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짚었다

염탐 15

by 도파민경제

29.
준혁은 손님 접대방의 매트리스를 가리키며 ‘아직도 숨기는 거 없냐고, 할 얘기 없냐고’ 비꼬으려고 했다. 물론 카메라로 다 봤다는 증거 얘기는 하지 않고 심문만 하려 했다. 그렇게 진실을 밝히려 했다.
손님 접대방 문을 열기 전 아내와 잠깐의 침묵 이후 준혁은 거칠게 문을 열었다. 일부러 기분이 안 좋음을 보여주려고. 근데 준혁은 당황했다. 분명 단출한 손님 접대용 방은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바닥에 놓여 있어야 하는데, 창문 위로는 풍선들이 마구 붙어있고, 그 밑으로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우리 남편 생일 축하해. 사랑해’ 심지어 매트리스 옆으로는 배너도 세워져 있다. ‘준혁과 나은의 결혼 3주년 + 사랑하는 남편 생일’
그리고 매트리스 위에는 귀여운 곰인형과 꽃다발이 놓여있다.
준혁은 잠깐 할 말을 잃은 채 방 안을 둘러보다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준혁을 관통할 듯한 강한 눈빛으로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다. 준혁은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이, 이게 뭐지.”

나은은 그제야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입을 삐죽 내민다.

“어떻게 알았어? 눈치챈 거야? 이벤트 준비한 건데.”

준혁은 당황했다. 말을 더듬는다.

“어? 그, 그게.”

“흥 자기 전에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준혁은 빠르게 아내의 손을 잡는다.

“아니야, 지금 많이 감동했고 놀랬어”

급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말해야 아내가 섭섭하지 않을까. 좋지 않은 두뇌를 빠르게 3바퀴 정도 돌리자 이내 준혁의 입에서 좋은 멘트가 나오기 시작한다.

“사실 난 그냥 손님 접대용 방에 네가 몰래 또 쇼핑한 거 숨겨놨나 그런 생각했지 미안해 의심해서. 이런 이벤트 준비했을 줄은 몰랐어. 정말 눈치 못 챘어.”

“그래? 눈치 못 챈 거 맞아? 내가 무슨 맨날 쇼핑만 하는 여자냐”

입을 삐죽 내민 채 뚱하게 대하지만, 다시 표정이 좋아지기 시작하는 나은이다.

“응 진짜 눈치 하나도 못 챘어, 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네가 뭘 쇼핑하고서 숨겨놨구나 하고 의심한 거야. 참 단순하고 바보 같지?”

준혁은 자책을 하며 나은을 달랬다.

“그렇지? 하며 나 이벤트 잘 준비했지? 행복해?”
“응. 정말 행복해. 너 같은 여자가 세상에 있을까 싶어. 너무나도 고마워.”

준혁은 이때다 싶어 얼른 아내를 안고서 매트리스로 눕는다. 그리고는 아내와 옆으로 누워서 아내를 간지럽히기도 하고 꼭 안기도 하고 뽀뽀를 하기도 하며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준혁은 한편으로 그 벤츠의 남자는 이 방에 왜 들어왔을까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준혁은 슬쩍 아내에게 묻는다.

“이거 혹시 네가 다 준비한 거야? 저런 높은 곳에 풍선 같은 건 달기 힘들 거 아냐. 이벤트 회사 같은 데서 도와준 건가?”

“응. 친구 아는 지인이 이벤트 회사를 한다고 하더라고. 남편 생일이라고 하니까 싸게 이벤트 도와준다 해서 했어.”

“그렇구나”

대답하며 준혁은 그 벤츠 남자가 이벤트 회사 사람이라서 이곳에 온 것이구나
하고 의문이 해소된다.
이제 아내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고, 오히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함이 솟아나는 준혁. 자신의 속 좁은 성격 때문에 아내의 사랑을 오히려 미움으로 되갚으려 했다는 자책이 마음을 가득 덮는다.
둘은 그렇게 매트리스에 누워서 서로를 끌어안고 키스와 몸을 더듬는다. 그리고 준혁은 다시 한번 아내의 귀에 대고 얘기한다.

“정말 많이 사랑해”



30.
동현은 새벽 5시에 잠에서 깼다. 소변이 너무 마려워서 화장실을 다녀왔다. 악몽이었다. 꿈에서 선호님, 민정님과 함께 셋이서 놀이동산에 갔다.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있었다. 줄이 꽤 길었다. 좌석은 2자리씩 있어서 셋 중 한 명은 따로 앉아야 한다. 동현은 꼭 민정님 옆에 자신이 앉겠노라 벼르고 있는다. 줄이 하나 둘 줄어가면서 조금씩 앞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민정님 옆자리에 앉기 위해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는다. 근데 자꾸 소변이 마렵다. 커피와 음료를 많이 마셨나 보다. 줄은 점차 줄어드는데 계속 소변이 마렵다. 선호님은 대화 중에 계속해서 ‘저기 워터슬라이드도 재밌겠다고, 물 시원하겠다’고 하며 자꾸 소변이 더 마려운 말만 해댄다. 그러면서 은근히 동현과 민정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제스처를 보인다. 동현은 강하게 버티며 절대 민정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겠노라며 최대한 붙어있는다. 선호님이 얘기하는 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민정님은 계속 웃어댄다. 동현은 웃지 않는다. 재미도 없고, 소변이 너무 급하다. 이제 줄이 줄어들어 롤러코스터가 한 바퀴 돌면 동현네가 탈 차례다. 근데 소변이 너무 급해서 못 참을 거 같다. 동현은 혹시 화장실이 가까이 있을까 싶어 둘러본다. 보이지 않는다. 아마 꽤 멀리 걸어가야 할 거 같다. 소변이 너무 마려워 발을 동동 구르며 있는데 드디어 동현네가 탑승할 차례다. 하나둘 기구로 올라타다 보니 동현네가 마지막 3자리에 앉는다. 한 곳은 모르는 사람의 옆자리. 두 곳은 빈자리다. 동현은 민정님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옆자리에 앉기 위해 기회를 살핀다. 근데 민정님이 모르는 사람 옆자리에 앉으며 선호님과 동현 님 둘이 같이 앉으라고 한다. 동현과 선호는 당황하고, 동현은 ‘소변도 급한데 선호님과 옆자리에 앉아야 하다니’ 생각하며 좌절한다. 그나마 민정님의 뒷자리에 앉는다. 안쪽에 선호님 보고 먼저 앉으라고 선심 쓰는 척하며 바깥쪽에 앉아서 민정님의 뒷자리에 앉는 거였다.
바람결에 민정님 머리 샴푸향이 동현의 코 안에 깊숙이 들어온다. 향기롭다. 근데 소변이 너무 마렵다. 롤러코스터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오르막을 올라간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럴수록 동현은 소변은 생식기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이제 롤러코스터가 정점에 멈추었다. 다들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꺅. 너무나도 아찔하다. 이제 롤러코스터가 앞쪽으로 내려가려 한다. 미친 속도로 내려갈 거 같다. 앞자리 민정님의 긴 머리가 무서워서 뒤로 도망가듯이 동현을 향해 날아온다. 동현도 강한 바람을 맞으며 높은 곳에서 아찔한 놀이동산 전체의 광경을 바라본다. 으악.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과 함께 롤러코스터가 레일을 따라 무지막지하게 굴러 떨어진다. 수많은 나무와 공원의 풍경들이 어지럽게 돌아간다. ‘소변 어떡하지 못 참겠다. 으악.’ 하다가 잠에서 깬 동현이다.

어제 집에서 혼자 치맥을 먹으며 해외축구를 보고 잤는데 그거 때문에 자다가 소변이 많이 마려웠거 같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민정님에게 어떻게 접근하지. 오늘은 전에 못 먹었던 파전에 막걸리 한번 먹자고 말해볼까. 오늘 탈의실 훔쳐보기는 성공할까. 민정님은 어떤 팬티를 입고 올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저번에 봤던 민정의 새하얗고 매끈한 다리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카카오톡을 열어 민정님의 프로필 사진을 띄워본다. 직접 찍은 셀카다. 카페에서 혼자 찍은 거 같다. 긴 검은 머리. 하얀 얼굴. 동그란 눈. 진한 눈썹. 기다랗고 높은 코. 빨갛고 얇은 입술. 그리고 고양이상의 얼굴형. 하얀 니트를 입고 있다. 입으로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지만 동그란 눈동자는 카메라를 삼킬 것처럼 크다. 한동안 프로필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회사 갈 준비나 하자’며 세수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