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다

염탐 13

by 도파민경제

25.
다음 날 다연은 평소처럼 일어나 출근한다. 다연은 아침잠이 많아서 일어나는 게 무척 힘들다. 그래서 가끔 회사에서도 주차를 하고 늦어서 뛰어가곤 한다. 아침 식사는 생략. 워낙에 소식가라 밥을 적게 먹는다. 오늘은 시간이 간당간당하다. 다연은 거칠게 운전하며 회사로 향한다. 회사에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서기 전에 시간을 확인한다. 7시 50분. 업무 시간에 늦는 건 아니지만, 보통 직원들의 출근시간에 비하면 제일 늦게 출근하는 편이다. 다연은 사무실로 들어가며 사무실 직원들에게 나름 크게 인사하지만 워낙 목소리가 얇아서 작게 나온다. 혜정 님을 비롯하여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해 준다. 동현의 자리를 힐끔 본다.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동현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말고는 코에서 흘러내리는 안경을 오른손으로 치켜올리며 다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다. ‘오늘은 자리에 앉아있네.’ 다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여자탈의실로 향한다.
여자탈의실 창문의 커튼 너머로 하얀 형광등 불빛이 비친다. 안에 누가 있나 보다. 다연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 나오려 해서 다연은 그만 부딪힐 뻔했다.

“아이고야 깜짝이야”
“깜짝 놀랐네요 죄송해요”

은별님이었다. 은별님은 작은 체구의 동그란 눈으로 깜짝 놀라고, 다연도 놀란 채 인사하며 들어간다.
다연이 오늘도 꼴등 출근이다.
다연은 ‘얼른 옷을 갈아입어야지’ 하면서 캐비닛을 열다가 캐비닛 위의 방향제가 눈에 띈다.
일반 디퓨저라고 불리는 방향제랑은 다르게 생기긴 했다. 다연이 집에서 사용하는 디퓨저는 조그만 꽃병 같은 통에 막대기가 꽂혀있는 그러한 모양인데, 캐비닛 위의 방향제는 어두컴컴한 보라색 네모난 통이었다. 보라색 꽃무늬의 포장지가 둘러싸인 통이었고 뚜껑 부분은 검은색이었다. 다연은 그저께 술자리에서 동현 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카메라 달려있는 방향제 아니냐고. 다연은 그런 일은 당연히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호기심에 손을 캐비닛 위로 올려보았다. 167cm의 여자 중에선 큰 키에 뒤꿈치를 들어보았지만 캐비닛 위에 손이 닿지 않았다. ‘이 오래된 캐비닛은 쓸데없이 왜 이렇게 높은 걸까’ 생각한다. 주변에 밟고 올라갈만한 것이 없나 둘러보는데 오래된 의자 하나가 보였다. 예전에 접견실 같은 데서 쓰던 바퀴 달린 커다란 의자인데, 자세히 보니 바퀴 하나가 없다. 아마 버리긴 아깝고 해서 필요하면 사용하라고 여자 탈의실에 둔 거 같다. 다연은 바퀴 하나가 없는 오래된 의자를 질질 끌고 캐비닛 앞에 세워본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올라간다. 의자의 바퀴 하나가 빠져서 덜컹덜컹 흔들린다. 다연은 최대한 균형을 잡아보면서 밟고 일어서본다. 균형을 잡았다고 생각한 다연은 팔을 뻗어 디퓨저를 잡았다. 그리고 디퓨저를 얼굴 앞으로 가져와 살펴본다. 뚜껑에는 구멍이 송송 나있다. 아마 냄새가 잘 빠져나오게 설계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옆과 밑을 다 살펴봐도 특이한 게 없어 보였다. 라벤더 향만 강하게 느껴졌다. 다연은 ‘특별한 게 없구나’ 하고는 다시 캐비닛 위에 올려두고 흔들리는 의자에서 내려오려고 하는데 안쪽 창문 시트지 위로 실험실이 보였다. ‘높은 곳에 올라가니 여기서 실험실이 다 보이네’ 생각하는 다연. 시트지가 실험실과 여자탈의실 사이의 안쪽 창문 위를 다 가리지 못하고 윗부분 30cm 정도는 보였다. 그래서 의자를 밟고 올라가니 실험실이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그 실험실로 관리팀의 재경님이 냉장고 앞에서 음료수를 꺼내먹는 게 보였다. ‘요즘 음료수가 왜 이렇게 빨리 사라지나 했더니 재경님이 저렇게 가져가서 먹는구먼. 우리 팀만 먹으려 했더니 이제 다른 팀에도 다 소문나서 저렇게 다 가져가네.’ 그렇게 생각하며 다연은 흔들리는 의자에서 겨우 내려오고 의자를 원래 자리로 갖다 놓는다.
여자탈의실을 나와서 자신의 근무 자리로 간 다연. 품질팀장은 다연이 점점 늦게 출근하는 거 같다며 핀잔을 준다. 다연은 죄송하 다하며 앞으로는 일찍 오겠다고 한다. ‘내일부터는 이제 아침잠을 좀 이겨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녀다.
그러면서 관리팀 자리로 캔콜라를 갖고 걸어가는 재경님의 배 나온 옆모습을 바라본다.


26.
아침 6시. 준혁은 공장장을 태우고 용인의 메가호텔로 가고 있다. 세미나를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하면 지방 사람들은 너무 힘든 거 아니냐 하며 공장장과 불평을 나누고 있다. 그러면서 공장장은 어제 잠을 잘 못 잤다며 이내 잠이 든다. 준혁도 어제 잠을 잘 못 자기는 마찬가지. 어제 카메라를 집에 설치했다. 도저히 타이밍이 나오지 않아서, 아내가 잘 때 몰래 거실로 나와서 설치했다. 설치 장소는 거실. 현관 입구와 복도를 함께 비추도록 설치했다. LED등 옆에 바짝 붙여서 설치했다. 다행히 카메라가 하얀색이라 등과 비슷해 보였다. 그래도 오랜 시간 설치해 두면 들킬 수도 있다. 일주일만 딱 설치해 보자. 준혁은 하품을 하며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세미나에서 다른 공장, 본사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며 세미나 실로 향한다. 세미나는 오후 늦게까지 일정이 잡혀있고, 그 후에는 식사가 잡혀있다. 준혁은 발표자가 아니라 틈틈이 몰래 딴짓을 하며 쉬려고 한다.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카메라와 연동된 앱을 들여다본다. 거실과 복도를 잘 비추고 있다.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아내는 오늘 면접이 있다고 했다. 10년 다니던 회사에서 직장 선배랑 안 맞아서 한 달 전 퇴사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있다. 조금 더 쉬다가 구해도 된다 했는데, 아니라고 얼른 구할 거라고 한다.
세미나는 시작했고, 본사 기획부장이 금일 세미나의 일정과 취지에 대해 얘기한다. 준혁은 기획부장의 얘기를 경청하다가 눈이 감겨 졸기도 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리 입구에서 받아온 커피를 마신다. 나중에 쉬는 시간에 세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졸기도 하고,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기도 하고 반복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엄마다. ‘아들 내일 생일이네. 미리 축하해.’
‘아 내일 생일이었구나.’ 준혁은 잊고 있었다. 회사일도 바쁘고, 집에 카메라 설치할 생각을 하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39년 살면서 이런 일이 다 있네.
준혁은 이제야 잠이 좀 깬다. 엄마의 생일 축하 문자 메시지에 정신이 든 것이다.
기획부장의 시간이 끝나고 10분간 쉬는 시간이다. 준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핸드폰 CCTV 앱을 켠다. 아내가 보인다. 꽤 차려입었다. 검정 정장 재킷에 스커트. 이제 면접 보러 나가려나보다. 아내는 손가방을 들고서 현관 입구로 부리나케 나갔다. 여자들의 아침은 항상 저리 바쁘다. 준혁은 하품을 하며 잠깐 네이버 뉴스를 보다가 다시 CCTV 앱을 보는데 아내가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거실 쪽으로 막 달려온다. ‘뭐지. 카메라 들킨 거 아냐?’ 준혁은 심장이 뛴다. ‘그럴 리가 없지.’ 아내가 다시 현관 쪽으로 뛰어 나간다. 무언가 두고 갔다가 가지러 온 것이다. ‘아마 핸드폰이겠지 뭐.’ 준혁은 아내가 가끔씩 핸드폰을 두고 밖을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걸 몇 번 경험해 봐서 잘 안다. 아내는 핸드폰을 잘 두고 다닌다. 예전에도 점심시간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하두 안 받아서 나중에 물어보니 점심 먹으러 나갈 때 핸드폰을 회사에 두고 나가서 못 받았다는 거다. 아내는 현대인의 스마트폰 중독에서 간헐적으로 자유로웠다.
다른 부서들의 발표가 이어지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또 오후 세미나가 이어졌다. 준혁의 소속 공장장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준혁과 재경이 만든 PPT를 마치 자신이 만든 거처럼 발표를 하는 공장장은 무사히 끝내고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은 대표님의 연설 시간. 대표님은 ‘지금이 위기다’라고 계속해서 얘기하며 ‘정신 바짝 차려라, 월급 받는 만큼 회사에 헌신해라’ 등 가족 경영 오너 입장의 연설을 했다. 준혁은 속으로 ‘대표님이 문제입니다. 대표님이 방향을 잘 못 잡잖아요.’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세미나 발표 시간이 끝나고, 이제 조별 회의 시간이었다. 여러 부서를 혼합하여 조별로 4분기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회의를 하는 시간이었다. 준혁은 편성된 조의 자리를 확인하고는 해당 자리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오기를 기다리며, 핸드폰 앱을 들여다봤다. 불이 꺼진 집. 아직 아내가 오지 않았다. ‘오전에 면접 보러 갔는데, 오후 4시인데도 아직 집에 안 왔네. 약속 있나.’ 준혁은 같은 조의 다른 부서 사람들이 한 명씩 자리로 오자 밝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리고 또 앱을 들여다보니 아내가 현관 입구를 들어오며 집안의 불들을 켠다. ‘이제 오네.’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내가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말을 한다. 웃으면서. 아내가 복도를 따라 걸어오고, 뒤에 모자를 쓴 남자가 현관 입구를 들어온다. ‘저 남자 저번에 그 벤츠 남잔데.’ 전에 봤던 그 남자를 기억하고 준혁은 핸드폰을 들고서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거 여기서 볼 상황이 아닌데’ 생각하며 준혁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하고 타 부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화장실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좌변기에 들어가 앉아 핸드폰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아내는 남자에게 복도에서 웃으며 얘기한다. 안방을 제외하고 복도에 방 2개가 있는데, 방을 하나하나 손짓하며 무언가 설명한다. 남자는 손짓에 따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웃으며 살펴본다. 남자의 복장은 저번과 비슷하다. 모자, 셔츠, 면바지. 카메라가 화질이 좋지 않아 색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아내와 남자가 외부 손님 접대방으로 들어간다. 가끔 손님이나 가족들이 놀러 오면 주무시고 가라고 얇은 매트리스 하나를 깔아놓은 방이다. 실제로 손님이나 가족은 1년에 몇 번 오지 않아 조용한 방이다. 아내와 남자가 그 방에 들어가서 계속 나오지 않는다. 1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어떡하지. 회의하러 가야 하는데.’ 준혁은 초조하다. 회의는 해야 하고, 아내가 바람피우는 거 아닌가 걱정이고. 일단 10분만 더 보기로 한다. 그래도 나오지 않는다. 전화를 한번 해보자.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오히려 전화가 걸려온다. 회계팀 박팀장님이다.

“네 팀장님”
“회의 안 와요?”
“아 네 팀장님 곧 가겠습니다. 배가 자꾸 아파서”

전화를 끊자마자 아내에게 전화한다. 신호음이 꽤 울려도 안 받는다. 어쭈 안 받는다 이거지. 또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꽤 울리다가 포기하고 끊으려는 찰나에 받는다.

“여보세요.”
“어 여보 뭐 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잠깐 친구가 놀러 와서 얘기한다고 못 받았어”
“친구 누구?”
“나영이 있잖아. 오늘 잠깐 놀러 왔거든”
“알겠어. 난 세미나중이야”
“응. 수고해”

준혁은 속으로 ‘나영이가 남자냐’ 묻고 싶지만 그렇다고 카메라로 다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은 못 해서 곧바로 끊었다.
전화를 끊고는 ‘난 바보야’를 속으로 외치며 핸드폰을 움켜쥔다. 눈앞에 바람피우는 걸 보면서도 알겠다고 끊는 바보. 준혁은 자책한다. 계속 카메라를 들여다봐도 손님 접대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준혁은 화장실을 나가면서도, 회의실에 들어가면서도 앱을 들여다보지만 남자와 아내가 손님 접대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회의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핸드폰 앱을 들여다본다. 안 본 사이에 나갔을 수도 있고, 아직 방 안에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안 보인다.

“준혁팀장 왜 자꾸 핸드폰을 봐”
“죄송합니다. 아내가 몸이 안 좋다고 자꾸 문자가 와서”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니까 회계팀 박팀장님이 말을 걸어서 에둘러 변명하는 준혁이다.
회의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고, 준혁은 입이 삐쭉 나온 상태로 다시 핸드폰 앱을 들여다본다. 어느샌가 아내가 나와서 이곳저곳 이동하고 있다. 거실에서 쓰레기봉투를 들고 현관 입구로 갔다가 청소기를 돌렸다가, 요가매트를 펼쳐서 요가를 했다가…
‘그 남자는 언제 나간 거지.’ 나중에 녹화분 돌려봐야겠다 생각하는 준혁.
이제 세미나는 저녁식사를 위해 단체 이동을 하기로 하고 준혁은 공장장을 태워서 식당으로 간다. 준혁에게 오늘은 가장 심각한 날이고 결혼생활 최대 위기의 날이다. 내일 어떻게 아내에게 이 얘기를 할지 골똘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