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아니 자주 사람들에게 멘탈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다. 난 남들과 같이 보통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할 때, 직장이나 학교에서 유독 더 듣는다. 멘탈 =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쓰는 말인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않다. 하루에 많게는 수십 번도 무너진다. 마음이야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으니 겉보기에는 단단한 돌처럼 보이는가 싶다. 정신력이나 멘탈이 강한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기 싫어 죽겠어도 학교나 회사에서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담당은 나고 이왕 하는 일이면 원만하게 잘 해결하고 싶다. 해야지 어떡해, 누군가 내게 00 씨 괜찮냐고 물어보면 늘 했던 말이다. 안 괜찮아도 해야지 어떡해.
학교 때는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내가 선택한 강의니까 당연히 했다.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사람들이 내 과제물을 보고 비웃었다. 정말로 재미로 했기 때문에. 나는 잘한다고는 안 했다.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골라 들어온 회사고 원했던 일이니 누가 주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나친 야근은 금물이지만 그 선 안에서는 즐겁게 욕심을 가지고 내 선택에 대한 책임감으로 내 삶을 대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서 늦깎이 학생으로 들어온 나는 오만한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멘탈이 세다고? 이 정도면 너네가 너무 나약한 거 아니야? 인성 논란으로 차마 입밖으로는 꺼내지 않았지만 (아마 두 번 정도 말했던 것 같다) 졸업 이후 천천히 생각해 보자니 작품, 논문, 세미나 이 모든 것에 필요한 건 책임감이라 확신한다. 내가 내 작품에 책임감이 없으니 마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 아닐까? 내 작품이라면 마지막까지 잘 해내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이고 몸은 마음을 따르니까 결과가 어떻던 완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지인들은 내가 학교에 대한 귀찮음이나 게으름에 공감을 못하니 나중에는 아예 사이보그처럼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했더라, 마감 전날 잠도 잘 자고, 발표할 때 긴장도 안 하고, 항상 덤덤하게 세미나에 참석하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나? 엠뭐시기에서 J일 것 같은 문장이지만 나는 대문자 P다. 실제로 수술 이후 회복기간 없이 4달 동안 졸업논문에 올인했다. 물론 큰 수술은 아니었지만 졸업 이후 체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그 와중에 주변 동기의 힘들다는 말이 와닿았을 리가 없었다. 수술부위를 부여잡고 쓰는 논문이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책임감 이외에 악으로 깡으로 처리하고 싶은 독한 근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흔들리는 이를 뽑는 나를 보며 친할머니가 한마디 하셨었다. 저 독한 년. 그냥 몰아서 하고 싶지 않아 매일 했던 것뿐인데. 대학원도 한 학기 밀리기 싫어서 아파도 했을 뿐이고, 기한 안에 마무리하고 싶으니까 일을 한 건데. 흔들리니까 뽑은 이였던 거고. 체력이 안 좋으니까 바빠도 운동은 꼭 했던 거고. 당연하게 나를 위해 했던 것들이 타인에게는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신기하면서 불편하고 가끔은 좋기도 하다.
타인에게는 그렇게 관대할 수가 없다. 한 학기 밀린다고 하면 더 좋은 논문이 되겠다, 아프면 건강 생각해 가면서 해야 한다, 운동이 귀찮으면 나중에 천천히 하라던가, 기한 안에 못해도 사람이 가끔 그럴 때도 있지라고 위로한다. 위로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저런 말을 들으면 하, 빨리 하고 치워야지 라는 마음이 먼저 든다. 그래서 수술 후 아빠에게 '졸업 안 해도 돼'라는 말을 들은 후 서울로 돌아와 졸업을 해치웠다.
일반적인 위로의 말이 위안이 전혀 되지 못한다. 어차피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는 건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졸업을 안 해도 되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나는 졸업하고자 입학했고, 내년에는 원하는 곳에 취업도 해야 한다. 이러한 위로의 말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을 주는 것 같아 자주 남발하곤 하지만 나는 절대 듣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아쉬운 소리를 덜 하게 되고, 사람들은 내게 자주 의지하고, 나는 자주 힘들어진다.
내게 자주 의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이제 내가 하는 말 말고 본인을 좀 믿고 의지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만큼 나에게 큰 위안을 주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봤으면 좋겠다. 남의 감언이설에 해이해진 마음을 흐르는 물처럼 편하게 늘어뜨리지 말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삐뚤빼뚤해도 좋으니 펜을 꽉 쥐고 그렇게 살아갔으면 한다. 어쩌면 마음이 단단하다는 건 손에 쥔 무언가를 향한 책임감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삶을 쥐고 있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