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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Jul 24. 2022

너의 신호를 알아채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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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오빠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당시 진로에 대한 고민 상담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밥도 참 많이 사줬었다. 내가 너무 말랐었나? 그때?


그 오빠 특, ㅇㅇ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오빠는 숫기가 없어서 장난기 많은 내가 다가가는 걸 재미있어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정확히 안다. 사람이 생긴 것도 성격도 곰 같아서 장난쳐도 허허 웃고 말고 물어보면 허허하면서 말해줬다. 대학 때 나는 어우, 지금은 사람 됐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오두방정이었다. 복학한 지 얼마 안 된 곰 오빠가 신기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 소개를 했던 게 생각난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속도가 빛의 속도만큼 빨랐던 그때, 곰 오빠는 유일하게 내 속도를 맞춰준 사람이었다. 그래도 단 둘이 밥을 먹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음은 참 고마웠지만 나는 그때 연애 한 번 안 해봤고 남자랑 둘이 밥 먹는 게 영 불편했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우리는 처음 학교 밖에서 만났다.


당시에는 최대 의문이 해결될 뻔한 순간이었다. 대체 나한테 밥을 왜 이렇게 사주고 싶어 하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물어도 봤을 거다. 왜 이렇게 밥을 사주고 싶다는 거예요? 내 뚱딴지같은 질문에도 요새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고 되물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늘 먹고 싶은 음식이 있었고 그 질문만 들으면 새로운 음식이 떠올라 심장이 요동쳤다. 오빠 저 치즈 등갈비. 그다음엔 00 치킨.


치즈 등갈비를 또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먹고 다른 날 00 치킨을 먹자며 나를 불러냈다. 우리 집 앞으로. 곰 오빠는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전화도 안 받고 나는 절연할 심산으로 집에 가려는 순간 오빠가 왔다. 무려 약속시간보다 1시간 지나서 말이다. 겨울이라 오빠는 목도리를 두르고 왔는데 나는 집 앞이라고 또 대충 입고 나갔었다. 빨개진 내 목덜미를 보더니 허둥지둥 자기 목도리를 벗어서 나한테 둘렀다. 미안하다고, 한 시간만 잔다는 게 알람을 못 들었다면서 말이다. 아니, 오빠가 보자면서요? 짜증이 절로 났다. 


어쨌든 우리는 치킨집으로 향했다. 또 신나게 치킨을 고르고 기다리는데 곰 오빠의 엉덩이가 심상치 않았다. 들썩들썩거리다가 집에 일이 있어서 잠시 전화를 받고 오겠다는 거다. 그래서 뭐 그러시라고 출구 쪽으로 손바닥을 들었다. 뜨뜻한 치킨의 기름 냄새가 내 혈관을 타고 들어올 때 오빠도 같이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몇 개 먹지도 않았는데 대뜸 가봐야 할 것 같다는 거다. 물음표와 욕이 같이 나왔다. 또 내 욕지거리에도 천천히 본인 사정을 이야기하는 거다. 정말 미안하지만 집에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거 같아. 정말 미안해. 포장할게, 가져가서 먹을래..? 


집에 일이 생겼다는데 어떡하겠냐만은 뭔가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매일 한 시간씩 통화를 했고, 매일 연락을 하다가 시간을 내서 밥을 사주는 게 정황상 심상치 않다고 마음 한편이 말해주고 있었는데 이럴 때 보면은 내가 김칫국을 대야로 마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결정적으로 집에 일이 생기면 가야지. 




그 이후로 나도 취업을 하고 놀고 하다가 잠시 잊고 있었다. 학교 모임에 참여하는 성격도 아니라 그렇게 잊혀 갈 때쯤 문득 생각이 나서 5년 만에 연락했다. 


오빠 잘 지내요?


오빠의 답변은 날 너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잘 지낸다고 하더니 대뜸 통화 가능하냐고 물었다. 네? 




너의 신호를 알아채기 힘들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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