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약속을 잡다

염탐3

by 도파민경제

오늘도 가을비가 내린다. 가을비는 선선한 날씨에 찝찝하지도 않고, 시원한 느낌이다.

며칠 전 비가 오는 날 민정님과 함께 사무실로 걸어갔던 게 생각나는 동현이다.


오늘도 혹시나 같은 우연이 있을까 기대하며 출근한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멀리서 회색 아반떼의 문이 열리는 것이 보인다. 민정님이 내리며 우산을 편다.


동현은 얼른 주차를 한다.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라던데.


동현은 문을 열고 우산을 펴서 걸어오는 민정님을 향해 인사했다.


민정님은 역시나 큰 목소리로 가을 빗소리를 뚫고 인사한다.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의 거리를 같이 걸어가는 동현과 민정.


밝은 성격의 민정이 먼저 얘기를 꺼낸다.


“비가 오니 파전에 막걸리가 먹고 싶네요.”


이렇게 화끈하고 쾌활한 미모의 여성을 봤나. 동현은 기회라 생각한다.


“저도 아침부터 그 생각했어요. 같은 생각을 했네요. 오늘 시간 돼요? 같이 파전에 막걸리 한잔 할래요?”


그 짧은 몇 초의 순간, 동현의 심장은 몇십 번, 아니 몇백 번은 뛴 거 같다. 동현의 심장 소리를 빗속에서 혹시나 민정님이 들었을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동현은 민정의 대답을 기다리며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졌다.


“네 좋아요.”


민정님은 역시 화끈하고 쾌활하시다.


내숭 있는 여성은 거절하거나 머뭇거릴 수 있는 제안에도 민정님은 명쾌하게 오케이 했다. 역시 나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동현이다.


“네 오늘 마치고 같이 가요.”


동현은 안경 너머의 작은 눈으로 민정님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오늘이 민정님과 연애 1일이 될 것인가. 동현의 몸과 마음에 도파민이 솟아난다.



동현과 민정은 함께 사무실을 들어가며 크게 인사한다.


승현 님과 혜정 님도 반갑게 인사해 준다.


승현 님은 ‘둘이 같이 출근하네.’ 하고 혜정 님은 ‘둘이 사귀는 거 아냐?’ 하고 맞장구친다.


민정님은 그저 하하 크게 웃으며 아니에요 주차장에서 만났어요 한다. 동현은 민정과 자신을 커플로 봐주는 게 너무나도 기뻐 승현 님과 혜정 님께 절을 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따로 부정의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미소 지으며 웃기만 했다.



남자 탈의실에 들어간 동현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쪽문을 통해 실험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얼른 여자 탈의실 창문 시트지가 떨어진 부분에 눈을 갖다 댔다. 민정님은 그새 옷을 다 갈아입었고, 탈의실 문을 통해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옷을 무척 빨리 갈아입는다고 생각하는 동현이다. 동현도 엄청 서둘러서 갈아입었는데 민정님도 못지않게 빠르게 갈아입었다.


어차피 오늘 저녁에 파전에 막걸리 한잔 하며 진도를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훔쳐보는 짓거리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동현이다.



탈의실을 나와서 자리로 가는데 승현 님이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보신다. 자꾸 미소 짓고 있는 거 같다고 하신다.


아니라고, 어제 잠을 잘 자서 컨디션이 좋다고 대충 얼버무리는 동현이다.



업무시간에도 기안을 올리는 일에 무척 집중하였다. 이런 일 따위로 혹시나 야근을 해서 민정님과의 데이트를 망칠 순 없다.


그러면서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품질팀의 민정님을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늘따라 되게 집중하는 것 같다”


팀장이 얘기한다.


“아 원래 그렇습니다”


답하는 동현.


“아냐. 오늘따라 엄청 집중한다고. 무슨 좋은 일 있냐”


“아닙니다. 여기 기안 검토서입니다.”


얼버무리고, 기안 검토서를 출력하여 팀장님께 얼른 갖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