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들쭉 날쭉하다. 그리 길지 않은 취업준비기간 동안 나는 피가 말라가고 있다. 올해 1월 졸업논문 제출을 하고 2월에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7개월을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이력서도 쓰고 면접도 다니면서 나름의 준비를 해오고 있다. 집에서 작업만 하기에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아르바이트도 세 달 전부터 다니고 있다. 한결 낫다.
이놈의 포트폴리오는 해도 해도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 와중에 원하는 회사 10군데를 지원했다가 반토막이 났다. 대학원 입학 후 작품에 대한 칭찬을 듣고, 논문으로 수상을 했던 과거가 마치 내 일이 아니었던 것만 같다. 궁금해하는 주변에게 이 소식을 알리니 코로나라 취업자들이 몰렸다, 이번에 경쟁률이 1:300이었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이상하게 와닿지가 않는다. 어차피 내가 붙고 안붙고는 50:50이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인상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못났다. 그래서 주방가위로 머리를 잘랐다. 한 뼘정도 자르니 한결 마음이 시원하다. 면접 볼 때 뒤로 묶으려고 억지로 길렀던 건데 생각해 보니 단발이라고 떨어질 거면 긴 머리여도 떨어질 것 같아 잘랐다. 그리고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머리가 유독 무겁고 거추장스러웠다. 막상 자르고 나니 삐뚤삐뚤한 게 신경 쓰였다. 머리는 반곱슬이라 뻗치고 튀어나오고 멋대로 웨이브 진 머리를 나는 참 좋아했는데 그날은 또 인상을 썼다.
그래서 미용실에 갔다. 머리를 매직했다. 마치 내 인생길처럼 쭉 뻗은 것 같아 마음이 시원했다. 하지만 첫 매직이다 보니 미용실에서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줄 몰랐다. 책을 반 정도 읽은 것 같다. 지난주에 다운로드한 밀리의 서재가 참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미용실 실장님이 잘라주신 머리카락은 칼이었다. 어깨 위로 일자로 잘린 머리카락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자꾸 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앞머리도 길게 자르고 옆에 사이드 뱅을 내주셨다. 얼굴에 살이 많아 가뜩이나 더워 보이는 내 얼굴을 어설프게 가려놓는다고 생각해서 집에 오자마자 앞머리와 옆머리를 댕강 잘랐다. 연예인 김나영의 아들인 신우가 되어버렸다. 덮밥처럼 온 얼굴을 덮은 머리보다는 신우가 훨씬 낫다.
이상하게 기분이 확 나아지지가 않는다. 집에 와서 조카가 쓴 방명록을 한참이나 훔쳐보다가 눈물도 훔쳤다. 서럽고 짜증 나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히끅히끅 울었다. 나는 미련해서 혼자 있는 방에서도 얼굴을 가려야 눈물이 난다. 눈물을 흘리니 화가 났다. 내가 뭐 하자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부담감을 내려놓고 우선 이번 회사 지원을 끝내면 한숨 돌리자고 나와 약속했다. 나를 좀 급히 달래주기 위해 평소 고심했던 운동화를 구매했다. 아식스 조거 올검이었는데 사고 나니 이유 모를 의지가 셈 솟았다. 역시 치료는 금융치료지.
내 부담감에는 큰 회사에 가고 싶은 욕심과 여기저기 떠 벌려놓은 나의 입방정이 문제였다. 별 수 있나, 내가 말했으니 내가 수습해야지. 그리고 안될 수도 있는 건데 너무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남이 나한테 실망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 게 싫다. 그래서 열심히 해온 건데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무기력하고 우울했나 보다. 목표한 곳이 안되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목표한 곳들 외에도 가고 싶은 곳들이 스무 곳이 넘는다. 그중에 하나는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또 해보려고 한다. 여기저기 힘들다고 투덜거리고 지친다고 찡찡거리니 위로와 조언을 받았다. 남은 3개월은 또 사람들의 따스한 위로를 들어가며 힘을 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