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화래진 Nov 25. 2019

나는 구조 설계자이다.

직업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나

                    안녕하세요, 00 구조입니다.




 내가 하루 중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나는 구조 엔지니어다. 건축과를 다니던 내가 어쩌다 구조에 흥미를 가졌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때는 2014년...으로 시작하고 싶지만 귀찮기 때문에 생략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이 ‘구조설계’는 가볍게 말하면 건물 구조 부재들이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구조기준에 맞춰 설계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가볍지 않게 말한다면 구조물의 붕괴로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애초에 이런 경각심을 갖고 일을 했다면 난 구조를 하지 않았을 것을...


 최근 물 경력 2년으로 이직해 3년 차 신입사원 행세를 하고 있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온 지 약 7개월 정도 되었고, 난 동시에 7개월 차 신입사원이 되었다. 이전에 아파트를 주로 했던 전 회사와는 달리 규모가 작은 이번 회사는 작은 다세대 주택 설계 건이 꽤 많았다. 이전에는 대기업 건설사가 발주처라 설계지침서라는 아주 고맙고 쉬운 설계서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내 손가락 길이만큼 두꺼운 기준 책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찾아보고 검토해야 건물을 설계할 수 있다.


 경력을 가지고 들어왔지만 하등 쓸모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주어진 간단명료한 기준에 맞춰 설계했고(지침서_1:슬래브 배근 직경 10mm 300간격_이하 D10@300) 그게 내가 하는 일이라고 찰떡같이 믿었다. 그리고 지금 뒤통수를 7개월째 맞고 있다. 후두부가 따가운 건 이런 이유겠지.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내 사수가 일정을 지키지 못한 나에게 이유를 물었고, 나는 마음이 급해서 실수를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내게 지금까지 뭘 배운 거냐고 반문했다. 물론 어울리는 질문도 아니고 해야 할 대답도 없었다. 가뜩이나 내 직업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나는 내 실수에 짜증이 잔뜩 났던 때였고, 아닌 때 들어온 팩트 폭행에 정신을 못 차리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당황한 사수를 뒤로하고 그만 닥치라는 제스처와 함께 화장실로 걸어 들어왔다. 그 상태로 도망칠까 라는 생각을 10초 정도 한 것 같다. 나는 책임감 있는 20대 후반의 어엿한 성인이기 때문에, 나갈 때 나가더라도 당당하게 나가자 라는 생각으로 화장실 거울을 봤다. 근데, 우는 내 얼굴이 너무 꼴 보기 싫은 거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울어서 이런 몰골을 하고 있는지 합당한 이유를 찾지 않으면 갑자기 자존심이 너무 상할 것 같았다. 나는 적당한 이유를 찾았고, 별 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울음을 멈추고 마저 일을 했다. 옆에 있는 괴물 아니 사수가 계속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길 원했지만, 차마 너의 싹수없는 말투가 듣기 싫어라던가 어차피 곧 나갈 거니까 말할 가치가 없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몸도 안 좋았고, 일정에 대한 부담감도 느끼고 있던 차에 그런 말을 들으니 속상했다.라고 불투명한 속내를 드러냈다.

 

과장님 맨날 웹툰이나 판타지 소설 말고 이런 것도 읽으세요, 좀.


 너의 그 예의 없고 사람 비하하는 말투가 맘에 안 든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했던 게 그 사람이 의도한 대로 반응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을 종종 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사실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못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조금 약 올라하는 것도 즐겼었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흘려듣지 못하니 나도 당황하고, 사수도 당황했다. 나는 당황하는 사수의 얼굴을 보며 즐겼다. 내가 눈이 촉촉한 편이라 사수는 하루 종일 내 안구의 습기 눈치를 보며 내게 일정을 묻기도 했다. 꽤 즐거웠지만 역시나 그날도 야근을 했다.


 이게 다 욕심 때문이다.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싶고, 내가 짠 일정에 맞춰서 내 일을 해결했다는 성취감과 더불어 인정받고 싶으니까 조바심을 내다가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러는 자신에게 화가 났고, 때마침 옆에서 톡톡 건드니까 화가 분출된 것이다. 대부분은 무기력한 구조 인생에서 한줄기의 불줄기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한줄기의 열정도 나를 이렇게 옭아매는데 한 바가지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고민 중이다. 이 남은 불씨를 불어서 꺼버릴지 지펴서 크게 키울지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