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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 Aug 01. 2021

무한에 관하여(1부)

part2. 철학의 시작(3)


6. 자의식과 의심

 의심이라는 관념은 인식에서 기원했다. 인식은 대상의 실체를 어떻게 분석하는가에 기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감각의 한계를 경험하고, 추상화를 통해 인식 주체인 우리의 의식의 기저인 이성을 밝혀내려 노력했다. 감각의 한계를 넘어 대상의 실체를 분석하기 위해. 이성을 통해 논리적이고 올바르게 세상을 이해하고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수학과 과학을 동원해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고찰하며 이를 이해하고 지식은 발전한다.

 그러나 위의 철학적 활동을 따라온 사람이라면 이런 의심이 들 것이다.


 “과연 자신의 의식을 믿을 수 있는가?”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바로 이 의식과 이성은 대체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왜 이를 옳다고 여기냐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의심인 것 같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이 이성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이 이질적인 고찰은 대체 무엇일까? 이를 ‘자의식’이라 한다. 잠시 자의식을 이해해보자.

 먼저 우리의 눈앞에 노란색 바나나가 있다. 우리는 이를 바나나라고 인식한다. 이는 단순 의식이다. 그럼 우리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바나나를 바나나라고 인식했어.” 이렇듯 자신의 의식을 의식하는 것을 자의식이라고 한다.

 즉 여태까지 행했던 우리의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상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것은 단순 의식이다. 그리고 인식은 이성을 근거로 파악된다. 이 이성, 의식의 기저를 분석하기 위해 행했던 정신활동은 자의식이다. (의식을 의식.)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성을 파악하려는 자의식의 활동을 의심하는 것 역시 자의식이다. 이는 자의식을 의식한 자의식이다. (자의식을 의식= 의식을 의식한 것을 다시 의식)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순환은 대체 왜 일어나는 걸까? 우리의 의식에 자의식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의식이란 쉽게 말해 인식의 집합인데, 인식의 대상이 의식 주체인 경우를 자의식이라 하는 것이다. 의식을 아무리 자의식을 통해 분석하려 해도, 그 분석했던 정신활동은 다시 의식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 포함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이성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의 의식체계에 대해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명확히 알아야 하는 사실은 이를 분석했던 정신활동 역시 우리의 의식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이 이성은 자의식을 통해 고찰된 개념이며, 자의식은 의식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이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성을 밝힌 우리의 자의식에 간섭을 받았다는 의미고, 자의식이 간섭을 받은 의식에 다시 간섭을 받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의식은 다시 인식이라는 경험에 간섭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이 이성이 경험에 간섭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완벽히 같지는 않지만, 이는 경험주의자인 데이비드 흄의 견해와도 비슷하다. 흄은 모든 이성은 귀납적으로 얻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과성은 경험의 누적으로 인한 개연성이 마치 필연적으로 보일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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