.
나은은 옆으로 돌아 누워서 핸드폰을 하고 있다. 준혁은 천장을 바라보며 나은과 분위기를 잡아볼 타이밍을 생각한다.
준혁은 계속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나은아” 불렀다.
그리고는 이어서 얘기했다.
“생일인데 주말에 우리 1박 2일로 속초에 가자. 속초에 가서 오션뷰 호텔에서 좋은 시간 보내자. 바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유명한 카페도 가면서 좋은 시간 보내자. 내가 다 예약해 놨어. 몰랐지?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오늘 얘기한 거야. 내일 회식인 거 이해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준혁은 말을 마치고 옆으로 돌아누워 나은을 등뒤에서 슬며시 껴안으며 나은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라.
나은이 옆으로 누운 채 핸드폰을 손에 받쳐두고 그대로 눈을 감고 자고 있는 거 아닌가.
입을 벌린 채..
손에 받쳐진 핸드폰은 주인 없이 혼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준혁은 침대에서 독백을 했던 것이다.
아니지. 나은의 핸드폰이 빛을 내며 준혁의 말을 듣고 있었다.
12.
준혁은 항상 정시에 출근하는 편이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헌신하면 할수록 고생만 늘어난다는 게 준혁의 경험.
그래서 정시 출근. 눈치 보다가 퇴근.
요즘 친구들은 다들 일찍 출근한다. 항상 출근하면 직원들이 많이들 와있다. 물론 준혁의 선배들은 비슷하게 출근한다.
탈의실에서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사무실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회식을 한다고 했다. 몇 시에 끝나려나. 술 좋아하는 공장장이 2차, 3차 계속 달리면 관리팀장인 내가 또 빠질 수도 없고.
준혁은 회식날이 싫다. 아니, 술을 마시는 회식날이 싫다. 준혁은 술을 못 먹기 때문이다.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다. 그래서 술자리에 참석하면 준혁은 재미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 공장장이 사무실로 들어오며 크게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직원들도 모두 공장장에게 인사를 한다.
“관리팀장, 오늘 회식한다고 했지?”
“네 맞습니다”
“뭐 먹냐?”
“삼겹살 어떠실까요?”
“그래 좋아”
확인차 묻는 공장장의 질문에, 준혁은 대답한다. 그리고 공장장실로 들어가는 공장장.
오늘은 마감날이라 직원들이 다들 바쁘다. 특히나 회식이 있어서 야근을 못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끝내야 한다.
준혁은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마감 기한 잘 지켜서 완료하라고 부추긴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준혁의 핸드폰에 카카오톡이 온다.
아내 나은이다.
‘오늘 몇 시에 올 거 같아?’
준혁은 또 고민이다.
늦으면 늦는다고 또 갈굼을 당할까 봐 그렇다.
보자. 공장장이 일단 기본 2차는 갈 거고, 3차를 갈지 안 갈지가 문제다.
2차에서 끝나면 9~10시, 3차까지 가면 11~12시.
처음부터 최악의 상황으로 답장을 하지 말자
준혁은 아내 나은에게 10시 정도 예상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나은은 알겠다고, 답이 왔다.
삼겹살 식당에서의 회식. 공장장의 라테 얘기와 서먹서먹한 직원들 간의 관계로 조용하게 회식을 시작했지만, 술이 한잔 두 잔 들어가니 직원들도 웃고 떠들기 시작한다.
술이 좀 들어가니 공장장의 라테 얘기에 호응을 하기도 하고, 부정의 반응을 보이기도 하며 직원들은 들떠있다.
이렇게 분위기가 좋으면 안 되는데. 그러면 2차, 3차를 가게 되는데. 준혁은 불안하다.
술 못 먹는 준혁은 그저 재미없을 뿐이다.
준혁이 직원들 대화에 끼려고 하면 ‘짠’을 외치며 직원들이 술잔을 부딪히는데, 콜라 잔을 들고 함께 부딪히니 영 분위기가 안 난다.
준혁은 외톨이가 된 듯하다.
다들 삼겹살은 어느 정도 먹었고, 술도 어느 정도 마셨다.
곧 1차는 끝날 분위기다.
이제 공장장이 ‘관리팀장 2차 어디로 가냐’ 하겠지.
그럼 ‘근처 호프집으로 가시죠’ 해야 한다.
“자 이제 마무리할까? 다들 오늘 즐거웠어. 2차는 갈 사람만 가고 끝내자고. 난 내일 일찍 집으로 출발해야 해서 오늘은 여기서 끝낼게.”
이게 무슨 일인가. 이건 드문 경우다. 기숙사에 살고 있는 공장장은 금요일에 회식이 잡히면 주말에는 집에 늦게 가는 편인데, 내일은 또 일찍 집으로 간다고 하네.
시간은 8시.
꽤 빨리 끝났다.
2차는 젊은 직원들끼리 가기로 했다. 꼰대 선배들은 다들 피곤해서 집에 간다고 하고, 준혁도 술을 못 마시니 얼른 집에 갈 생각이다.
그렇게 1차에서 마무리하고는 집으로 향하는 준혁.
늦게 올줄말 알았던 준혁이 꽤 일찍 가면 나은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까 회식 전에 나은이 먹고 싶다는 참치회를 배달의민족으로 주문해 줬다. 술을 못 먹는 준혁을 빼고 나은은 혼자서 혼술을 종종 했다.
오늘은 참치회를 먹으며 넷플릭스로 혼술 하겠다고 했었다.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고 주차를 위해 주차장을 뺑뺑 돌았다.
9년 된 아파트인데, 처음 건축할 때 주차장을 너무 좁게 지었다. 항상 퇴근이 늦으면 주차할 곳이 없다. 도저히 주차 공간이 없으면 주차한 차들 앞에 가로주차를 해야 한다.
2바퀴를 돌아도 주차할 곳이 안 보여서 준혁은 가로 주차를 했다. 가로주차는 늘 다음날 아침에 차를 빼달라고 해서 귀찮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차하고 내리니 준혁의 차가 검정 벤츠 차 앞에 가로주차를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에서 벤츠 차를 다 보네.
항상 국내 차들만 보다가 외제차를 보니 신기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로 가서 위로 가는 버튼을 누르고는 기다리며 공지게시판의 글들을 구경했다. 입대의 안건, 차량 할인 판매 광고, 학원 홍보 등 대충 훑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9층을 눌렀다. 시간은 8시 반.
딱 좋은 시간이다.
이제 집에 가서 참치회와 소주를 마시며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나은의 옆에 앉아서 콜라를 마시며 같이 넷플릭스를 보다가 한 번 더 생일 축하해 주고 자면 된다.
9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왠 어두컴컴한 물체가 보이길래 준혁은 깜짝 놀랐다.
와인색 모자를 쓰고, 검은색 셔츠에 회색 면바지를 입은 남자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막 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남자도 안에 사람이 있는 걸 알고는 깜짝 놀라고, 준혁도 갑자기 왠 검은 물체를 맞닥뜨리니 깜짝 놀랐다.
서로 깜짝 놀라서는 묵례로 꾸벅하고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저 남자는 누구지. 옆집은 분명 중학생 아들 둘에 부모밖에 안 사는데.
택배 기사가 저리 반듯하게 옷을 입을 일도 없고. 옆집 손님인가.
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자기야 나 왔어. 오늘 회식 일찍 끝났어”
현관 입구를 들어가며 준혁이 크게 외쳤다.
조용하다.
거실에 넷플릭스도 안 켜져 있고, 참치회도 식탁에 덩그러니 있다.
‘어 나은이가 어디 갔지’ 생각하는데 안방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난다.
준혁은 안방 화장실 가까이 간다.
“나은아 나 왔어”
“어 일찍 왔네 어떻게 된 일이야?”
“공장장이 1차만 한다 해서 빨리 오게 됐어. 참치회는 왜 안 먹고 씻고 있니?”
“방금 요가했거든. 먼저 씻고 먹으려고~”
나은이 화장실 안에서 샤워기 물을 잠깐 끄고 답한다.
근데 갑자기 준혁의 핸드폰에서 전화가 온다.
모르는 번호다.
준혁이 받았다.
“여보세요”
“차 좀 빼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벌써 차를 빼달라고 하네. 주차 자리를 잘못 잡았다.
“나 가로주차한 차 좀 빼주고 올게”
준혁은 샤워하는 나은에게 큰 소리로 얘기하고는 현관문 밖으로 향한다.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차 앞으로 가니 검정 벤츠차 옆에 아까 그 엘리베이터에서 봤던 검은색 셔츠에 모자를 썼던 남자가 서있다.
준혁은 꾸벅 고개로 인사하고는 얼른 차를 빼주었고, 벤츠가 나간 자리에 도로 준혁의 차를 주차했다.
준혁은 다시 엘리베이터로 가서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19층에서 내려오는 걸 보다가 아까 전화 왔던 핸드폰 번호를 다시 본다.
번호가 특이했기 때문이다.
010-4499-7799
번호가 아주 단순하다.
4가 2개 7이 2개 9가 4개.
평소 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좋았던 준혁의 머릿속에 이 번호가 각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