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관계

염탐 12

by 도파민경제

23.


동현은 다음날 겨우 일어났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다. 2차까지 갔다가 3차 노래방 가자는 거 근처에 노래방이 없어서 취소되고는 헤어졌다. 다들 어찌나 술을 잘 먹는지. 동현은 기분 좋게 마셨지만 숙취로 너무 몸이 힘들었다.
동현은 어제 술자리에서 있었던 대화들을 떠올려보았다. 선호님은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민정님은 없고, 다연님은 썸 타는 남자가 있다고 했다. 다연님이 다음에는 회를 먹자고 했던 기억도 난다. 다연님 사는 동네에 맛있는 횟집이 있다고 거기서 한번 먹자는 거다. ‘네 그래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민정님과 단둘이 횟집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 동현이다.
아침에 아무것도 먹을 생각이 없는 동현은 세수를 하고는 바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차를 타기 전에 근처 편의점에 들러서 숙취해소제를 산다. 그러면서 어제 같이 마신 다른 사람들 꺼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3개를 더 고르고 계산을 하고 나온다.
편의점 앞에서 숙취해소제 1개를 열어서 바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속은 안 좋고 머리는 아프다.
그는 차에 타서 시동을 걸어 회사로 출발한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대충 훑어보니 민정님의 회색 아반떼 차는 보이지 않는다. 주차를 하고는 차에서 내리려니 몸이 영 좋지 않다. 몸이 무겁고 속이 안 좋고 머리가 띵하다. 좌석을 뒤로 젖힌 채 눈을 감고 눕는다. ‘잠깐만 누워있다가 가자.’ 동현은 10분 뒤로 알람을 맞춘다.
그렇게 잠깐 누웠는데 스르르 잠이 들었다. 꿈에서 민정님이 나왔다. 민정님과 단둘이 술을 마신다. 하하 호호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데 갑자기 선호님과 다연님이 나타난다. 왜 자신들은 빼고 먹냐고. 그리고는 테이블에 같이 앉는다. 그리고 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데 이상하게 동현의 술잔은 마셔도 마셔도 줄지가 않는다. 이상하다. 도저히 못 먹겠네. 아 토할 거 같아. 그러다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휴 속이 안 좋긴 안 좋구나. 꿈에서도 술 먹고 힘들어하는 꿈을 꾸네.’
그러면서 눕혔던 의자를 바로 세우는데 동현의 차 바로 앞으로 민정님과 선호님이 나란히 걸어간다. 웃으면서. 둘 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얼굴이 피로해 보인다.
‘뭐지. 둘이 같이 주차장 도착했나 보네. 화기애애하는구나.’
동현은 저 둘이 멀찍이 가고 나서야 차에서 내린다. 괜히 둘이 사이좋게 가는데 방해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동현은 주차장을 둘러본다. 민정님의 회색 아반떼 차량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네 왜 안 보이지. 선호님이랑 같이 온 거 아냐?’ 동현은 괜히 이상한 상상을 시작한다.
‘어제 술자리 끝나고 둘이 따로 만난 거 아냐? 여자친구 있다는 자식이.’

“동현 님”

갑자기 누가 뒤에서 크게 부르며 어깨를 친다.
이상한 상상을 하다 들킨 거처럼 놀래서 동현이 안경너머의 작은 눈으로 돌아보는데 눈앞에 밝게 웃는 다연님이 있다.

“속 괜찮아요?”

“아뇨. 안 좋아요. 여기 숙취해소제 드세요”

“안 그래도 속이 안 좋아서 하나 사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다연님에게 가지고 온 숙취해소제 하나를 건넨다. 다연님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4명에서 전날 즐겁게 술자리를 갖고서 다음날 민정님과 선호님이 나란히 출근하고, 다연님과 동현이 나란히 출근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다연님이 청순해 보이고 예뻐 보였다. 좀 달라 보였다.


24.


다연은 아침에 동현이 준 숙취해소제를 먹으니 좀 살 거 같다. 어제 소맥을 너무 많이 먹었다. 왜 이렇게 술만 들어가면 주체를 못 하고 계속 먹게 되는지. 그렇다고 술을 잘 마시는 거도 아니다. 꼭 사람들과 같이 신나게 마시면 만취하는 건 꼭 다연 그녀다.
어제도 사실 필름이 끊겼다. 2차 끝나고 3차로 노래방 가자고 찾다가 근처 상가 간판에 지하 1층에 있다고 되어있어서 다연이 먼저 신나서 달려가봤더니 유흥업소였다. 밖에서 기다리는 3명에게 여긴 아니라고 하며 결국 각자 대리를 불러서 헤어졌다. 그리고는 대리기사가 오고서 집까지 갈 때 차에서 잠깐 졸았고, 기사님이 깨우는 소리에 깨서는 집에 들어왔다. 그렇게 부분적으로만 기억이 있다.
어제 같은 날 동현 님이 집까지 데려다주고 하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다연이다. 매번 사무실에서 시선이 느껴져 보면 동현 님이 자리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걸 몇 번 봤다. 분명 동현 님이 다연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동현 님의 반응을 보려고 어제 술자리에서도 선호님이 남자친구 있냐는 말에 썸 타는 남자 있다고 했는데, 동현 님이 살짝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주차자에서 만난다. 인연인가. 반갑게 인사하니 숙취해소제를 챙겨준다. 역시 관심이 있는 게 분명하다.
숙취해소제를 먹어도 아직 머리가 아프고 속이 좋지 않다. ‘잠깐 매점에 가서 컵라면 하나 후딱 먹고 올까. 아무도 모르게.’ 다연은 민정님에게 문자를 보낸다.
‘컵라면 먹으러 갈래요?’
민정님은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답장이 온다. 몸이 힘들다고 한다. 어제 그렇게 술을 잘 받아먹더니 역시 많이 먹긴 했나 보다.
다연은 혼자 슬며시 매점으로 향한다. 매점은 사무실에서 나가면 50m 거리에 있다. 공장의 한가운데에 있다. 매점에 들어가니 혜정 님이 있다. 혜정 님은 현장 직원들 2명과 수다를 떨며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어 다연님이다”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셔서 힘들어서 컵라면 하나 먹으러 왔어요”
“역시 젊음이 좋아, 술도 많이 먹고”

혜정 님이 반겨준다. 현장직원 2명은 시간이 돼서 생산 현장으로 갔고, 혜정 님은 컵라면을 먹는 다연 앞에서 남은 음료수를 깨작깨작 마시면서 자리를 지킨다.

“사무실 안 가셔도 돼요?”
“오늘 팀장님 연차로 안 계셔서 눈치 볼 사람 없어서 괜찮아”
“부러워요”

다연이 묻고 혜정이 답한다. 다시 컵라면을 열심히 먹는 다연.
둘은 어제 술 먹은 이야기, 혜정 님의 아이들 이야기 등을 하다가 혜정 님이 아이들 육아 문제로 일찍 출근하는 거로 얘기가 흘렀다. 그러다가 사무실에 누가 누가 일찍 출근하나로 얘기가 흘러갔다. 1등이 혜정 님. 2등이 승현 님. 3등이 동현 님이라는 거다.

“혜정 님과 승현 님은 이유가 있다지만 동현 님이 그렇게 일찍 출근해요?”

다연은 컵라면을 먹다 말고 물어본다.

“응. 동현 님은 항상 일찍 오는 편인데, 최근에는 더 일찍 와”

“동현 님이 그렇게 부지런해요? 최근에 출근하면서 남자탈의실에서 나오는걸 몇 번 본 거 같은데”

동현 님이 일찍 출근한다면 일찍 자리에 앉아있을 텐데 정상 또는 가끔 지각하는 다연님과 탈의실에서 나오는 동현 님이 마주친다는 거는 시간상 좀 안 맞는 거 같다.

“이상하네요, 최근에 출근할 때 항상 동현 님 남자탈의실에서 나오면서 인사했는데, 일찍 출근하면 더 일찍 나와서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가.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일찍 와서 자리에 잘 앉아있었는데, 요즘은 좀 자리에 늦게 오는 거 같기도 하네”

혜정은 기억을 되짚어본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다연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남기고는 다시 ‘현장 직원들 중에 누구랑 누구가 사귀느니, 누가 집을 샀다느니’ 하며 대화 화제를 바꾸었다.
컵라면을 다 먹고 사무실로 향하며 다연은 내일 출근하며 동현 님을 더 유심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