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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하게 Mar 08. 2024

엄마는 어쩌다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을까

친정엄마를 그저 한 사람으로 두고 내 엄마라는 모자를 벗긴 채 들여다보면 그 역시 참 가여운 인생이다.

엄마를 나의 모친이 아니라 이웃 아주머니로 만났다면 그의 기구함을 동정하며 가끔씩 맛난 음식을 나눠먹는 사이로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떠올리는 '엄마'라는 존재는 달 표면의 온도만큼이나 얼어붙어있다.

지독한 편애 속에 자란 엄마는 그토록 서러웠던 편애를 그대로 대물림했다.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은 세 살 무렵 갓난아기이던 동생의 양 볼을 쥐고 흔들다 엄마에게 들켜 혼나던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첫 딸 밑에 아들은 200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지.. 엄마는 본인이 늘 200점짜리 엄마라는 말을 입에 달곤 했다. 첫 딸은 살림밑천이고, 아들은 귀하게 키운다고 했던 말도 아직 선명하다. 자아가 제대로 발달하기 전이었기에 멍청히 듣고 있던 기억도.


할머니댁에 갈 때면 남동생은 슬그머니 안방으로 불려 갔다. 할머니가 "요놈 꼬추 잘 있나~ 보자" 하면 동생은 자랑스럽게 바지를 내려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보였다. 그러면 할머니는 "어이구 잘 있네~" 하면서 주머니에 입에 사탕을 넣어주거나, 꾸깃한 천 원짜리를 주머니에 찔러주었다.


나한테는 없고, 동생에겐 있는 것. 그것에 따라 사랑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많은 남매가 그렇듯 동생과 나는 죽도록 싸웠다. 서로에겐 그럴듯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동생은 늘 실컷 약 올려놓고 엄마뒤로 쏙 숨어 버리거나 엉엉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동생이 낼름 혀를 내밀어 보이면서 전화기를 건네면 언제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누가 먼저 때렸는지, 약 올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나 문제의 원인은 '나'로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그런 정도의 편애는 당연하다고 여겼기에 크게 억울하지도 않았다. 첫째치고 이런 설움 없이 자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하지만 '엄마'의 존재가 고픈 때면, 그러다 미워질 때면 꼭 그렇게 어릴 적 생각이 났더랬다. 골고루 놓여 있던 밥상의 반찬 그릇이 자꾸만 동생 쪽으로 쏠리던 광경, 학창 시절 내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나이키 운동화를 계절마다 바꿔신었던 동생의 신발들, 엄마가 동생 방에 숨겨두었던 과자들 같은 것들 말이다. 좀스럽고 구질구질한 기억은 불쾌한 냄새처럼 풍겨오곤 했다.


소리 내어 말하면 너무 쪼잔해지는 그런 마음들. 시간이 지났으면 흐려지고 잊힐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게 그저 기억이 아니라 상처였다는 거, 부모가 부모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긴 흉이라는 건 우울증으로 과거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숨을 쉴 수 없어졌을 때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동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린 남동생은 엄마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밥투정을 해도, 없는 살림에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라도, 이유 없이 짜증을 내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도, 엄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어도 엄마는 아들에게 미안해했다.


뉴스에서 군대 내 괴롭힘을 죽임을 당한 윤일병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했을 때 엄마는 몇 날 며칠을 눈물바람이었다. "세상에 얼마나 아팠을까. 무서웠을까. 세상에 썩을 놈들.. 그렇게 젊디 젊은 애를.. 착한 애를..." 마치 자기 자식이 죽은 양 감정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식탁 모서리에 발을 찧었을 때는 "이렇게 부딪히기만 해도 아픈데 윤 일병은 얼마나 괴로웠겠니?" 하면서 내게 공감을 요구했더랬다.


어째서인지 엄마의 동정은 늘 남자에게 향했다. 길을 지나다가도 옷차림이 허름한 남자를 보면 불쌍하다고 했다.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그의 아내를 욕했다. 자신의 남편을 초라하게 다니도록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참 이상하지. 스무 살이던 내가 아르바이트 텃세에 지쳐 매일 울며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엄마였다. 몸살에 심하게 걸려도 약 먹으란 말 한마디가 다였던.. 심지어 아이 낳는 진통 중인 딸에게도 자신의 한탄을 늘어놓던 엄마였는데 말이다.


왜였을까. 내게만 엄마의 동정을 자극하는 스위치가 없었던 것일까.

한때는 사무치게 동정받고 싶었다.

내가 죽으면 후회해 줄까. 미안해해 줄까.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 적이 있었다.


오늘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한 영상을 보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엄마가 어쩌다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는지.

영상의 내용은 모녀 관계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큰 힌트가 됐다.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런 제목의 영상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엄마는 왜 딸의 상처를 못 보는 걸까?'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의 저자인 박우란 정신분석 상담가는 엄마가 딸의 상처에 무감각한 이유를 심리학 관점으로 풀어 설명했다. 


대개의 엄마들이 아들이 상처받은 것에 대해 더 연민하고 애틋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 그는 '편애'의 관점으로만 상황을 판단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엔 물음표가 떴다. "편애가 아니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던 거지?' 

그는 엄마가 딸의 상처에 대해서 무감하고, 무반응한 모습마저 보이는 이유를 여성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았다. 엄마는 딸을 '타자'로 보지 않고, 본인의 '연장선'으로 느끼기 때문에 딸을 소외시키는 것은 단순 편애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 자기 자신을 타자로부터 소외시키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해석이었다.

심리학에서 여성적 사고 구조 특징 중 하나가 결여를 메우고, 타자를 돌보고자 하는 본능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대상이 대개 이성인 남편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얽혀있던 실타래의 끝자락을 간신히 찾아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상했다. 엄마가 그토록 아들을 보필하는데 집착하는 이유, 똑같이 배 아파 낳은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차별하며 기를 수밖에 없었던 데는 그런 본성의 끌림이 있었던 것일까.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그러했듯, 엄마도 나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나도 아들을 낳는다면 그런 수순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순간부터 둘째는 없다고 선언했던 나는 본능적으로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입 짧은 남동생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라고 말하곤 했다. 전문가는 이러한 관용적 표현의 바탕에도 여성이 세상을 인식하는 특별한 방식이 깔려있다고 덧붙인다. 이를테면 여성은 에너지가 외부로 향해있어서 내가 배고픈 것보다 타자가 배고픈걸 빨리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엄마가 자신의 배고픔도 느끼지 못할 만큼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것처럼 여자인 딸도 본인과 동일시해 무감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모든 여성이 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순 없겠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엄마와 비슷한 사례에 대한 구조적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그간의 감정적인 억울함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계기가 됐다. 


'엄마가 딸의 상처를 바라보게끔 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전문가는 '거리를 두라'라고 조언했다.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모녀 관계에서 필요이상의 유착, 애착은 딸의 입장에서 사이를 입체적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엄마니까, 기댈 곳이니까, 갈등이 싫으니까, 홀로 되는 것이 두려우니까...' 등등의 이유로 병든 애착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부정적인 상태나 두려움을 직면하고 충분히 겪어내야만 불행한 모녀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게 떨어져서 바라보면 엄마가 변할까요?'라는 질문에 전문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되물었다. 

"타자가 왜 변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변해주면 내가 조금 수월해지겠죠. 덜 불행하겠죠. 엄밀하게, 냉정하게 보면 내가 힘을 덜 들여서 편안해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깔려있는 겁니다. 이 사람의 힘으로 내가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기대, 소망 다 포기하세요."

그 말 뜻은 변하기 어렵다는 차원이 아니라 변화하지 않을 때는 표면적인 것에서 나아가 무의식적인 만족, 이득이 유지되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행동해서 얻을 수 있는 '은밀한 만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이 설령 자식을 제물로 삼거나, 스스로를 제물로 삼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타인이 강제로 포기시킬 수 없다고 단언했다. 

"막상 엄마가 변하면 누가 좋을까요? 딸이 좋죠. 남 좋은 일하기 쉬운 가요. 엄마는 엄마다워야 한다는 요구와 기대가 변화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고, 더 큰 좌절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두고 본다면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랑은 가정 안에서건 사회에서건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것 또한 분명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모두 다 비슷한 인간이기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결국 어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말이다. 세상엔 그렇지 않은 가정이 훨씬 많을 테지만 이번 생에서 내가 뽑힌 가정은 불행히도 철저하게 존재를 타자화하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엄마, 즉 원가정으로 독립해 살아가는 지금의 나도 보다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미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왔지만 그럼에도 전문가들의 이러한 견해로 근거를 확인할때면 한시름 놓이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는 말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 선택에 부모의 존재가 걸림돌이 된다면 본인이 그 말로부터 왜 벗어나지 못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엄마가 과도하게 내 자존감을 침해하고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분리가 필요하다고. 엄마를 미워하는 것에서 나아가 엄마라는 '타자'의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고 분리해야 하는 것에서부터 갈등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이라고. 


부모와 사이가 좋아야 할 필요는 없다. 왜 좋아야만 할까. 누구나 불쾌한 감정을 회피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안정적인 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관계의 갈등을 외면하는 것이다. 부모가 불편하지만 그것을 외연화 하지 못하고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기저에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특히 아직도 유교사상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자아에서 발현되는 것들이다. 가족이 사라진다는 것,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하지만 정말로 괴롭고 외로운 건 같이 있어도 외로운 경험이다. 또한 모든 문제는 상상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관계가 파국으로 이른다 하더라도 더 나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경험으로 안다.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나의 몸과 마음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유튜브 영상이 내 감정의 새로운 근거를 들어주었고, 지금껏 내가 밟아온 선택의 길이 부끄럽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또 한편,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나의 엄마도 다시 한번 먼발치서 바라보게 되었다. 

여전히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를 용서할 아량은 없지만 어쩐지 희부옇던 안개가 한 꺼풀쯤 걷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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