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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Nov 25. 2019

내 마음속에 아빠를 지우기로 했다.

만약 지울 수 있다면,



 때는 한 달 전, 아빠가 어느 날 집을 나갔다.



 그 전 주말쯤이었나, 대학생인 남동생은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엄마와 아빠는 다투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뭐했더라? 친구네서 먹고 자고 놀고 있었나? 무튼 한참을 서로 상처 주는 말로 다퉜나 보다. 그 이후에 항상 때처럼 동생을 불러 누가 더 잘못했느냐고 잘잘못을 가리려 했겠지. 동생은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카톡을 남겼다. '누나, 엄마랑 아빠랑 대판 싸움.' 나는 평소처럼 간장이니 소금이니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아빠가 엄마한테 시비 걸려고 그랬겠지.라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 동생의 목소리는 차분함 속에 화가 잔뜩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 보니 평상시처럼 엄마는 거실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었고, 동생은 공부를 하고 있었고, 안방에는 누가 들어갔는지 문이 닫혀있었다. 누가 이겼냐고 물어보려던 찰나에 동생이 눈에 보였다. 동생은 아까 전과 똑같은 말투로 둘 다 질린다고 고개만 저었고 난 그냥 그려려니 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많이 싸워서 받아야 할 스트레스는 다 받았다고 생각했기에.


 이번엔 달랐다. 다음날 집을 나간 아빠. 단톡 방을 나갔다. 하루 이틀 그렇게 일주일을 꼬박 집을 비웠다. 걱정되어야 하고 연락도 해볼 법도 한데, 삼 남매 중 누구도 연락한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나는 무척이나 신이 난 나머지 매일 집에 일찍 들어와 엄마랑 수다 떨고 데이트하기 바빴다. 어느 날은 막냇동생과 술잔을 기울이며 차차차를 외치던 중에 아빠가 들어왔다. 바비큐를 사들고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어떤 인사도 없이 들어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막내 옆자리에서 먹는데 화가 났다. 나의 자유가 묵살되는 순간이었다. 먹던 음식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느낌을 받으며 자리를 정리하고 들어왔다. 이렇게 평생 아빠를 보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몇 년간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계획도 세웠고, 사촌 조카들에게 다녀올 때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했었다. 이렇게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을 영영 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마음속에 억지로 품었던 그를 이제는 가족이라는 명분까지 없애고 인생에서 지우려고 했었다. 아니 지웠다. 내 마음은 누구보다 가벼웠고 그가 없는 내 앞날은 창창하기만 했다. 아니 했었다.


 돌아온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실을 활보하고 우리 엄마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한다. 집 나간 게 뭐 그리 잘한 거라고 오자마자 평소처럼 떵떵거리는 그 사람이 싫다. 나는 이미 지워버렸는데, 평생에 걸쳐서 지우고 싶었던 사람을 이번 기회에 지워버렸는데 다시 돌아와서 아빠 자리에 앉아있다. 없는 사람인 듯 대해봐도 본인이 여기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 큰 목소리로 말한다.

'밥 줘'

그다음은 본인을 보지도 않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는 초등학생 이후로 인사하는 법을 까먹었냐?'


큰일이다. 상대는 나를 보고 계속 이야기하고 화도 내는 것 같은데, 정작 나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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