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탐4
7.
“오늘 비도 오고 하는데, 파전에 막걸리로 전체 회식 어때요?”
이 날벼락같은 소리를 공장장이 출근하면서 사무실 직원들에게 외치고 있다.
공장장 눈치를 가장 많이 보는 관리팀장이 바로 “좋습니다”를 외치고, 동현의 팀장인 설비팀장도 “알겠습니다”를 외친다.
그러면서 두 팀장은 팀원들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동현. 오늘 저녁 시간 되지?”
설비팀장은 동현에게 묻는다.
공장장과 사무실 모든 직원들이 동현을 주목한다.
그리고 민정도.
아침 주차장에서 민정과 함께 출근하며 파전에 막걸리 한잔 제안을 하며 기다렸던 그 짧은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졌었는데, 이번에는 설비팀장의 물음에 또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진다.
동현의 머릿속은 ‘안됩니다. 선약이 있습니다.’와 ‘네, 알겠습니다.’가 뒤죽박죽 섞여있다.
이를 어쩌나 하며 머뭇거리고 있으니, 설비팀장이 또 묻는다.
“오늘 안돼?”
또 공장장과 사무실 직원들 전체가 동현을 바라본다. 물론 민정도.
동현은 저 멀리 민정을 힐끔 본다. 민정이 짧은 순간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가능하다고 하라는 신호다.
동현은 어쩔 수 없이 대답한다.
“네, 가능합니다.”
이어서 다른 팀장들도 팀원들에게 여기저기 묻는다. 오늘 회식되냐고, 오랜만에 공장장님이 회식 제안하시는데 다들 참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민정과의 데이트 기회를 날려버리는 동현.
동현은 시무룩해서 핸드폰과 컴퓨터 모니터를 번갈아보며 한숨을 쉰다.
아침 출근 30분도 안 지나서 천당과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다.
그때 모니터에 사내 메신저 쪽지가 온다.
민정님의 쪽지다.
‘다음번에 먹어요. 오늘은 회식 가야죠 뭐.^^’
천사 민정님의 배려 가득한 쪽지.
동현은 답장을 한다.
‘네ㅜ 기대했는데 아쉽네요. 조만간 날짜 잡아요ㅜ’
동현은 달력을 본다. 민정에게 언제 또 식사 제안을 할까.
8.
어제 회식은 정말 파전에 막걸리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말 많은 공장장의 연설 같은 말에 굽신거리기 좋아하는 관리팀장이 옆에서 맞받아치며, 재미없는 회식이 진행되었다.
동현은 혹시나 회식 때 민정님의 옆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하며 기회를 노려봤지만, 민정님의 양 옆자리엔 남성 팀장들이 앉았다.
그저 먼 자리에서 민정님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파전과 막걸리를 먹는 것이 그나마 낙으로 생각하고 회식 시간을 버텼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아침부터 날씨가 맑았다.
어제 막걸리를 많이 먹지 않아서 몸 상태는 좋았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오늘은 혜정 님만 인사를 한다.
승현 님은 연차라고 하신다.
“어제 회식 어땠어? 술은 많이 먹었어?”
“그냥 그랬어요, 술은 많이 안 먹었어요.”
육아로 인해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혜정 님이 물었고, 동현이 답하며 탈의실로 갔다.
옷을 갈아입고 쪽문으로 실험실로 향해 냉장고의 음료를 하나 꺼내서 여자탈의실 창문 시트지 틈새 구멍으로 보니 안은 어두컴컴하다.
아직 아무도 출근을 안 했다.
다시 쪽문으로 들어가 남자탈의실 문 밖으로 나왔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민정님을 비롯하여 다연님, 은별님, 재경님 순으로 출근한다.
항상 출근하는 순서는 비슷하다.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9시쯤 되니 갑자기 인사발령문이 떴다.
보통 퇴근시간 때 뜨는데, 오늘은 특이하게 아침부터 뜬다.
다들 무슨 인사발령문이지 하며 링크를 열어본다.
열어보니, 인사발령문에는 5명의 대상자가 떴는데, 그중 한 명이 동현이 속해있는 공장으로 발령이 났다.
원래 대전 영업소에서 근무하는 분인데, 이곳 대전공장으로 발령 난 것이다.
경력은 동현보다 1년 후배였다.
이름은 김선호. 품질팀이다.
안 그래도 품질팀에 1명의 T/O가 비어있어서 빨리 새로운 인원이 와야 한다고 다들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야 발령이 난 것이다.
타 팀에서는 품질팀에 드디어 인원이 와서 좋겠다고 누군지 궁금하다고 얘기하고, 품질팀에서도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고 다들 들떠있다.
동현은 살짝 기분이 가라앉았다. 품질팀의 빈자리는 민정님의 옆자리이기 때문이다. 새로 발령받아 오는 김선호라는 남자는 민정님의 옆자리가 될 것이다.
‘잘생기거나, 매력적이면 안되는데, 민정님을 빼앗기면 안 되는데.’ 벌써부터 동현은 앞서가는 걱정을 한다.
“동현아”
그때 민준 팀장이 부른다.
“네”
동현은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다가 대답하며 헐레벌떡 팀장 자리로 갔다.
“기안서에 공사 금액 숫자 단위가 잘못됐잖아. 2천만 원인데 2억으로 적으면 어떡하냐”
“앗 죄송합니다.”
자리로 돌아오는 동현. 저 멀리 품질팀의 민정님을 바라보니 민정님도 기분이 들떠있는지, 다른 여직원들과 하하 호호 신나게 떠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