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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Mar 29. 2022

무탈하지 않다는 것

 나는 얼핏 똑바로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걸음걸이 외에 모든 것이 휘청이고 있었다. 앞뒤로 흔들리는 가슴과 어깨, 초점 잃은 눈동자,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렇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분명 제대로 걸어온 것 같다가도 멈추면 아무것도 모르겠는 게 다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혹시 다시 걸어야 하나? 비탈길도 오솔길도 아닌 단 하나의 평평한 직선 길이었다. 무탈했고 무난한 삶이었다. 내 기준 최고의 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 바람에도 남들보다 크게 휘청거렸다. 다른 이들은 툭툭 털고 일어날 일에도 나는 생체기가 나고 도저히 추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 길은 직선이었지만 결코 길지 않았다. 느리고 느려서 걷다가 멈추고 걷다가 멈추고를 반복했다. 살만하면 가끔 뛸 때도 있을 텐데 그냥 살만하다고 팔자걸음으로 거리를 누볐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말자를 좌우명으로 정한 지 16년이 되었다. 이제는 비교라도 하면서 열등감과 불안을 발판으로 전진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다시 내 잔잔한 삶에 무탈하지 않은 것들이 왔다. 


 한 번은 친구랑 대화를 하다가 인생의 노잼 시기가 온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 친구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지 나랑 같은 눈을 하고 있었고 이내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다. 야 너도? 우리 사이에 제일 많이 쓰는 말이었다. 어디서 대화를 주워 들었는지 그 당시 대화를 나누던 친구와 난 꽤나 큰 시련을 맞이하고 있었다. 인생이 재미가 없다는 말이었지, 누가 힘들게 살고 싶다고 말했냐고, 방구석에서 소리를 질렀다. 




 내 삶이 너무 무난해서 가끔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바닥에 누워 손발로 바닥을 치며 어린애처럼 생떼를 피웠었다. 그러다가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게 떠오르면 모르는 척 몸을 털고 책상에 앉았던 것 같다. 올해 초는 다른 친구가 내게 사주를 보러 가자는 말에 딱 잘라 거절했다. 이런 순탄한 인생에 사주는 돈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그냥 아무 곳이나 가서 머리를 땅에 묻고 손발을 빌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이, 그리고 나의 인생이 동전 뒤집히는 거 마냥 앞뒤로, 종이처럼 팔랑이는 시기가 있었다. 답이 없는 일에 매달려 보기도 하고 어떻게든 부딪히면서 오늘은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흐를 때도 있었다. 답도 없는 고민에 꼬박 하루를 새우다 끼니를 거르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내가 현실을 사는 건지 지옥에 있는 건지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나은지 생각하다가 다시 방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한숨 자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쳤다. 



 이토록 괴롭고 어두운 날이라면 한줄기 빛이라도 줄 법 하다. 얼마나 좋은 일이 내게 일어나려고 현재 암흑을 선사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엄청 좋은 일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 괴로움에 힘입어 일확천금을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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