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를 하다

염탐 11

by 도파민경제

21.
동현은 하루 종일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선호님이 혹시나 몰카범일까 봐, 민정님이 카메라에 찍혔을까 봐.
선호님에게 가서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까, 근데 어떻게 알았냐 하면 뭐라 하지, 창문으로 훔쳐봤다고 말은 못 하고.
동현은 난감한 상황이 됐다. 선호님이 여자탈의실에 들어간걸 창문으로 몰래 훔쳐보다 발견한 거라 추궁할 수도 없다.
그렇게 계속 업무에 집중은 안되고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회사 메신저로 쪽지가 온다. 다연님이다.

[오늘 시간 되나요? 술 한잔 하자고 약속 잡고 있는데. 확정 참석자 민정님, 선호님.]

잉? 술? 민정님도? 근데 선호님도 있네. 어쨌든 민정님이 있으면 참석해야지.
동현은 곧바로 메신저로 가능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다연님이 ‘시간이랑 장소 정해지면 또 쪽지 보내주겠다’고 한다.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동현은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드디어 민정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근데 선호님과 다연님도 있다. 나중에 술 마시면서 선호님에게 은근히 몰래카메라 이야기를 슬쩍 떠볼까. 동현은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때, ‘혹시 선호님 여자탈의실 들어가지 않았냐고, 화장실 가다가 봤다고.’ 그렇게 얘기하면 알리바이가 성립한다. 그럼 선호님은 당황하겠지, 그때 ‘혹시 여자탈의실에 뭐 설치하신 거 아니냐’고 한 번 더 확인 사살을 한다. 그러면 선호님은 두 여직원 앞에서 꼼짝 못 하고 범인으로 각인되는 거다. 그럼 다음 주에 관리팀장에게 말해서 징계를 받던지 하면 되는 거다.
동현은 오늘 저녁 술자리에서 민정님과의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과 선호님의 범죄를 밝히는 것. 이 두 가지 미션을 꼭 달성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동현의 눈앞에 있는 모니터 너머로 10m가량 떨어진 품질팀을 바라본다. 유독 오늘따라 선호님이 핸드폰을 많이 쳐다보는 거 같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보기도 하고, 책상에 팔꿈치를 갖다 댄 상태로 심각하게 보기도 한다. ‘카메라 테스트하는 거 아냐?’ 동현은 자꾸 의심이 간다.
그러던 중 다연님의 메신저 쪽지가 온다.

[장소 : 메가곱창, 시간 : 퇴근 후 바로 고고]
[네 알겠습니다. 바로 고고.]

동현도 답장을 한다. 곱창이라. 곱창처럼 선호님을 잘 근자근 씹어버리겠다 생각하는 동현이다.



22.
퇴근 후 메가곱창으로 가니 아직 가게 안 테이블이 많이 비어있었다. 제일 먼저 온 동현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쪽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메뉴가 뭐가 있는지 본다. 소곱창, 대창, 막창. 메뉴를 보니 입에 침이 고이는 동현. 그때 마침 직원의 ‘어서 오세요’라는 외침과 함께 문이 열리며 문 위에 달린 종이 딸그랑 울린다. 선호님, 다연님, 민정님 셋이 같이 들어온다. ‘같은 팀이라고 같이 다니나.’ 동현은 손을 위로 올려 테이블의 위치를 알린다. 다연님이 동현을 발견하고는 ‘저기다’하며 테이블로 온다.
뭐 먹을까 얘기하며 다들 신나게 고른다. 곱창을 종류별로 주문을 한 후 소주와 맥주를 시킨다.

“오늘 저희 팀 셋이서 먹으려고 했거든요. 근데 민정님이 동현 님도 부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간 되냐고 했죠.”

다연님이 오늘의 술자리 히스토리를 알려준다. ‘민정님이 날 불렀다고?’ 동현은 행복하다.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안경너머의 작은 눈으로 눈웃음을 짓는다.
감사하다고 말하며 민정님부터 물을 따라준다. 그새 종업원이 곱창을 가지고 왔다. 선호님은 얼른 곱창들을 불판에 옮기고는 굽기 시작한다.
다연님은 소주와 맥주의 뚜껑을 따며, ‘다들 소맥 괜찮냐’고 하면서 소맥을 제조한다.
곱창이 익어가면서 넷은 다 같이 짠을 했고, 소맥을 들이켰다. 첫 잔은 원샷이라는 다연님의 외침에 다들 원샷을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두 번째 소맥잔을 제조하는 다연님.
민정님이 저번 단체 회식 얘기를 꺼내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장장님의 험담을 하고, 그다음 팀장님들의 험담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회사의 안 좋은 점들을 얘기하고, 서로의 개인사들을 얘기한다. 술이 한잔씩 들어갈 때마다 다들 솔직 담백한 얘기들을 하며 하나 둘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한다.
술이 좀 들어가니 동현도 이제 살짝 기분이 좋아지고, 가게에 사람들이 가득 차서 북적북적 하니 목소리를 크게 내야 했다. 술이 좀 오르자 이제 타이밍이 온 거 같다고 동현의 무의식이 얘기한다. ‘선호님’ 하고 부르려 했는데 갑자기 민정님이 얘기한다.

“이번에 여자탈의실에 선호님이 방향제 설치해 줘서 탈의실 냄새 너무 좋아졌어요.”

“맞아 맞아 냄새 너무 좋아요. 무슨 방향제예요? 센스 만점이에요.”

다연님이 맞장구치며 칭찬한다.

“그렇죠? 선물 받아서 집에 뒀더니 냄새가 참 좋더라고요. 집에 몇 개 남아서 다연님에게 얘기했는데 탈의실에 하나 둬달라고 해서 가져온 거죠 뭐”

선호님이 답한다.

‘방향제라고? 선호님이 여자탈의실에 들어가서 캐비닛 위에 올려둔 게 방향제란 말인가. 그럼 왜 남자탈의실은 안 두냐. 여자들만 챙기네.’ 동현은 속으로 생각하며, 질투심에 저도 모르게 말이 나온다.

“카메라 기능 있는 방향제 아니에요?”

갑자기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선호님은 갑자기 표정이 심각해지며 당황해하고, 다연님과 민정님은 곱창인 줄 알고 집어먹었는데 밀떡을 먹었다는 표정으로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하다.

“아니에요. 그런 방향제가 어딨 어요”

선호님은 당황해서는 하하 웃으며 얘기한다.

“동현 님 왜 그래요 진짜 방향제예요, 카메라 기능 있는 방향제가 어딨 어요”

다연님도 함께 웃으며 맞장구친다.

“죄송해요. 오랜만에 소맥을 먹었더니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저도 모르게 그랬네요.”

거듭 사과하는 동현이다.

하지만 동현은 그 짧은 순간 느꼈다. 선호님이 당황해하면서 입으로는 웃었지만 눈은 동현을 잠시나마 강한 눈빛으로 쏘아봤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