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보게 되다

염탐2

by 도파민경제

3.
주말을 나름 혼자서 집콕하며 보람 있게 보낸 동현은 월요일 아침 출근길 또 일찍 나온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이제 막 가을 날씨로 접어들며 가을비가 내린다. 가을비는 심하게 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조금 내리지도 않는 그냥 가을 다운 아주 선선한 빗방울들을 내려보내고 있다.
동현은 차량 와이퍼를 움직이며 출근길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추었다. 이른 출근 시간인데도 차량이 꽤 있다. 동현처럼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하고 차를 주차하는 중에 회색 아반떼가 동현의 차 앞을 지나치더니 주차를 한다. 주차 실력이 동현보다 좋은지, 동현보다 늦게 왔음에도 단 한 번에, 더 빨리 주차를 완료한다.
검은색 우산을 펼친 채 차에서 내린 인물은 민정님이다. 동현이 좋아하는 그 민정님.
동현도 얼른 검은색 우산을 펼쳐 내린다.
민정은 동현을 보자마자 크게 인사한다. 동현도 인사를 하며 얼른 민정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주차장에서 회사 사무실까지 50m 정도 되는 거리인데, 같이 걷고 싶었다. 동현의 본능이었다. 생각할 겨를 없이 동현의 본능이 그렇게 동현의 몸을 움직였다.
동현과 민정은 나란히 우산을 쓰며 걸었다.
동현보다 더 외향적이고 유쾌한 민정이 먼저 말을 했다.
“오늘 비가 오네요. 우산 안 들고 나왔다가 다행히 차에 우산이 있었어요. 다행이에요”
“아 그래요? 저는 자면서 새벽에 빗소리를 창문 너머로 들었거든요.”
“아 잠귀가 밝으시네요. 전 자면 아무 소리도 못 듣고 그냥 푹 자버려서요.”
민정의 목소리는 높은 톤으로 아름답게 말을 하면서도 털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민정의 예쁜 외모와는 좀 반전되는 말과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런 성격도 결국 예쁜 미모 앞에서는 묻혀버린다. 그 정도로 민정의 미모는 매력적이다.


동현과 민정은 나란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며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께 인사했고, 승현 님과 혜정 님은 사무실에서 반겨주었다.
그리고 나란히 남녀 탈의실로 각각 향했다.
남녀 탈의실은 입구만 다르지 벽을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 그래서 가끔 여자 탈의실에서 말을 하면 남자 탈의실에서 들린다. 그래서 여자 탈의실에서 민정의 캐비닛 여닫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동현은 괜히 설레었다. 민정과 단둘이 벽을 사이에 두고 근무복으로 옷을 갈아입으니 괜히 묘했다. 옷을 갈아입은 동현은 똑같은 패턴대로 실험실로 향하는 문을 열어 실험실 냉장고로 향했고, 캔콜라 하나를 집어서 다시 남자 탈의실 쪽문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바로 옆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여자탈의실 안쪽 창이었다.
실험실과 붙어있는 남녀 탈의실 중 여자탈의실은 창문 하나가 실험실과 애매하게 걸쳐져 붙어있었다. 밖에서 보이지 않게, 하얀 시트지를 창문에 붙여놨는데 끝에 아주 미세하게 접착력이 약해져 들려있었다. 3cm 정도 되는 작은 부분으로 여자탈의실 형광등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동현은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서 한쪽 눈을 갖다 대보았다.
‘헉’
동현은 놀란다.
여자탈의실 안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민정이 옷을 다 갈아입고 이제 막 여자 탈의실에서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동현은 속으로 생각한다.
조금만 더 빨리 봤으면 민정님의 옷 갈아입는 모습을 볼 수 있었겠다고.
그리고 의문도 생긴다.
과연 여자탈의실 안에서는 이 시트지 접착력이 떨어진 모서리 공간을 알고 있을 것인가 하고.


4.
아침 여자탈의실 내부를 훔쳐본 동현의 머릿속에 민정님의 탈의실 나가는 뒷모습이 자꾸 생각나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설비 구매 기안서를 쓰는데 자꾸 진도를 못 나가고, 팀장은 답답해하며 쪼으기 시작했다.
“동현아. 빨리 좀 써. 이거 이번 주까지 기안 끝내고 결재 올려야 해. 나도 검토해야 할 거 아냐”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동현은 기안을 쓰기 위해 모니터를 보지만, 사실 동현은 모니터 뒤로 10m 정도 떨어진 품질팀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민정님의 모니터와 그 뒤에 가려진 민정님.
모니터에 얼굴이 가려 몸만 보인다. 몸만 바라봐도 좋다.
그렇게 모니터와 민정님의 모습을 힐끔힐끔 번갈아 보는데 갑자기 누군가 민정님의 모습을 가린다.
다연님이다.
다연님의 뒷모습이 민정님의 모습을 가렸다.
다연님은 걸어가던 중에 갑자기 민정님의 정면에 서서 무언가 말을 걸고 있다.
다연님의 뒷모습, 긴 머리카락, 아주 야위고 마른 몸.
동현은 다시 모니터에 집중한다.
구매 기안서 쓰기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