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다가가다

염탐 14

by 도파민경제

27.
세미나는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외부 강사의 강의가 있었고, 그에 따른 토의도 있었다. 준혁은 전날 자기 전에도, 다음날 아침에도 핸드폰 CCTV로 집을 들여다봤지만, 특이사항은 없었다. 아내는 평소처럼 집에서 혼술을 했고,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다 잠들었고 아침에도 소파에서 일어났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내는 일어나자마자 누군가랑 통화를 아주 오래 했다. 준혁이 참가 중인 세미나 강의 시간 중에도 통화를 하고 있었고, 강의가 끝날 때도 통화 중, 강의 내용에 대한 토의를 할 때에도 통화 중, 토의가 끝날 때도 통화 중이었다. 통화는 소파에 누워서도 하고, 부엌과 거실을 다니면서도 하고, 손님 접대방에 들어가면서도 했다. 특히 손님 접대방에는 홀로 들어가서 한참을 있다 나왔다. 어제 대체 그 남자랑 손님 접대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내는 통화가 끝나자 준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기 생일 축하해. 친구가 아침부터 전화 와서 문자가 늦었네. 조심해서와 이따 봐 사랑해’
너에게 난 이제 뒷전이구나. 준혁은 활활 타오른다. 남자랑 바람피운 거도 모자라서 이젠 아예 친구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
세미나가 끝나고 점심 식사를 한 후 공장장과 함께 다시 공장으로 향한다. 고속도로에서 공장장은 세미나에 대한 얘기를 했고, 준혁도 그에 맞춰 맞장구를 잘 받아쳤다. 주로 회사의 미래에 대한 얘기, 그리고 타 부서장들에 대한 평판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공장장님은 오늘 집에 안 가세요?”

늘 주말이면 인천에 있는 집으로 갔는데, 요즘에는 통 안 간다. 그리고 이번에도 용인에서 세미나가 있으면 바로 집으로 갈뻔한데도 안 가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응 이제 잘 안 가게 되네. 혼자 있는 게 편해. 이상하지.”

공장장은 슬픈 표정으로 답한다. 외로워 보인다. 원래 직급이 올라갈수록 외롭다던데, 회사에서도 그렇고, 이젠 가정에서도 외롭나 보다. 하긴 준혁만큼 외로울까. 지금 준혁은 집이 개판 오 분 전이다. 오늘은 남북 전쟁의 날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남북으로 갈라질 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준혁의 차는 시속 150km까지 달리며 다른 차들을 제치며 달린다.
공장에 16시쯤 도착했고, 공장장이 편의를 봐준다.

“고생했어. 바로 퇴근해.”
“아 괜찮습니다.”
“아냐. 그냥 퇴근하라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 없는 거절을 표현했지만 준혁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지 공장장은 한번 더 얘기한다. 집으로 향하는 준혁.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고는 내린다. 공동 현관 입구로 향하는데 입구 근처에 벤츠가 보인다. ‘그 자식 벤츠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공동현관으로 향한다. 공동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버튼을 누른다. 아내에게는 지금 집에 간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아까 오기 전에 CCTV로 보니 집에 있었다. 부엌과 거실, 손님 접대방을 오가고 있었다. 아마 준혁의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요리를 하고 있는 거 같았다.
준혁은 바람피우는 정황에 대한 의심을 저녁 식사를 한 후 꺼낼 생각이다. 그래도 생일인데 생일 축하는 받고 이야기를 하자. 시작부터 슬픈 생일을 받아들이기 싫은 준혁이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왔고 문이 열렸다. 열리자마자 다급한 마음에 얼른 타려고 했는데 그 남자가 내린다. 바로 모자 쓴 셔츠의 남자. 벤츠의 남자. ‘늘 셔츠에 면바지 그리고 모자를 쓰는군.’ 남자는 준혁을 힐끔 보더니 얼른 주차장으로 향한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차가운 눈빛.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눈빛이다. 준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째려본다. ‘이 자식이 또 왜 왔지. 용건을 마치고 가는 거냐. 죽었어 나은. 오늘도 바람을 폈다 이거지.’
준혁은 얼른 9층을 누르고 올라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집 비밀번호를 누른다. 문을 연다. 아내의 연갈색 샌들이 보인다. 아내가 맨발로 자주 신는 샌들이다. 준혁의 검정 나이키 슬리퍼도 보인다. 준혁의 슬리퍼는 누군가에 의해 한번 자리가 밀렸나 보다. 옆 신발장 가까이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 왔었겠지. 벤츠의 남자가 들어온다고 내 슬리퍼를 저리 구석으로 밀어놨겠지.’ 아내가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놀래서는 부리나케 현관으로 오는 슬리퍼 소리가 들린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왜 연락도 안 하고”

아내는 준혁을 보자마자 놀라며 입을 연다. 준혁은 아내의 놀란 얼굴을 보자 그래도 마음의 차분함을 느낀다. 집으로 올 때까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 남자를 봤을 때는 폭발했지만, 아이보리 원피스를 입은 내조의 여왕 아내를 보자 한번 숨을 고른다. 아내의 천사 같은 얼굴. 하지만 천사 같은 얼굴로 뒤에서 바람을 피운다는 생각을 하자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응, 공장장님이 고생했다고 일찍 퇴근하라더라고.”

준혁은 짧게 대답하고는 구두를 벗고 들어간다.

“아직 요리가 안 끝났는데”

아내는 당황해서 부엌으로 급하게 슬리퍼를 끌며 걸어간다. ‘요리가 당연히 안 끝났겠지, 다른 남자랑 바람피우느라.’
준혁은 이를 갈며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먼저 씻고 좀 쉬고 있어”
“응”

아내의 말이 들리고 준혁이 답한다. ‘그래 먼저 씻고 좀 쉬면서 너의 죄에 대해 심문할 준비를 할게’라고 생각한다.
준혁은 굳게 닫혀있는 손님 접대방을 노려본다. 항상 열려있는데 오늘따라 굳게 닫혀있는 문이다.


28.
준혁은 씻고 나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 후 옷을 입고 거실로 향한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 준혁은 냄새로 음식을 맞춰본다. 미역국, 잡채, 닭볶음탕 냄새가 난다. 준비를 많이 한 거 같다. 준혁은 부엌 앞에서 열심히 국자를 휘젓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거실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는 천장 LED등 옆의 카메라가 잘 있는지 힐끔 바라본다. 카메라는 복도 쪽을 노려보고 있다. 준혁을 위해 열심히 감시 중이다. 준혁은 습관처럼 리모컨을 들고는 티브이를 켠다. 채널을 돌려본다. 마음에 드는 채널이 없다. 지금은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끈다. 아내가 음식들을 부엌 앞 식탁으로 옮긴다. 밥솥에서 밥을 퍼서 그릇에 담는다. 앞치마를 하고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아내의 발소리가 바쁘게 움직인다.

“다 됐어 얼른 밥 먹자. 케이크도 사놨어. 초 불자.”
“응”

대답하고는 식탁으로 가 앉는다. 아내는 케이크에 초를 꽃고는 불을 붙인다. 노래를 부른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남편. 생일 축하합니다. 와~~~~.”

아내는 밝게 웃으며 축하를 해준다.
준혁은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은 냉정하다. ‘후’ 하고 촛불을 끈다.

“어제오늘 세미나 힘들었어? 표정이 좋지 않네”
“응”

아내가 준혁에게 묻고 준혁은 짧게 대답한다.

“밥부터 먹자. 내가 인터넷 보고 스트레스 풀리는 닭볶음탕 레시피를 찾아서 해봤어. 국물이랑 같이 먹어봐”

아내가 밝은 목소리로 얘기하며 국자로 닭볶음탕을 퍼서 준혁에게 건넨다.

“응 고마워.”

준혁은 짧게 대답 후 닭볶음탕과 밥을 먹는다. 둘은 세미나 이야기, 면접 본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을 짧게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다 먹은 그릇들을 싱크대로 옮기고는 케이크를 다시 꺼내 앞접시로 각자 옮겨 담는다. 준혁은 이제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한다.

“나은아. 너 혹시 나한테 얘기할 거 없냐.”
“응? 얘기할 거? 뭐 있지”

나은은 시치미를 떼듯이 얘기한다. 준혁은 이 여자가 날 놀린다고 생각한다. 당황도 하지 않고, 눈도 피하지 않는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시치미를 뚝 떼고 지금 당당하게 얘기 중이다.

“나한테 숨기는 거 없냐?”

이제야 나은은 조금 흔들리는 거 같다.

“응? 숨기는 거? 아 맞다 선물을 안 줬다 미안.”

그러고선 급히 안방으로 간다. 그리고는 캄캄한 안방에서 다시 나오더니 포장된 선물을 준다. ‘이걸 말하는 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준혁은 포장지를 뜯는다. 구찌라고 적혀있는 박스가 나온다.

“뭐야 이거?”

준혁은 물으며 박스를 열어본다. 장지갑이다. 구찌 장지갑.

“자기 지갑 오래됐잖아. 이번에 플렉스 좀 해봤어. 장지갑 쓰면 돈이 모인다잖아.”

물욕이 있는 준혁이 잠깐 흔들린다. 지갑을 바라보는 동안은 아내가 그 남자랑 손님 접대방으로 들어갔던 그 순간을 잊었다. 잠깐 기분이 좋아진 준혁은 결국 웃는다. 아냐 이 여자 바람 폈잖아. 다시 정신 차리자. 아내는 준혁에게 너무 멋지다고 들고 있어 보라고 하며 사진 찍어준다고 한다. 준혁은 지갑을 들고서 웃으며 브이를 한다. 아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준혁의 손에 들린 구찌 검정 장지갑이 멋지게 빛난다. 특히 GC라고 되어있는 금빛 로고가 LED등의 빛에 비쳐 더욱 빛난다. 준혁은 지갑을 조심히 박스에 다시 담으며 식탁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린다.

“아니 나은아 이거 얘기한 게 아냐. 선물 정말 고마워. 근데 난 다른 걸 얘기하고 싶어. 나도 이 좋은 날에 이런 무거운 얘기 꺼내기 싫어. 너 정말 나한테 숨기는 거 없냐?”

나은은 다시 당황해한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입이 굳게 닫혀 있다. 그리고 흔들리는 동공으로 준혁을 바라본다. 준혁은 식탁의자에서 일어난다.

“따라와 봐”

준혁이 나은에게 얘기한다. 나은도 조용히 일어난다. 준혁은 나은의 손목을 잡고 거칠게 이끈다. 굳게 닫힌 손님 접대용 방 앞에 선다. 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 나은을 바라보는 준혁. 나은은 그저 준혁을 올려다보고 있다. 입을 굳게 다문채 눈빛은 준혁의 눈을 관통할 듯 강하게 바라본다. 준혁 또한 입을 굳게 다문채 강하게 나은을 노려본다. 둘만의 정적이 짧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