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화래진 Jul 19. 2022

넌 왜 연애 안 해?

 한 친구는 나만 보면 연애할 생각 있냐고 물어본다. 그 말을 들은 지 두 번째에 너 저번에도 그 말 묻지 않았냐 되물었다. 나는 대답을 충분히 했던 것 같은데 내 답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걸까? 희미한 기억이지만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나는 딱히 누굴 만날 생각이 없다고, 지내다가 좋아지는 사람이 생기면 아마 그땐 만나지 않을까라고. 두 번째까지는 문장으로 대답하다가 세 번째부터는 네 글자로 간결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필요 없어.

그래 보여. 언니는 그래 보여.


이 대화 패턴을 만날 때마다 고수하고 있다. 근데 재밌는 건 너도 그래 보여. 우선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내 일이라면 나보다 더 화를 내고 더 슬퍼하는 주변이 있다 보니 그 외의 인연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나는 운이 좋아서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 메인을 차지하는 상식 밖의 행동이나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거의 없다.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친구의 연인에게 다짜고짜 쌍욕을 듣는다거나, 내게 다신 그런 사람과 만나지 않겠다며 울더니 돌연 그 사람과 여행을 간다거나, 헤어진 연인이 몇 달을 집 밖에서 기다리고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한동안 혼자 나가는 게 어려웠던 일들이 내게도 있었다.


기준 밖의 행동은 나를  이성적이게 만들었다. 화가 나는 것보다 싹을 자르는  먼저였고 연인이었친구였다신 보지 말자고 끝을 맺었었다. 당시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던  변함없지만 그것과 별개로 넘지 말아야  선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끝맺음 속에서도  번의 고비가 있었다.  자르듯 자른  아니라  번을 상대에게 말하고  말했었다.


이런 일이 연달아 일어났을 땐 정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곁을 내어주고 싶지 않을 만큼 속이 상했다. 너무 화가 나서 당장 그곳에 있는 게 괴로웠다. 그렇게 돌연 캐나다로 떠났고 타지에서 나는 생각을 덜어내는 연습을 했다. 외국에서 나는 당시에는 사귀는 게 즐거웠고 그러다가 괴로워 떠나보냈으니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온타리오 호수를 보고 따뜻한 여름 날씨를 느끼고 무엇보다 한국어가 전혀 들리지 않으니 신기하게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어쩌다 알게 된 사람과 스몰 톡을 하면서 그렇게 나를 치유했다. 목적지도 없이 걷다가 힘들면 그늘에 멈추고 또 걷다가 힘들면 멈추고 배고프면 아무 곳이나 들어가 밥을 먹고 나와 숙소로 돌아가면 주인이 오늘은 뭐했냐고 물어봤다. 그럼 어설픈 영어로 어디를 걸었고 무엇을 봤으며 어떤 따스함을 느꼈는지 이야기하는데 옹알이 같은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집주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느낀 내 감상은 나는 생각보다 많은 걸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사랑도 조카들의 관심도 친구들의 부름까지 관심을 느끼고 응해야 할 것들이 충분히 많다. 더 이상 받을 사랑의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 이상은 과부하가 일어나지 않을까? 내가 보는 우리나라에서의 연애는 소유의 개념이 아직까지 큰 것 같다. 사귀는 순간부터 상대는 내 것이라는 생각.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동기화가 되어야 하는 관계가 내게는 좀 버겁다. 내 연애 가치관이 너무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님과의 시간이나 친구들과의 만남, 내 귀여운 조카들을 사랑할 시간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연인과의 시간이 더 중요하고 그게 당연하다는 게 기본 전제인 것 같아 의아해지곤 한다.


다 정말 소중한 관계지만 뭐 하나 콕 집어 가장 좋아하는 관계랄게 없다. 모두가 내게 중요하고 사랑받고 싶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연인이라는 사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는 특수성이 어쩌면 내게는 와닿지 않는 걸 수도 있겠다. 가끔 이게 외롭다는 건가 느낄 때가 있긴 있었다. 날은 더운데 몸은 너무 차가워서 누군가 나를 꼭 안아줬으면 싶을 때가 있었다. 나도 결국 남들과 다르지 않지 싶어 새로운 연인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더 공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책을 읽거나 누군가와 대화한다거나 따뜻한 집밥을 먹을 때면 비어있던 마음의 공간이 한치의 숨도 들어올 수 없게 채워지곤 했다.


나의 외로움은 연애로 채울 수 없다. 비어있다고 해서 결코 공허하지 않았고, 꽉 차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친한 언니의 고생했다는 토닥임, 부모님의 쓰다듬, 이모의 닭발이면 끝날 쓸쓸함이었다. 그러니 연애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혹시 모르겠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더 풍족한 만남에 사랑이 넘치는 관계를 가질 수 있을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무탈하지 않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