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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Feb 26. 2024

우리 집 가훈은 '괜찮아, 잘하고 있어'

하루하루가 불안해 견디기 힘든 날이 있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감각들이 날이 잔뜩 서 있어 일상의 작은 행동에도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었다. 그 당시 남편의 잦은 출장으로 인해 집에는 나와 아이 단 둘이 있는 날이 많았다. 한 번 나가면 한 달씩, 한 달 반 씩 집을 비웠다. 


타지에 살림을 차린 탓에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친구도 없었고, 누군가 있었다고 해도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 복잡해 쉽사리 털어놓긴 어려웠을 것이다. 몸이 먼저 망가지고 마음도 망가진 채로 아이를 키워내야만 했다. 어떤 이에겐 도움을 청하는 것이 당연한 '친정'이라는 존재도, 내겐 지옥 같은 곳이었으니 차디찬 극지방의 한가운데 아이와 함께 버려진 듯한 괴로움은 모골마다 파고들었다. 그것은 착각이나 상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신체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 무렵 나는 자주 추웠다. 열이 40도까지 치솟아 체온계에는 빨간불이 번쩍이는데, 나는 이가 부딪혀 부서질 만큼 추위에 덜덜 떨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이 경련이 찾아오고, 입에선 괴물 같은 신음소리가 자꾸 새어 나왔다. 도움을 청할 곳이라곤 119뿐. 핸드폰에 119라는 세 숫자와 통화 버튼을 누르는 일도 벅찼던 순간.

아이와 함께 구급차에 몸을 싣고, 응급실로 실려가던 수많은 날들. 

그 모든 상황을 울지도, 두려워하지도, 낯설어하지도 않는 아이의 담담함이 못 견디게 사무쳤던 시간들. 


보호자가 없으니 입원을 할 수도 없어, 주삿바늘을 꽂고 아침저녁으로 응급실에 링거를 맞으러 다녔었다. 물론 아이와 함께..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불쌍한 나의 딸은 약하고 못난 엄마 탓에 종합병원 응급실을 수시로 드나들어야만 했다. 항생제를 너무 많이 맞아 내성이 생긴 탓에 3차 항생제까지 사용해 버린 내 몸 상태는 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겨우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혼자 남아있는 고요한 시간에는 어디서 밀려왔는지 모를 불안이 나를 잠식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려봐도, 형언할 수 없는 잿빛의 감정들은 나를 에워싸곤 했다. 

심리학 책을 읽고, 명상 유튜브를 틀어놓고, 요가 동작을 따라 해보고, 소파에 모로 누워있다가, 다시 앉아서 꺽 꺽 울었다. 다시 그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한기가 느껴질 만큼 외로운 시간이었다. 


미워할 사람도 없었다. 나를 버린 엄마를 떠나왔으니 미워할 이유가 없었고, 실은 미워할 힘도 없었다. 돈 벌러 나간 남편을 미워할 수도 없었다. 말간 눈의 작은 아이를 미워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나를 미워했다. 독한 척 하지만 나약한 나를, 제 분에 못 이겨 쓰러지고 마는 나를...


어느 날에는 아이와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다가 이런 글씨를 써 내려갔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 말은 내가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가위질이 아직 서툰 아이에게, 수저질이 서툰 아이에게, 블록 쌓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심통 난 아이에게.


누군가 나에게도 이런 말을 좀 해줬으면.. 좀 살 만하겠다. 싶었다. 

아이는 어리고, 남편은 멀리 떠났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이런 말을 내게 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적었다. 

스케치북을 북 찢어 가위로 슥슥 오려서 현관 앞에 붙여버렸다. 

충동적이었지만 꼭 누가 시킨 것 마냥 열심히 그 행위에 몰두했다. 


아이를 번쩍 들고서 손가락으로 글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뭐라고 써 있어? 읽을 수 있어? 엄마가 읽어줄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

'괜찮아, 잘하고 있어.'

뭐가 괜찮은지, 무얼 잘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삼키면서 써 내려간 그 글자를 벽에 붙여놓고 보니 그래도 무언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벽에 붙은 글귀를 보고 물었다.

"가훈이야?"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했는데, 그래 가훈으로 하자."

그렇게 그날로 '괜찮아, 잘하고 있어'는 우리 집 가훈이 되었다. 


어린이집 숙제인 가족신문 만들기에도 가훈으로 같은 글귀를 적어냈다. 

선생님은 '가훈이 너무 귀엽다'는 애교 섞인 피드백을 보내오셨지만 나는 그 말의 무게와 진심을 잘 알았다. 


아이와 크레파스로 낙서하던 날 

난 왜 '괜찮아, 잘할 거야'가 아닌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문장을 적었을까. 

그 순간의 나를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짐작하는 말 대신, 지금을 도닥이고 싶었는가 보다.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가훈은 지금도 현관 앞에 부적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라도 해주자라는 절박함이 만들어낸 행동은 정말로 그런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과거의 나처럼 불안과 외로움에 잠식된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외롭고 괴로움을 느끼는 순간도 '잘하고 있다'라고, '잘 앓고 있다'라고 등을 쓸어주고 싶다. 

죽을 만큼 춥고 괴롭겠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그 순간 너머에 정말로 괜찮은 날이 있을 거라고. 마음으로 속삭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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