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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별고래 May 16. 2024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스웨덴 적응기(4)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일까. 

    "너 중국 사람이지?" 아마도 이게 아닐까. 

    나와 남편 역시 이곳에 살면서, 카페를 가도, 레스토랑을 가도 중국 사람이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스웨덴 사람들은 먼저 잘 말을 안 걸고(관심도 없고), 보통 외국인이나 이민자들이 물어봄.  심지어 중국 식당에 가거나 중국 사람을 만나면 의심 조차하지 않고 중국말로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처음에는 굉장히 불쾌하고 기분이 나빴다. 일단 의심 조차하지 않고 당연히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길에서 금발의 백인을 봤을 때 정말 얼굴만 보고(스타일, 말투, 억양, 제스처 다 제외) 누가 스웨덴 사람인지, 누가 핀란드 사람인지, 누가 덴마크 사람인지, 누가 독일 사람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그냥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예를 들어 술 취한 사람, 딱 봐도 미친놈) 그냥 웃고 만다. 

    '응, 나도 너네 누군지 몰라' 




    우리 집 앞에는 스웨덴 물가치고 꽤 가성비 좋은 태국 음식 점이 있다. 친절한 태국 아주 머니 두 분이 운영하시는 작은 음식점인데, 맛도 괜찮고, 싸고, 양도 많고, 빨리 나와서 남편과 종종 들러 볶음밥 하나 볶음 국사 하나 시켜 나눠 먹고는 했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동양인이라 그런지 뭔가 말을 걸고 싶어 하시고, 굉장히 반가워하셨지만, 우리는 스웨덴어를 할 줄 몰랐고, 아주머니는 영어가 서툴러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6월, 대학생들이 막 여름 방학에 들어가는 즈음. 그날도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싫은 우리는 그 음식점에 들러 음식을 주문하려는데. 

    "방학하면 중국에 가?" 

    아주머니는 아무래도 우리가 중국에서 유학 온 유학생이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우리는 나이에 비해 좀 동안임 하하. 

    "아니요. 우리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은 겨울에 갈 거예요"

    뭐?? 한국 사람이야? 내가 얼마나 한국 좋아하는데!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마자 아주머니의 눈은 동그래지면서 목소리를 매우 하이톤이 되었고, 우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서 아는 영어 단어를 총 동원하여 말하기 시작하셨다. 한국은 정말 예쁜 나라라는 둥, 한국에 여행을 가고 싶다는 둥, 한국 사람은 다 예쁘다는 둥,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너무 재밌다는 둥 등등. 그리고 기분인지는 몰라도 다른 날에 비해 볶음밥의 양이 20프로 정도는 많아 보였다. 덧붙여,

    "차 마실래? 여기 차가 많아. 하나 골라봐." 

이곳에 차가 있었던가. 본 적도 없는 차를 꺼내 보이시며 마구마구 서비스를 주시는데, 정말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이 전과 너무 다른 태도로 우리를 대하시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단지 달라진 건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밝힌 것, 그것밖에 없었다. 




    work and balance가 비교도 안되게 좋아진 남편은 퇴근하고 나서 남은 저녁 시간을 함께 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집 근처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정말 운동에 진심이다, 어딜 가나 헬스장과 운동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우리 집 근처 헬드장은 꽤 규모가 커서 여러 가지 클래스를 신청해서 들을 수 있는데, 그중 우리는 bobypump(스쾃 등 여러 동작을 음악에 맞춰하는 것) 클래스를 듣고 있었다. 


    그날도 신청한 사람이 많아 교실 문 앞에 줄 서서 들어가려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기다리면서 두런두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 뒤에 서 있던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 한 명이 

"안녕하세요?" 하며 말을 걸었다. 우리는 너무 깜짝 놀라,

    "한국어를 할 줄 알아?"

    "우리가 한국인인 줄 어떻게 알았어?"

라고 물어봤는데, 그 여학생은 한국에 여행을 갔었고, 간단한 한국어만 할 줄 아는데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들으면 어떤 게 한국말인지는 구분한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한국인을 여기서 처음 봐. 한국인을 만나서 정말 기뻐. 




    내가 다니고 있는 스웨덴어 교실에는 동양인이 별로 없다. 70프로 정도는 중동계이고, 이란, 시리아,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등, 10프로 정도는 인도사람, 그리고 나머지 몇몇의 유럽사람들, 독일, 프랑스, 우크라이나, 터키, 그리고 소수의 중남미 사람,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간혹 있는 동양인은 물론 무조건 중국계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나를 처음 보고 중국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소개 시간, 어디에서 왔는지 각자 소개를 하고 나면 그 분위기를 달라진다. 내가 "나는 남한에서 왔어"라고 말하자마자 그 교실에 있는 60프로 정도의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특히 20대 초반의 어린 여자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나에게 와서 

    "나 한국인 처음 봐."

    "한국인을 정말 만나고 싶었어."

    "나 BTS 좋아해." 

    "나는 요즘 한국 드라마 보고 있는데, 한국 드라마는 왜 그렇게 재밌는 거야?" 

한국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나는 '국뽕'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내 나라를 사랑하지만,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훌륭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오히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더 배우고 발전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에피소트를 겪을 때마다, 사람들이 대한민국이 정말 좋은 나라라고, 가보고 싶다고, 한국인을 정말 만나보고 싶었다고 말할 때마다 소름 돋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래서 외국에 나와 살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 걸까. 


    북유럽 국가들은 아직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한국이 덜 알려렸고, 이 사람들 특성 때문에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는 편이지만, 점점 커져가는 The Power of Korean Culture에 뿌듯해지고, 심지어 케이 아이돌 문화에 감사하기까지 한 요즘. 


    멀리서 응원합니다,  대. 한. 민. 국 화잇팅! 


이미지 출처 : 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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