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염탐

by 도파민경제


1.
동현은 아침 일찍 출근한다. 8시까지인 회사에 보통 7시 20분쯤 도착한다. 일찍 가는 이유는 아침잠도 적거니와, 회사에 성실하게 다니려는 또는 성실하게 보이려는 목적이다.
회사에 출근하면 동현보다 더 일찍 출근하는 2명의 직원이 있다. 직장생활 30년 차 현장관리직 승현 님. 직장생활 20년 차 생산팀 사무직 혜정 님.
동현은 항상 일찍 출근하며 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본인의 성실성을 인정받는다. 30년 직장생활의 승현 님은 과거부터 일찍 출근하는 게 습관 되어 그러시고, 생산 사무직인 혜정 님은 육아로 인한 유연 근무를 허락받아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신다.
오늘도 그렇게 똑같은 패턴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동현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니 동현은 입이 심심하다. 사무실 안쪽에 품질팀의 실험실이 있는데, 실험실 안 냉장고에 음료수들이 가득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동현은 어차피 아무도 없으니 화장실 가는 척 복도로 향하다가 실험실로 들어갔다. 좌우로 여는 블라인드를 걷으니 실험실 안이 어두컴컴하다. 그래도 어렴풋이 안의 물건들이 보인다. 그리고 대각선 방향에 하얀 냉장고가 보인다. 동현은 고양이 발걸음처럼 소리 없이 걸어갔다.
냉장고 문을 여니, 차가운 냉기와 함께 종류별 가득한 음료수들이 보인다. 많은 음료 중 동현은 콜라를 선택했다. 빨간 캔의 콜라를 손에 들고 냉장고 문을 닫고 뒤돌아보니 옆쪽으로 문이 보인다. ‘어 이건 무슨 문이지’ 문을 열어본다. 남자 탈의실이다. 항상 옷을 갈아입으면서 저 문은 왜 있는 거지 생각했는데, 실험실과 이어져있다. 30년 된 공장이라 처음 설계할 때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동현은 좋았다. 실험실 음료수를 챙겨서 이리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남자탈의실에서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동현은 그대로 나갔다.

탈의실을 나가자마자 민정님이 출근하는 게 보인다. 민정님은 항상 밝은 모습으로 크게 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들어온다. 동현을 보자마자 민정이 밝에 웃으며, 고개를 크게 숙이며 인사한다. 참 예쁘다. 민정은 165cm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다. 딱 보면 미인형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동현의 옛 대학시절 첫사랑과 닮았다. 그때 이루지 못한 사랑을 여기서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민정님도 남자친구가 없다고 했다.
뒤이어 다연님, 은별님, 재경님 등 다른 직원들이 출근했다.
그리고 사무실 안에서 보이는 남자 탈의실과 여자탈의실의 창문 커튼 너머로 하얀 형광등 불빛이 밝게 빛난다.


2.
동현은 다음날도 일찍 출근했다. 오늘은 금요일. 불타는 금요일. 불태워서 근무하리라가 아니라 오늘도 월급루팡이 되어서 팀장이 자리 비울 땐 열심히 핸드폰만 바라보고, 팀장 있을 때에는 일하는 척 연기를 잘할 테다.

오늘은 30년 현장 일을 하신 승현 님만 보이고 혜정 님은 보이지 않았다. 승현 님께 인사하며, 혜정 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하니, 오늘 연차라고 하신다.
동현은 탈의실에서 근무복으로 갈아입으며 실험실과 연결된 안쪽 문을 바라본다. ‘저리로 바로 실험실 들어가서 냉장고 음료수 하나 챙겨 나올까’ 동현은 자신의 효율적인 뇌에 감탄한다. 어찌 이렇게 효율적일까. 그럼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을 테고 동선도 줄어든다. 얼른 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실험실 속 냉장고로 향하여 음료수를 챙겨 온다. 그리고 그대로 쪽문 탈의실로 들어가서 탈의실 문으로 빠져나왔다.
역시나 탈의실을 나오니 민정님이 입구에서 크게 인사하며 들어왔다. 인사할 사람이 동현과 승현 님 밖에 없었다. 동현은 안경 너머의 작은 눈으로 민정과 눈을 마주치며 시커먼 볼에 보조개로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민정님을 보니 오늘도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어떻게 하면 민정님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동현은 민정을 보고서는 도파민이 분비되며 좋아지는 기분을 주최할 수 없다.

하지만 그새 기분이 다운된다.
바로 팀장이 출근하며 인사하기 때문이다.
팀장 민준은 항상 무표정하다. 웃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화내는 일도 없다. 하지만 팀장이라는 직책상 지시를 하는 사람이고, 동현은 지시를 받는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기쁘게 인사하기는 힘들다.
동현은 자리로 와서 의자에 앉아 캔 콜라를 딴다. 벌컥벌컥 3모금을 마신다.
그런데 저기 품질팀의 다연님과 눈이 마주친다. 다연님도 출근하여 옷을 갈아입고 자리로 가던 중 동현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왠지 ‘콜라 우리 팀 실험실 냉장고에 있는 거 아니에요?’라고 묻는 것만 같다.
앞으로도 종종 눈이 마주칠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